정치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시 모음
정희성의 '봉화산' 외
 
정연복   기사입력  2011/05/23 [09:53]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시 모음> 정희성의 '봉화산' 외

+ 봉화산

당신 떠난 그 자리에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당신 떠난 그 자리에
사람들이 서성이며 울고 있습니다
아아 천둥번개 비바람 지난 뒤에도
당신 떠난 빈자리에
사람들은 숲이 되어 서 있습니다
(정희성·시인, 1945년 경남 창원 출생)


+ 5월의 슬픈 무궁화

몰랐습니다
그토록 외로운 민중의 노래를
홀로 부르셨다는 것을...
이렇게 뒤늦게 당신을 위해
촛불을 드는 무심함의 우리를 용서하소서

권력의 마성에
검게 물든 자들과 맞서 싸워야 했던
고독한 투쟁의 길 끝에
끝내 떠나야만 했던 5월 어느 날
무궁화 꽃은 모두 시들어 떨어지고
힘없는 서민의 터전은
통한의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기타 반주에 맞추어
그리 잘 부르던 상록수도
국민이 대통령이다
외치던 민중의 노래도
이제 다시 들을 수 없음에
슬픔만 가득 밀려옵니다

혼탁한 이 하늘 아래
그 누가 또다시 우리를 위한
노래를 불러 주겠습니까
진정 이 땅 위해 세상에 다녀간 이
이제 없으니 이 나라를 어찌하오리까

언제부터인지
청와대 태극기는 점점 병들어 갔습니다
송두리째 뽑아다가 봉하마을에 세워두고
진정한 평화의 깃발 되게 하여
당신의 투혼과 함께 힘차게 펄럭이게 하고 싶습니다

그 고귀한 절규의 눈물이
해마다 찬란한 5월의 깃발이 되어 펄럭 일 때면
우리도 허전했던 당신의 가슴에 촛불을 밝혀 드리겠습니다

살아생전 못다 이룬 꿈 대신
홀연히 떠나신 역사의 뒤안길에서
부디 그토록 사랑했던 이 나라와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의 빛을 비춰주소서.
(이설영·시인, 대전 출생)


+ 추모의 시

아, 님이여
뼛속까지 스민 찬바람 견디다 못해
홀로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까

하늘도 슬퍼 비를 뿌리던 날
쓸쓸히 먼 길 떠나십니까

원망, 미움 내려놓았으니
홀가분하시련만
이제 가면 언제 다시 오시렵니까

혹 다음 생 오시거들랑
부디 살벌한 짓거리 정치는 말고
바람 따라 자유하는 시인이 되소서
(손희락·시인, 대구 출생)


+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무거운 권위주의 의자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끝도 없는 지역주의 고압선 철탑에서
처절하게 버티다가 눈물이 되어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편가르고 삿대질하는 냉전주의 창끝에서
깃발로 펄럭이다가 찢겨진 그리하여 끝내 허공으로 남은 사람

고마워요, 노무현
우리가 아무런 호칭 없이 노무현이라고 불러도
우리가 바보라고 불러도 기꺼이 바보가 되어주어 고마워요

아 그러다가 거꾸로 달리는 민주주의 기관차에서
당신은 뛰어내렸어요, 뛰어내려 당신은 으깨진 꽃잎이 되었어요.
꽃잎을 두 손으로 받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팔뚝으로 받쳐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가슴으로 안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저 하이에나들이 밤낮으로 물어뜯은 게
한 장의 꽃잎이었다니요!

슬퍼도 슬프다고 말하지 않을래요
억울해도 억울하다고 땅을 치지 않을래요
북받쳐도 북받친다고 소리쳐 울지 않을래요
아아, 부디 편히 가시라는 말 지금은 하지 않을래요
당신한테 고맙고 미안해서 이 나라 오월의 초록은 저리 푸르잖아요
아무도 당신을 미워하지 않잖아요
아무도 당신을 때리지 않잖아요
당신이 이겼어요 당신이 마지막 승리자가 되었어요
살아남은 우리는 당신한테 졌어요, 애초부터 이길 수 없었어요

그러니 이제 일어나요, 당신
부서진 뼈를 붙이고 맞추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흐트러진 대열을 가다듬고 일어나요
끊어진 핏줄을 한 가닥씩 이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꾹꾹 눌러둔 분노를 붙잡고 일어나요
피멍든 살을 쓰다듬으며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슬픔을 내던지고 두둥실 일어나요
당신이 일어나야 산하가 꿈틀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동해가 출렁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한반도가 일어나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아아! 노무현 당신!
(안도현·시인,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 가슴에 별 심어주던, 부끄러움 빛낸 사람

오늘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웁니다
기댈 곳도 없이 바라볼 곳도 없이
슬픔에 무너지는 가슴으로 웁니다
당신은 시작부터 바보였습니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지면서도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살 수 있다고
웅크린 아이들의 가슴에 별을 심어주던 사람
당신은 대통령 때도 바보였습니다
멸시받고 공격받고 또 당하면서도
이제 대한민국은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군림하던 권력을 제자리로 돌려준 사람

당신은 마지막도 바보였습니다
백배 천배 죄 많은 자들은 웃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고, 저를 버려달라고,
깨끗하게 몸을 던져버린 바보 같은 사람

아, 당신의 몸에는 날카로운 창이 박혀 있어
저들의 창날이 수도 없이 박혀 있어
얼마나 홀로 아팠을까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었을까
표적이 되어, 표적이 되어,
우리 서민들을 품에 안은 표적이 되어
피 흘리고 쓰러지고 비틀거리던 사랑

지금 누가 방패 뒤에서 웃고 있는가
너무 두려운 정의와 양심과 진보를
두 번 세 번 죽이는 데 성공했다고
지금 누가 웃다 놀라 떨고 있는가
지금 누가 무너지듯 울고 있는가
"당신이 우리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인생을 사셨는데"
"당신이 지키려 한 우리는 당신을 지켜주지도 못했는데"
지금 누가 슬픔과 분노로 하나가 되고 있는가
바보 노무현!
당신은 우리 바보들의 '위대한 바보'였습니다
목숨 바쳐 부끄러움 빛낸 바보였습니다

다들 먹고사는 게 힘들고 바쁘다고
자기 하나 돌아보지 못하고 타협하며 사는데
다들 사회에 대해서는 옳은 말을 하면서도
정작 자기 삶의 부끄러움은 잃어가고 있는데
사람이 지켜가야 할 소중한 것을 위해
목숨마저 저 높은 곳으로 던져버린 사람아
당신께서 문득 웃는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그리운 그 음성으로 말을 하십니다
이제 나로 인해 더는 상처받지 마라고
이제 아무도 저들 앞에 부끄럽지 마라고
아닌 건 아니다 당당하게 말하자고
우리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처럼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향해
서로 손잡고 서로 기대며
정직한 절망으로 다시 일어서자고
우리 바보들의 '위대한 바보'가
슬픔으로 무너지는 가슴 가슴에
피묻은 씨알 하나로 떨어집니다

아 나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
속 깊은 슬픔과 분노로 되살아나는
우리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
(박노해·시인, 1958년 전남 함평 출생)


+ 사십구재에 오신 궁민窮民 여러분께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몸을 버리러 가면서
잡초를 뽑는 것 다 봤을 겁니다.
몸은 바위 아래 버렸으나
벼 포기 사이 오리로 태어났습니다.
곡식과 강물 위 햇살로 태어났습니다.
공장 기계소리로 태어나고
상점 호객소리로 태어났습니다.

저는 논두렁에 있습니다.
광장과 거리에 있습니다.
시장과 술집과 다방에 있습니다.
법당과 성당과 교회에 있습니다.
노동자 대열 속에 있고
장애인 휠체어를 밀고 있습니다.
저는 주방 도마 소리와
어린아이 보행기 앞에 있습니다.

저는 강바닥에서 소리치고 있습니다.
휴전선 철책에서 울고 있습니다.
부자들 비밀계좌를 추적하고 있으며
국회의원 입을 지켜보고 있고
청와대에서 귀신으로 배회하고 있습니다.
검찰 조사서를 넘겨보고 있고
법정 판결문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누가 사이비 기자인지 알고 있습니다.

잡초가 누구인지 아는 저는
목매 죽은 특수고용노동자와 함께 있고
불타죽은 철거민과 같이 있고
노숙자와 같이 살고
의분에 목매단 목사님과 같이 삽니다.
이들과 잡초를 뽑으러 다시 올 것입니다.
와서 잡초를 뽑고 말겠습니다.
저 죽지 않았습니다.
(공광규·시인, 1960년 충남 청양 출생)


+ 마침내 바보들이 돌아왔다

한 사람이 떠났다 보내야 했다
한 사내가 떠났다 보내야만 했다
한 바보가 떠났다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른 아침까지 저승새가 울더니
한 시대의 풍운아가 떠나고
한반도의 고독한 승부사가 떠나버렸다

잠시 눈길 피하는 사이
한 사나이가 몸을 날렸다
절망과 환멸의 짙은 그늘 아래 쪼그려 앉아
잠시 고개를 숙이는 사이
역주행 한반도의 먹구름 속에서
발만 동동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이
한 사나이가 먼저 온몸을 날렸다

살아남은 우리 뒤통수에 벼락을 치며
저 홀로 훌쩍 뛰어내리고야 말았으니
이 시대의 마지막 의인에게
부엉이바위는 절명의 벼랑이 되었다
이 시대의 처음인 혁명가에게
부엉이바위는 생사일여 순명(殉命)의 성지가 되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이 떠나고
또 한 사람이 돌아오고 있다
한 사내가 가고 또 한 사내가 오고 있다
한 바보가 가고 또 한 바보가 돌아오고 있다
한 시대의 의인이 가고
비운의 풍운아, 고독한 승부사가 가고
순명의 혁명가 노무현이 돌아오고 있다

단 하나의 노무현이 떠나고
노무현 같은 바보들이 하나 둘 돌아오고 있다
마침내 수십만 수백만 명의 노무현들이 돌아오고 있다
(이원규·시인, 1962년 경북 문경 출생)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있다. 민중신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11/05/23 [09:53]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