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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상호에게, 너는 우리의 희망이다”
[비나리의 초록공명] X파일 무죄판결, 이상호 기자에게 보내는 안부편지
 
우석훈   기사입력  2006/08/12 [16:08]
상호야, 오랜만이다. 우선 무죄판결을 축하하고,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리게 되면서 네가 느꼈을 곤혹감과 당황스러움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게 되어서 다시 한 번 축하한다.
 
혹시라도 너에게 유죄판결이 나면 나도 글이라도 써서 조금 돕고 싶어서 "1,000년의 이상한 판결"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정말 다행히도 무죄판결이 나서 나는 너무 기쁘다. 정말 내 일처럼 기쁘고, 사법제도니 사회정의니 하는 어렵고 복잡한 말은 잠시 접어놓고 친구로서 그냥 기쁘다.
 
고등학교 때 강서도서관에서 몰려다니던 시절이 엇그제 같고, 대학졸업을 앞두고 아마 89년 메이데이 때인가? 연세대학교 학교 농성장에 앉아서 시대에 대해서 얘기하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정말 새로운데, 그새 너나 나나 이렇게 어른이 되어버렸구나. 나는 그후 유학을 떠났고, 너는 취직을 했고, 오랫동안 볼 기회가 별로 없었구나. 우리가 마지막 만났던 것이 아마 탄핵집회 때에 한참 취재 중이던 너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던 거였지? <신강균의 사실은> 사건이 아니었다면 소주잔이라도 기울이면서 지난 시간들에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는데, 그 새 또 3년이 훌쩍 지나버렸구나. 무심하게 살아가는 거야 너나 나나 매일반이니 피차 탓할 것은 없다.
 
뭔가 알려야 한다는 네 마음이 진심임을 내가 알고 있고, 이상호 기자가 공명심에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지난 1년 동안의 몇 가지 사건들에 대해서 지켜보면서 나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혹시 보았을지도 모르지만 알 파치노가 나왔던 영화 <인사이더> 생각을 하면서 우리나라는 지금 딱 수많은 내부고발자가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을 좀 해본 적이 있다.
 
권력화된 수 많은 성채들에 대해서 결국은 누군가 나서서 사실을 알려야하는데, 우리에게는 내부고발자가 너무 없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부고발자가 설령 절차에 맞지 않고, '비밀준수서약'을 깨고라도 증언해야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중인데, 당연히 사실을 알려야 할 기자가 사실을 '적시'했다고 해서 너를 잡아가는 세상을 보면서 조선시대에도 이런 일이 없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나는 진실의 힘은 온갖 미사여구를 뛰어넘는다고 생각한다. 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알고 있다. 달을 가리키는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꺽어버리려는 이 터무니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버티는 상호와 같은 많은 기자들, 그리고 진실을 찾아 헤매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이 우리에게는 여전히 희망이다.
 
언젠가 네 책에서 김광석의 죽음에 대해서 네가 미처 말하지 못하고 미처 밝혀내지 못한 것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써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몸 좀 추스리고, 마음이 편해지면 그래도 나나 현석이나 혹은 수영이 같은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 중에서는 제일 용감했고 언제나 리더 역할을 했던 상호 네가 그 사실도 잘 좀 밝혀주면 좋겠다는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언제 한 번 편하게 밥이나 한 번 먹자.
 
시대진리의 맨 앞에 서서 그동안 고생 많이 했고, 나는 네가 나의 친구라는 점이 무척 자랑스럽다. 이젠 고된 몸을 잠시 눕히고 오랜만에 편안한 휴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 오랜 친구, 석훈으로부터
 
2006년 8월 12일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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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8/12 [16:0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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