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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과 양악의 조화, 지방 교향악단과 만나다
강릉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 이병욱 '단오를 위한 잔치' 초연 등 풍성
 
김영조   기사입력  2006/07/17 [00:18]
그동안 우리나라는 모든 분야에서 중앙 중심의 세상이었다. 특히 문화, 그것도 음악은 더욱 수도권 편중이 심했다. 관현악 연주뿐만이 아니라 실내악이나 독주회도 한번 감상하려면 서울에 가야만 하던 시대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 서서히 지방의 문화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현재 대도시가 아닌 작은 도시들, 군산, 마산, 원주, 정읍, 창원, 천안, 포항 등에 관현악단이 생겨 활발한 연주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밖에 또 하나 모범적인 교향악단이 있는데 바로 강릉시립교향악단으로 강원도 영동지방의 작고 아름다운 도시 강릉에 15년의 역사를 꾸며왔다. 이 강릉시립교향악단이 제50회 정기연주회를 연단다. 7월 14일 늦은 7시 30분 아담한 강릉문화예술회관은 우릴 맞았다.

맨 먼저 문을 연 것은 쇼스타코비치의 축전 서곡(Festive overture in A Major, OP.96)이다. 제4기 지방자치가 시작된 것을 축하하고, 새로 취임한 시장과 함께 강릉시가 활기찬 모습으로 일어설 것을 기원하는 의미라고 지휘를 맡은 강릉시립관현악단 상임지휘자이며, 관동대학교 음악과 류석원 교수는 설명한다.
 
▲ 강릉시립교향악단은 강릉문화예술회관에서 제50회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 김영조

 젊은 악단은 중후하거나 농익은 맛은 부족하지만 축전 서곡의 의미에 잘 맞게 풋풋하고 힘찬 연주를 해낸다. 어쩌면 젊은 그들만이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은 현 강릉시립교향악단의 악장을 맡고 있는 김일남 씨의 바이올린 협연 비발디의 4계 중 '봄'(The Four Seasons, Op.8-1 'spring')이다. 김일남 씨는 비발디의 아름다움을 첼로와의 어울림으로 환상적이고 사랑스러운 연주를 해낸다.

이어서 연주한 곡은 최영섭 작곡의 '그리운 금강산'과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중 '이기고 돌아오라'(Opera 'Aida' 중 Ritorna Vincitor)를 소프라노 김재란 씨가 열창한다. 음폭이 비교적 넓고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만, 순간순간 목소리가 오케스트라에 묻히고, 깊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곡의 사이마다 지휘자는 자세한 그리고 재미있는 설명을 풀어냈다. 특히 한 선율을 악장마다 어떻게 다르게 표현했는지, 악기마다 어떤 특징을 담아내는지 잠깐의 연주를 곁들여 보여준다. 청중을 위한 아름다운 배려이며, 지휘자의 대단한 장점으로 느껴진다.

1부의 마지막 곡으로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스페인 기상곡(Capriccio espagno)'를 연주했다. 노르웨이의 그리그는 해 뜨는 장면을 조용하고 아름답게 표현했지만, 림스키는 마치 행진곡처럼 힘차고 신나게 표현하고 있다고 지휘자는 비교해준다. 또 같은 선율을 금관악기와 현악기가 어떻게 다른 연주를 하는지도 보여주었다.

목가적인 소리의 오보에와 잉글리시 호른, 하프처럼 뜯어서 내는 소리의 바이올린,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박력있는 저음향연이 아름답다. 게다가 속세의 찌든 때를 씻어주는 듯한 풍경소리를 연상시키는 트라이앵글 소리도 참으로 정겹다.

▲ 왼쪽 :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협연하는 김일남 씨, 오른쪽 : 그리운 금강산과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부르는 김재란 씨     © 김영조

잠시 휴식시간 뒤 지휘대에 다시 오른 지휘자는 특별한 이야기를 한다. "돌아가신 금호그룹 고 박성용 회장은 언젠가 '나를 잠들게 하는 음악이 최고의 음악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을 합니다. 졸리면 주무셔도 좋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푹 자다 가시면서 '잘 잤네!'라고 하시면 됩니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음악임을 이야기하고, 또 그렇게 감상하도록 배려하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계속 이어진 곡은 안국민 씨의 '고향의 봄'이다. 이 음악은 이런저런 사유로 몇 년을 고향에 가지 못한 내게 진한 향수를 뿌리고 있다. 고향바다에 푹 빠지고픈 충동을 던져주는 저 소리는 바순이 아닐까? 그런데 금관악기 소리가 전반적으로 들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은 아쉽다.

다음은 서울국악관현악단 악장인 변종혁 씨가 해금 협주곡 '방아타령'을 연주한다. 고운 자태, 아름다운 한복에서 우러나오는 무지개 빛 소리는 감동을 준다. 아기자기하고 장난기도 조금은 스민 해금과 오케스트라와의 어울림은 환상 그 자체이다. 누가 국악기는 영역이 좁아서 서양악기와 맞지 않는다는 오해를 하는가?

▲ 왼쪽 : 강릉시립교향안단과 해금 협연하는 변종혁 씨, 오른쪽 : 소리 공연하는 장사익 씨     © 김영조
이어서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장사익 씨의 차례이다. 장사익 씨는 저 깊은 곳의 혼이 담긴 토속적이며, 걸쭉한 소리를 토해낸다. 그는 감성적인 찔레꽃을 부르고, 대중가요 대전부르스를 그만의 소리로 질러낸다. 대전부르스는 느닷없이 강릉부르스로 바뀐다. 우리의 촌놈은 구수한 사투리로 무릉도원 강릉의 청중들에게 감동을 선물한다. 다만, 그만의 노래 목록이 적다는 섭섭함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음악의 세계화에 주춧돌을 놓은 서원대 이병욱 교수가 작곡한 '단오를 위한 잔치(Festival for Dano)'를 초연한다. 이병욱 교수는 서원대 공연예술학부 음악과 교수로 88 서울올림픽 한강축제, 성화봉송 행사곡을 작곡했으며, 대한민국 작곡상 최우수상, 백상예술대상음악상 등을 받은 음악가로 우리음악을 대중에게 가장 가깝게 선물했다는 평을 듣는다.

이병욱 교수는 작곡의 의의를 소개했다. "강릉단오제는 이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우리의 선조가 뼈아프게 가꾸어온 강릉단오제를 주제로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뮤지컬을 만들고 있다. 여기서 연주되는 이 곡은 이 뮤지컬의 서곡으로 작곡된 음악이다. 특히 이 지방 고유의 민요 영산홍을 주제로 작곡했다. 강릉 시민 나아가 한국인과 세계인이 함께 하는 음악이었으면 좋겠다."

지휘자는 이에 덧붙여 말했다. "처음에 이 곡을 받아 연습을 했을 때 좀 이상하다고 말하는 단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연습이 깊어가면서 모두가 '정말 우리의 음악이며, 명곡이다'라고 감탄했다. 심혈을 기울여 연주하겠다.’라고 다짐한다.

현악기와 관악기 그리고 타악기가 어우러진 서양악기의 교향악은 우리의 정서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게 하는 친숙한 음악으로 청중들을 사로잡는다. 서양음악을 전공한 연주자들이 한국 음악을 표현하는 일이 정말 어려웠을 터인데 청중들을 감동하게 한 그들의 노력이 보이는 듯하다. 청중들은 앞으로 전개될 단오 뮤지컬까지 기대하고 있다.
  
강릉교향악단은 찾아가는 연주를 하고 있다. 오는 8월 중에는 경포 해수욕장, 정동진 해수욕장, 주문진 해수욕장을 비롯하여 대관령에서의 국제음악제, 강원도 교원연수원, 강릉시 포남1동, 포남2동 등을 찾아가며 무려 8번의 연주회가 계획되어 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와달라고 은근한 압력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한 달에 8번, 상상할 수도 없는 그들의 노력에 시민들은 감탄한다.

▲ 왼쪽 : 지휘자 류석원 교수는 곡 사이사이에 재미있는 해설을 곁들였다. 오른쪽 : 작곡자 이병욱 교수는 '단오를 위한 잔치' 에 대한 곡 설명을 했다.     © 김영조

하지만, 언제나 훌륭함에는 약간의 비판이 따르게 마련이다. 4기 지자체의 출범을 축하하는 음악제에 강릉시의 고위 공직자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사람들은 놀라고, 꾸중을 한다. 또 한국 음악을 지휘한 지휘자에겐 저절로 흥이 나고 그 흥에 따라 몸을 맡기는 한국적 지휘의 모습이 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연주회에 자리한 공학박사이며, 클래식음악 애호가인 김두현씨는 지적했다. "단원들이 젊은 탓인지 약간의 엇박자와 깊이가 부족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열정으로 노력하면 그건 금방 극복할 것이다. 특히 재미있는 설명과 찾아가는 연주회를 이끄는 지휘자에 감탄한다."

이런 작은 문제에도 강릉시립교향악단은 훌륭한 관현악단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초가 충분하다는 것이 청중들의 생각인듯했다. 또 강릉시의 더 많은 지원과 시민들의 사랑을 통해 지방 중소도시 교향악단의 모범으로 발돋움하고 그로써 우리문화의 균형발전을 이끌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음악을 전달하지 않고 스스로 몰입한다. 
 [대담] 강릉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류석원 
▲ 강릉시립교향악단 지휘자 류석원 교수     © 김영조
- 어떻게 서양음악에 우리음악을 접목할 생각을 했나?


"아버지가 풍물굿을 하시던 분이어서 어려서부터 늘 우리 음악을 접해왔다. 그래서 나는 낯설지 않은 우리 음악을 서양음악에 접목하는 것이 차별화된 음악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 강릉단오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우리다운 음악을 해보기로 하여 이병욱 교수에게 부탁을 했다."

- 찾아가는 음악회가 쉽지 않은 일인데...

"그동안 우리 음악인들은 대중이 음악을 너무 모른다고 아쉬워만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탓이 크지 않을까? 대중들이 쉽게 음악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순서일 것이란 생각이다. 따라서 어렵지만 찾아가기를 계획했고, 이는 사람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이젠 왜 우리 동에는 오지 않느냐는 즐거운 항의를 받곤 한다."

- 연주 사이마다 청중들에게 해설해주던데 반응은?

"곡목을 해설하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가 수준으로 설명해서는 안 되며, 청중들이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만 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개그맨도 되어야 하고, 어떤 때는 진지한 해설을 해야만 한다. 이에 대한 청중들의 반응은 뜨겁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여 청중들 마음속에 남는 음악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 지휘하는데 어떤 생각으로 임하나?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음악을 청중의 마음에 집어넣으려는 것은 잘못이다. 그저 스스로 몰입하면 청중도 따라 몰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억지로 강요하고 짜내는 자세가 이니라 청중의 가슴속에 자연스럽게 스미는 음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 오늘 연주에서 어떤 청중은 음악이 약간 뜬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또 한국적인 맛이 아직은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현재 상근단원은 45명에 불과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객원 연주자로 보충하고 있다. 그래서 호흡을 맞출 시간이 턱없이 모자란다. 그것이 그런 느낌을 받도록 했다고 본다. 우리뿐만 아니라 중소도시 관현악단들의 재정이 모두 어려울 것인데 그 탓이 아닐까? 하지만, 남 탓만 할 수는 없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하나되어 더욱 노력하고, 칭찬받는 연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그는 지방 시민들이 서울에 가지 않고 지방관현악단을 찾아주며, 사랑을 할 때 문화의 균형발전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민들의 음악 사랑이 강한 강릉에서 머지않아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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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7/17 [00:1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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