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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과 시민운동의 좌표와 방향
[비나리의 초록공명] 시민운동과 5.31 지방선거에 대한 약간의 논리 연습
 
우석훈   기사입력  2006/07/11 [10:40]
1. 눈을 감으면 보인다
 
5.31 지방선거에 대해서는 수치가 필요 없을 정도로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종료되었다. 모든 수치 분석이 무의미할 정도였고, 굳이 수치 한 가지를 들어보자면 수도권 지역에서 한나라당에서 성명의 가나다순으로 앞자리를 배정받은 후보, 즉 “2-가”라는 번호표를 들고 선거에 나간 기초의원은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당선되었다는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라북도인 정읍을 포함한 열린우리당의 선전한 지역에서는 40:40:15:5라는 비율이 대체적으로 관찰된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40%씩을 차지하고 있고, 민주노동당이 15% 정도의 비율을 가지고 있고, 한나라당이 5% 정도라고 보면 전국의 형세를 대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시민단체와 지방선거라는 눈에서 본다면 풀뿌리초록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지역정당의 실험이었던 풀뿌리 옥천당을 비롯한 풀뿌리 시민단체와 초록정치연대가 사용한 공동 브랜드의 21명 후보 중에서 2명이 당선되었고, 일산시와 서울 도봉구에 있던 현역 기초의원은 전원 탙락하였다. 약간의 수치를 더 들여다본다면 떨어진 후보들의 경우에도 안타깝게 떨어진 정도는 아니고, 대부분의 경우 당선권과는 좀 격차를 보이고 있다.
 
단체장에 대한 한나라당의 싹슬이를 비롯해 아주 소수의 시민단체에서 참여한 선거의 경우에도 참혹한 결과였고, 민주노동당의 경우도 기대했던 것만큼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아 자체적인 평가가 그렇게 좋게 나오지는 않는 분위기이다.
 
평가는 누가 평가를 한다고 해도 비슷하게 나올 것 같은데, 해석은 좀 다양하고, 앞으로의 대책도 약간은 다양하게 나오는 것 같다. 그렇지만 조금 차분하게 몇 가지 점들을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기는 하다. 한 가지 내 생각은 눈을 감아야 상황이 보이지 숫자들에 매달리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다. 자토이치가 말했던가? 눈을 감으면 세상이 보인다고...
 
2. 흐름
 
시계추를 돌려서 2002년으로 돌아가 보자. 환경운동연합과 지역 활동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위 풀뿌리 시민단체 진영의 활동가들이 고양시와 과천시를 비롯해 시장 선거에 출마하였고, 고양시과 도봉구 등에서 10여명의 당선자를 배출하였다. 대체적으로 감시와 견제라는 관점에서 지역활동을 하는 단체와 자체적인 정치세력화를 모색하는 시민정당에 대한 모색이 이 시기를 전후해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크게 보면 세 가지의 흐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2003년의 1,000인 선언을 중심으로 논의된 ‘시민정당’의 흐름은 시민단체의 일부가 ‘운동정치’가 아니라 ‘정치운동’을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 위에 서 있다. 가장 쉽게 이 흐름을 이해한다면 시민운동을 대표하는 몇 개의 단체가 창당을 하면 본격적인 시민정당의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인식 위에 서 있는데, 시대이성과 적합했는지 그리고 작동방식이 풀뿌리 방식인가에 대한 몇 가지 이견에도 불구하고 2004년의 총선에서의 물갈이연대까지 계속해서 하나의 흐름을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두 번째 흐름은 일본의 가나가와 네트워크와 유럽의 지역당을 모델로 한 ‘지역당’ 방식에 의한 시민정당의 논의가 분명히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었다. 중앙 정치에서의 거대정당이 가지고 있는 흐름과는 별도로 지역의 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별도의 흐름을 만들 수 있다는 기대는 지역의 시민운동이 어떻게 정치세력화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으로 인식된 것이 사실이다.
 
방폐장 유치로 인하여 시민투표까지 진행된 부안에서 시민자치의 모델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는데, 결론적으로 새로운 성공사례가 부안에서 등장하지는 않았다. 한 때 발기인이 700명 수준에 달했던 성남의 희망21의 경우가 높은 집결도에도 불구하고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라는 직격탄을 맞고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경우가 또 하나의 아픔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결과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풀뿌리 옥천당의 경우가 이러한 지역당 논의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흐름은 녹색정치준비모임을 거쳐 창립된 초록정치연대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형 녹색당 창당이라는 이 흐름에 대한 시대의 반응은 싸늘했다고 할 수 있다. 한 때 열 두 명 정도를 보유했던 기초의원은 과천의 의원 한 명으로 줄어든 상태이고, 녹색자치의 실험지역으로 주목받았던 고양시와 도봉구에서 결국 공식적인 의정활동에서는 철수하게 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녹색당 창당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과연 필요한 것인가 혹은 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의 정치세력화라는 테제가 여전히 유효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해볼 수는 있다. 물론 5.31 공동행동이 현실로 드러내 보여준 결과는 싸늘하다 못해 얼어죽을 지경이기는 하다.
 
3. 복기
 
억지로 시민후보라고 해석하든 혹은 초록후보라고 해석하든 한나라당의 역풍이 없었다면 3~4명 정도는 더 당선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야말로 대세와는 무관한 작은 변화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5.31 지방선거에서 중앙정치의 흐름이 아닌 풀뿌리 시민단체의 차원에서 사실상 이변은 없었다고 볼 수 있고, 빠르면 2년 전에 예측할 수 있는 상황 혹은 늦어도 1년 전에는 대부분 현재와 같은 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1월에 전국의 시민단체 중에서 선거참여 의향이 있는 단체를 중심으로 출마자 현황 조사를 하였을 때, 작게 잡으면 200여명, 많게 잡으면 300여명의 활동가 혹은 회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출마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2006년 1월에 다시 조사를 하였을 때 이 숫자가 30여명으로 줄어있었다. 이 때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추세적으로 기존 정당으로 흡수된 숫자가 대체적으로 한나라당이 1/3 정도 되었고, 열린우리당이 2/3 정도 되었고, 민주노동당으로 흡수된 사람들의 숫자는 비율을 따지기에는 너무 적었다. 
 
사회적 변화와 시민사회단체의 선거에 대한 입장의 변화와 같은 마이크로 단위의 사건들이 몇 가지 있기는 한데, 역시 가장 큰 사건은 기초의원 정당공천제의 폭발력이 현실로 드러난 셈이다. 정당공천제에 대해서는 단체별로 혹은 개인별로 입장이 다르기는 하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입장을 얘기하기가 쉽지는 않은데,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작은 제도의 변화가 이렇게 전체의 흐름을 변동시킬 정도로 큰 변화가 생겨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 같다.
 
여기에 거의 게리맨더링에 가까운 중대선거구제에 대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상식을 벗어난 합작이 있었다.
 
이런 제도상의 변화 속에서 열린우리당은 거대한 블랙홀처럼 지역의 활동가들을 흡수했고, “그런 것이 정치 아니겠어?”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 사이에서는 제도 개선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협력 구도가 생겨날 수도 있었는데, 4인 선거구제에서 정당공천제와 민주노동당에는 최고의 호기라는 판단 때문인지 쉽게 보수정당과 합의를 했다가 4인 선거구제 분할 과정에서 뒤늦게 시민사회의 협조를 요구하게 되는 약간의 혼선이 생겨났다.

물론 중앙 정치의 눈에서 보면 지역에서 뻔한 기초의원 몇 자리를 놓고 벌어진 이 신경전이 아무 것도 아닌 사건이기는 하지만, 지역에서는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 사이의 앙금의 골을 좀 깊게 만드는 작용을 하기도 하였다.
 
4. 현시
 
5.31 지방선거까지 진행된 과정 그리고 그 결과를 과정으로 본다면 약간의 제도 변화가 가뜩이나 취약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게 된 결과라고 평가한다면 아마 가장 무난한 평가가 될 것이다. 2003년에 “풀뿌리는 강하다”라는 인식이 2006년 초반에 “풀뿌리가 약한 걸 몰랐어?”라는 인식으로 바뀌게 된 약간의 말장난은 의미 값으로는 우리나라 직접민주주의의 토양이 미약하다는 말과 같다.

희망이 있는 줄 알았는데, 희망은 없었다라고 말하거나, 지역에서 더 많은 노력과 기반이 필요하다고 말하거나 사실은 다 같은 말이다. 뭔가 잘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정부가 잘못했고, 그래서 이런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래서 누가 평가를 하더라도 사실 5.31 지방선거에 대해서 선거국면에 대한 구구한 분석에도 불구하고 다른 평가가 있을 건 별로 없고, 다만 ‘아전인수’에 가까운 색다르거나 다양한 해석만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거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면 호들갑스럽게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관점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고민을 다시 하거나 새로운 ‘프레임’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는 없다. 원래 지역의 시간은 중앙의 시간과 다르므로 집중적이고 전략적인 노력을 하거나 아니면 저강도의 노력이라도 오래 하면 된다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면, 기다리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이나믹’이 특징인 대한민국의 중앙과 달리 지역의 토호와 특정 정당의 집권 그리고 이권세력의 강화와 같은 문제들은 언젠가는 해소될 문제이지만, ‘공중전’에 익숙한 중앙활동가들이 호사스럽게 떠드는 호들갑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시간과 노력의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지금 있을지도 모른다고 질문을 바꾸어보면 좀 고민거리가 생겨난다.
 
가정을 한 번 해보자. 2년 전에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그 일이 ‘현시’된 것이 다만 2006년 6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한 번 해보면 어떻게 될 것인가? 선거는 투표장에 있는 국민들의 마음이 ‘드러나서 보여진’ 현시일 뿐이고, 사실 지난 2년 동안 어쩌면 국민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객관적으로 알 수 없던 현실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진 것인지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 “어떠한 일”이 과연 무엇일까?
 
5. 질문
 
대답을 위해서 다시 한 번 질문을 해보자. 한국 사회에서 시민사회는 지금 절정기로 향하고 있는 상승곡선의 상승축에 서 있는지 아니면 최절정의 국면에 있는지 아니면 절정을 지나 하향하고 있는 시기에 있는지라고 질문을 해보자. 수 천개로 추정하는 단체를 일괄해서 평균을 낼 수 있는 방법은 없고, 또 물리적 공간에서 활동하는 단체가 아닌 사이버 공간에서 작동되는 단체들이 증가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보는 시각과 기준 그리고 잣대에 따라 수 천개의 답변이 존재할 수 있는 질문이기는 하다.
 
나는 최고점은 이미 2002년 혹은 2003년에 지났고, 2004년을 지나면서 급격히 쇠락하고 있는데, 그 쇠락이 눈으로 들어난 것이 바로 현 시점의 지방선거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환경단체와 여성단체가 조금 먼저 하강국면으로 들어갔고, 주요한 풀뿌리 시민단체들이 2004년 경에 대체적으로 최고점을 지났고, 마지막으로 비교적 최근에 자리잡은 조합원 30여만명의 생활협동조합이 2005년에 최고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상당한 가능성이 있고 또 사회적 의미도 높은 대학생협운동이 스스로 자리를 잡고 작동하기도 전에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는 아주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화여자대학교의 학생생협이 아주 어려운 상황이고, 학생회관의 서점과 학생식당을 중심으로 비교적 건실하게 활동하는 서울대 생협도 점차적으로 곤란한 상황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시민운동의 또 다른 활로이며 지역활동의 근거지로 이해되었던 생협들은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사회적 의식의 고양에도 불구하고, 2005년 양적 성장의 침체와 함께 많은 단체들이 적자로 돌아섰고, 적자폭도 점차적으로 높아지는 중이다.
 
그렇다면 시민단체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포함한 민중단체들도 많은 어려움 속에서 힘들어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90년대에 너무 폭발적으로 성장해서 지난 2~3년간 침체된 것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 중인 것인가? 특히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민단체의 곤란함은 단순히 착시라고 보기에는 약간은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것 같아 보인다.
 
하나의 질문이 더 남는다. 이유야 무엇이든 단체 운영에 문제가 있어서 어렵게 된 것인가 아니면 신자유주의라 부르든 혹은 또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시대가 변해서 이렇게 어렵게 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답할 능력은 없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한 가지의 방법이 있기는 한데, 90년대의 전위조직에 해당했던 새로운 부문을 개척했던 소위 아방가르드형 조직이나 새로운 스타일의 표현방식 혹은 이해방식이 등장하기 보다는, 기존의 역량들이 연구소라는 형태로 후퇴하는 중이라는 것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운동이 망해서 연구소라는 탈출구로 나가는 중인가 아니면 운동 역량이 고양되고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 드디어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이 연구소를 만들 수 있는 역량에 도달한 것인가? 아무래도 전자에 해당할 것 같고, 최근의 흐름은 시민운동이 입지가 그만큼 협소해졌고, 버티기가 어렵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한다.
 
6. 분기
 
지나치게 도식적인 경향이 있어서 좋은 방식은 아니지만 아주 단순하게 시민단체를 미국형과 유럽형으로 구분한다면 미국형은 워싱턴에 자리를 잡고 외부 펀딩을 통해서 고액연봉을 받는 전문가 중심으로 정책 로비스트의 기능을 하는 방식으로 구분하고, 유럽형은 일부는 시민행동의 형태로 그리고 일부는 대안정치 형태로 분화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구분은 도식적이기는 하지만, 설명하는 바가 전혀 없지는 않다. 워싱턴의 로비스트와 베를린의 반핵평화 정도라고 상징적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이런 구분은 뭐가 좋고 나쁜 평가에 관한 문제는 결코 아니기는 하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나름대로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차이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다당제와 양당제 사회라는 차이에 해당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미국 정치의 특징인 양당제는 사회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이 어렵고, 기존의 정치질서에 어떻게 새로운 변화를 잘 반영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정책들을 개선할 것인가가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반면에 실질적인 다당제를 운영하는 유럽의 경우에는 새로운 문제가 생기면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여 다양한 유형의 정당 흐름을 만들고, 이 변화에 의하여 사회가 새로운 문제에 대하여 대응하고 적응하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두 가지 다 시스템이라는 관점에서는 나름대로는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제도는 다당제인데 실제로는 3당 합당 이후로는 양당제 비슷하게 운영되고 있는 중이다. 현실정치에서 민주노동당이 약간의 캐스팅 보트를 쥘 수도 있지만 현실은 양당제에 가깝다. 한나라당이 더욱 강력해질수록 이에 대응하는 반한나라당 연대의 흐름이 어쨌든 더 강해질 것이고, 당분간 외부충격 내지는 내부에서의 획기적인 변화가 없이는 양당제 구도가 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을 마지막으로 새로운 정당 특히 대안정당이 등장하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대선을 경계로 새로운 정당이 생겨날 수는 있는데, 선거 중간의 이합집산을 통해서 양당제와 비슷한 유형으로 수렴될 것 같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90년대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은 유럽형에 가까운 초기 출발을 모습을 보이다가 양당제 사회인 미국의 시민단체 유형으로 어쩔 수 없이 전환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고, 미국형으로의 전환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부 시도하는 분기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흐름으로만 본다면 ‘새 것은 아직 오지 않았고, 지금 있는 것은 너무 헌 것’인 상황이 시민단체라고 부르든 민중단체라고 부르든 하여간 우리나라에서 국민을 대변하는 비정부기관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인 것 같다.
 
순수하게 시민단체의 입장으로만 본다면 양당제가 유리할까 아니면 다당제가 유리할까? 어려운 질문이기는 한데, 나는 우파도 극우파와 드골주의자 그리고 비드골주의 신자유주의 정당으로 3개 정도로 분할되어 있는 프랑스의 경우가 정당 시스템으로서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우파가 분할되어 있으므로, 좌파나 대안정당도 보다 ‘거대한 공포’ 없이 손쉽게 제도정치에 진입하고, 1장과 2장 혹은 막장의 구분 없이 나름대로의 정치 스펙트럼을 구성하게 된다.
 
노무현 정부의 등장 이후로 시민단체는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에 양당제 형태의 운영에 일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인 것 같기는 하다. 현실적으로 지난 3년 동안 우리나라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양당제처럼 움직여나간 것이 사실이다. 좋으냐 나쁘냐라고 이 자체만 가지고 판단할 수는 없다.
 
7. 충분조건
 
이러한 양당제와 다당제라는 일반적 흐름 아래 법칙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목격되는 하나의 흐름을 추가하면 좀 무거운 결론이 도출된다. 영국을 제외하면 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를 적극 도입한 국가들 중 거의 대부분이 7~8년 정도 지나면 전통적 좌파진영의 지지율이 반 정도로 떨어진다. 법칙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 다당제의 경우에는 연정의 옵션에 따라서 중도파와 대안파 혹은 극우파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보다 다양한 현실적 그림이 그려지기는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현실적인 다당제이기 때문에 좀 우울하게 된다.
 
대체적으로 DJ 때 신자유주의를 적극 도입해서 8년 정도 지났기 때문에 초창기 지지율이 절반 정도가 될 시점이 지금쯤인데, 이 조건이 현실적 양당제와 결합하면 우파정당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득세하는 상황에 대한 충분조건이 형성된다. 대체적으로 지금의 상황이 이와 그렇게 다르지 않다. 노무현 정부가 조금 더 잘했느냐 못했느냐 혹은 말을 조금 조심해서 했느냐 혹은 시민단체와 민중단체의 경고를 조금 더 경청했느냐와 아닌가와 같은 작은 상황적 조건들이 이 충분조건으로 결합된 시대의 상황을 아마 크게 바꾸지 않을 것 같다.
 
중앙단체가 충분히 기능을 했는가 혹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단체의 적극적 참여가 있었는가와 같은 상황들은 대세를 바꾸거나 현시의 발현태를 수정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는 아닌 것 같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노무현 정부는 자신의 지지율을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리기 위한 정책기조를 열심히 강화시키고 있었고, 시민사회는 양당제를 강화시키는데 적극 기여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상황이 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5.31 선거는 사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2년 전에 이미 형성된 이 역사적 구조가 잠깐 먼저 맛보기로 드러난 것일 뿐이고, 진짜 어두운 시대의 질곡은 앞으로 오는 4~5년 간일 것 같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유럽이나 남미의 국가에서 신자유주의가 잠깐이나마 다시 완화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국민들 대부분이 매우 곤란할 정도가 되어야 할 것인데, 우리나라는 충분조건이 너무 강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정말 어려운 상황이 도래할 순간도 다른 나라의 10년 정도 보다는 좀 빠르게 4~5년 정도로 단축되지 않을까한다.
 
물론 대체적으로 이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2007년 대선에 몇 가지 반전의 시도를 하기는 할텐데, 워낙 도도한 이 흐름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양당제라는 특별한 운영상의 흐름이라는 것이 현 상황에서 개미지옥과 같아서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더 깊게 들어갈 뿐일 것 같다. 대통령을 누가 하든 상관없이 이미 우리는 개미지옥에 걸려 있다.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포와 시민단체의 몇 가지 시도가 더 깊게 개미지옥으로 들어가게 만들 것 같다.
 
8. 대안은?
 
냉정하게 생각해본다면, 만개한 형상이 끝난 지금은 앞으로 펼쳐질 신자유주의의 깊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서 이 시스템이 지나치게 독재형상으로 가지 않을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것 같고, 지나친 정치공학적 계산보다는 자신의 존재의 이유와 원칙에 충실한 철학의 시대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우파의 분화 그리고 그를 촉진할 좌파와 대안정치의 다양한 분화가 시스템 분석으로는 현 상황을 완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해법 같아 보이는데, 아마도 신자유주의 반대에 대한 통일전선이 당분간 득세할 것이므로, 우파들도 분화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 반한나라당 연대의 기치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한나라당 내의 극우파가 별도의 분기를 할 것인가? 불가능할 것 같다. 현재로서는 대안은 별로 없어 보이는데, 겨우 재창당에 성공한 희망사회당과 다시 창당을 시도할 녹색당 세력이 창당에 성공한다고 해서 이 흐름에서 분기와 분화를 통한 획일화를 막아낼 대안이 된다고 주장할 정도로 나는 간이 크지 못하다. 해볼 수 있는 몇 개 안되는 옵션으로 자체 정책 프로그램들의 다양한 정치세력화가 5.31 선거 이후에 드러난 도도한 흐름 앞에서 가능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너무 우울한가? 답이 아주 없지는 않을텐데, 누군가는 좀 희생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아 보인다. 대안, 아주 가늘게 펼쳐질 몇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이 말했던가? 생즉사, 사즉생이라고...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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