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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많은 아파트 광고, 말리는 사람도 없다
[비나리의 초록공명] 전 국토의 아파트화, 대한민국은 사회주의 국가인가
 
우석훈   기사입력  2006/06/12 [09:13]
21세기 들어와서 죽어라고 아파트만 짓다가 나라가 망할 꼴이 났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리 생각없는 배우라고 해도 그렇지 TV에서 아파트 광고하느라고 방긋방긋 웃고 있는 걸 보면 자꾸 화가 난다.

이게 무슨 동구의 국가대개조 시절도 아닌데, 마치 국가대개조 시절의 소비에트나 평양의 아파트 건립붐 보는 것 마냥 아파트 짓는데 온 힘을 쏟고 있다. 죽어라고 아파트 짓던 건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들이 인민에게 살 권리를 주느라고 한참 해댔는데, 이런 나라들도 국민소득에서 건설지출 비중이 우리나라처럼 높지는 않다.

국가 토건과 건축이라는 숫자로만 보면 우리나라는 사회주의 국가보다도 더 사회주의 국가같아 보인다.

국가대개조라는 흐름 속에서는 종이신문이나 여당 야당 같은 것도 없고, 정부부처의 구분도 없고, 엘리트와 비엘리트의 구분도 없다. 하여간 국민에게 집을 주어야 함은 물론이고, "언제나 20평 사는 사람들은 작은 집에 살라는 말이냐"고 국민 1인당 10평을 외치는 택지 공급론자들을 보고 있으면, 무슨 70년대 사회주의 전당대회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박정희가 사실은 사회주의자였다는 말이 틀리는 것 같지는 않다. 박정희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죽어라고 아파트만 짓고 있는 걸 보면 "인민에게 주거권을" 외치던 80년대 건설붐에 국토대개조 흐름에 서 있던 동구국가들 보는 것 같다. 아니, 지들이 사회주의자야? 충분한 주택공급으로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매일 같이 떠느니 말이야...

구스타프 에펠이라는 사람은 여러가지로 존경할만한 구석이 많은 사람이고, 에펠탑을 구상하기 전에도 이미 국민적 영웅이 된 건축가이다.

그  천하의 에펠이 에펠탑을 만든다고 할 때에도 과연 그런 철기 문명을 상징하는 무지막지한 건축물을 파리에 두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느냐를 가지고 세기의 논쟁이 벌어졌다. 논쟁 끝에 결국 에펠탑을 짓기로 결론이 나기는 했지만, 그나마 이런 걸 가지고 논쟁을 해본다는 점에서 부럽기만 한 일이기는 하다.

그냥 무식하게 표현하면 에펠탑 파들이 파리에도 고층 빌딩을 지으려고 몇 번 시도를 하기는 했는데, 70년대 석유파동 때 센느강 왼쪽 축이 잠깐 뚫렸다가 결국은 파리에 고층 건물이 들어와서는 안된다고 반대파들이 100년 동안의 논쟁에서 이긴 셈이고, 지금도 파리에서 7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는 없다. 몽파나스역과 같이 고층 빌딩이 잠깐 들어오기는 했는데, 대부분 "그러므로" 다시는 그런 건물을 지어서는 안된다는 역사적 상징 같은 것이 되었다.

서울에서 높은 건물이 올라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으로서는 성남공항 외에는 이걸 막아주는 아무런 힘이 없는데, 롯데월드를 엄청 높게 높이자는 바보 같은 상황에서 공군이 지금 이걸 지켜주고 있는 셈이다.

아니, 우리나라에서 철학자와 문학가와 소위 대문호들은 도대체 뭘 하고, 국토대개조의 힘을 겨우 공군이 막아주고 있는가?

흉물스럽게 올라가는 도시의 건물에 대해서 다른 나라에서는 대개 인문학 하는 사람들이 도시의 수직과 수평적 팽창에 대해서 비판하고 사회적 접점을 만들어주는데, 우리나라 건축가들은 TV 광고에 나와서 예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을 찍찍 해대고, 더 젊은 예술가들인 배우들은아파트 사시라고 방긋방긋 웃고 있다.

도대체 파리나 런던이나 아니면 베를린이나 본 이런데 아니면 스위스라도 뻔질나게 다니면서 도대체 잘 사는 이 나라들의 수도나 큰 도시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어떤 긴장감을 가지고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지키려고 하는지 한 번도 못봤단 말이야?

존경하옵는 국민건축가 구스타프 에펠이 에펠탑을 짓겠다고 할 때에도 웃기는 짓 하지 말라고 했던 인문학의 힘이 사실은 점잖은 도시, 그리고 천박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한 축을 형성하게 되는 노력인 것 같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아흔아홉칸 기와집을 지어서는 안되고, 구첩반상에 밥을 들여서는 안된다고 했던 점잖았던 인문학의 쟁쟁한 어른들은 다 어디가고, 돈만 주면 영혼도 판다는 광고쟁이들만 남아서 천박한 입을 방긋방긋 거리고 있는지, TV의 아파트 광고만 보면 역겹다.

해밍웨이는 소설가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대단히 행복한 삶을 영위한 사람인데, TV에 나와서 방긋방긋 거리는 예술가들은 해밍웨이와는 전혀 정반대의 삶을 사는 것 같아보인다.

죽으면 가지고 가지도 못할 돈을 움켜쥐지 못해서 안달이 난 자판기 버튼을 누르면 나올 것 같은 아파트를 가지고 예술이라고 우기는 건축가나 나이 서른도 되지 않아 돈독이 오를대로 올라 방긋방긋 웃는 배우들이나... 그야말로 돈독 올라 국토대개조의 대장정에 오른 예술 대천박의 시대이고, 인문학 대깽판의 시대인 것 같다. 

공룡이 왜 망했나? 열심히 덩치 키우다 망했다.

(아기 공룡 둘리와 둘리 엄마가 종이 다르다는 강력한 반발을 듣고 요즘 공룡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가 않는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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