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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소 축소는 이미 99년부터 계획된 일”
[컬처뉴스의 눈] 스크린쿼터 관련 정부의 황당 발언들 잇따라 밝혀져
 
박형철   기사입력  2006/02/22 [20:38]
지난 21일 화요일 '한미 FTA 추진과 협상 전망'이라는 주제로 열린 한국언론재단 초청 포럼에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충격적인 발언을 내던졌다. 그 발언의 내용인즉 "한덕수 경제부총리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있던 1999년 한·미 투자협정 추진 당시, 미국 측의 스크린쿼터 폐지 요구에 대응해 우리 측은 73일까지 축소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것. 이미 7년 전에 스크린쿼터 축소 일수까지 미국과 약속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정부는 미국 측과 서로 협의를 진행하면서도 국민들에게는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 갔다. 그러면서도 간헐적으로 스크린쿼터 축소 얘기를 던지며 조금씩 조금씩 논란을 일으켜왔다. 그러던 가운데 지난해 말부터는 '돌출 발언'을 가장해 본격적으로 스크린쿼터 문제를 꺼내기 시작하더니, 결국 올해 1월 26일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을 단행했다.

▲ 지난 1월 27일 문화관광부 브리핑 실에서 정동채 장관이 영화지원대책에 관해 발표하고 있다.     © 대자보

본격적인 돌출 발언의 시작은 지난해 11월 4일 박병원 재정경제부(아래 재경부) 1차관의 정례 브리핑에서 나왔다. 이날 박 차관은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해 문화관광부와 협의하고 있다",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매우 높아졌고 시장 점유율이 쿼터량을 훨씬 웃돌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스크린쿼터를 그대로 유지하는데 실익이 별로 없다", "스크린쿼터 축소는 영화산업의 경쟁력을 보다 향상시키기 위한 보완책과 함께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는 한미 FTA 협상을 위해 미국 측이 제시한 전제 조건인 스크린쿼터를 축소해야 한다는 기사들이 난무할 때였다. 이와 맞물려 언론들은 박 차관의 발언을 집중 보도했다. 이에 영화인들과 시민단체들은 즉각 성명을 내걸고 해명을 요구했다.

영화계가 들끓자 재경부는 그 날 오후 바로 사태 수습에 나섰다. "정부와 영화인들이 문화관광부를 창구로 해서 논의가 계속 진행 중이며 축소와 폐지 같은 결론이 난 상황은 아니다", "박 차관의 말은 통상 측면의 입장에서 언급한 것일 뿐이다"며 애매모호한 말로 해명했다.

재경부의 해명으로 스크린쿼터 축소 논란이 차츰 줄어들 무렵, 정동채 문화관광부(아래 문화부) 장관이 나서 이 논란을 한꺼번에 해소시켜 주었다. 지난해 11월 17일 정동채 장관은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강연에서 "스크린쿼터를 유지해야 하고 앞으로도 유지할 것", "정부도 스크린쿼터를 유지해야 한다고 보고 대통령과 총리의 생각도 이와 같다", "미국이 스크린쿼터 축소를 통상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걸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까지 본격적인 협상에 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영화의 경쟁력과 관계없이 스크린쿼터를 유지해야 한다"는 발언은 박 차관의 발언이 그야말로 돌출 발언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었기에 영화인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정동채 문화부 장관 발언 이후, 스크린쿼터 논란은 일단락 된 듯 했다. 하지만 이 때도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러한 보도들을 보고 사실 무근이네, 여론 형성이네 하는 의견들이 분분할 즈음, 올해 1월 20일 또 한 차례 돌출 발언이 등장한다. 권태신 재정경제부 제 2차관이 그 주인공이다.

권 차관은 1월 20일 한 조찬 포럼에서 "전체 국민은 4,800만 명인데 비해 영화인은 1만∼2만 명이고, 우리나라 전체 수출이 2,800억 달러인데 반해 영화 수입은 1억 달러 규모밖에 되지 않는다", "집단이기주의가 스크린쿼터에도 있다", "자기 것만 안 잃으려고 한다"는 등의 발언을 내던졌다. 이는 앞서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연설에서 한미 FTA를 강조한 직후에 나온 발언이라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아니나 다를까, 권 차관 발언 1주일 후인 1월 26일, 한덕수 부총리는 정례브리핑을 통해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을 발표했다. 다음날인 27일엔 정동채 문화부 장관이 "송구스럽다"는 말과 함께 영화진흥을 위해 4천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지난해 11월부터 불거져 나온 정부의 발언들을 모아봤지만, 그 이전에도 이러한 정부의 발언과 사태 수습의 순환은 계속해서 있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발언은 결국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을 이끌어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계속되는 돌출 발언이 스크린쿼터 축소 찬성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정부의 치밀한 전략이라는 견해다. 또 다른 일부에서는 정부 각 부처 사이의 커뮤니케이션과 협의가 제대로 되지 않은 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이 재경부 정례 브리핑을 통해 발표된 것이 보여주듯 스크린쿼터는 철저하게 경제 논리로 재단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 이후에도 스크린쿼터와 관련한 정부의 발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2월 16일 대외경제위원회 회의에선 "어린아이는 보호하되 어른이 되면 다 독립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영화가 어느 수준인지 스스로 판단해 볼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권태신 재경부 차관도 불교방송에 출연해 "스크린쿼터는 영화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FTA와 관계없이 없애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여전히 정부는 영화산업의 경제적 측면에서나 문화정책 측면에서나 스크린쿼터가 중요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합리적 설득이나 이해, 생산적 대안 없이 황당한 수사만 늘어놓고 있는 상황이다.

* 본 기사는 민예총 컬처뉴스 (www.culturenews.net) 에서 제공했으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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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2/22 [20: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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