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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보호필요하나 Vs 유통·배급 잠식당해
[쟁점] 스크린쿼터 축소 여파, 영화 및 문화산업 전반으로 논란 확산
 
박형철   기사입력  2006/02/05 [01:22]
정부가 한덕수 경제부총리의 입을 빌어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을 발표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이를 둘러싼 논란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정부와 일부 언론은 한미 FTA가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기에 이를 위해선 스크린쿼터 축소가 필연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영화인들은 이번 결정이 한국영화의 침체는 물론 문화산업 전반에 위기를 불러일으킬 것이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해 찬·반 의견이 대립하는 가운데 그 배경, 의미, 파장에 대한 쟁점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미 FTA 협상의 득과 실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 후 철야농성에 들어간 영화인들     © 민예총 컬처뉴스 제공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이 내려지면서 한미 FTA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그리고 2월 3일(금) 새벽 5시(한국 시간)를 기해 한국과 미국 정부는 한미 FTA 협상 개시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정부는 스크린쿼터 축소로 굴욕적 외교라는 비난까지 들어가며 한미 FTA에 목을 맸다. 정말 한미 FTA가 한국의 경제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인가?
  
정부에 따르면 한미 FTA 협상이 미국과의 단일시장을 만들어내므로 최대 규모의 수출시장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국내총생산(GDP) 증가, 10만 명 이상의 고용 창출, 아시아·태평양 교역 허브로서의 도약 등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미국 측이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요구한 스크린쿼터 축소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 FTA 협상이 실제로 경제적 효과를 가져오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의견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한미 FTA 협상은 궁극적으로 대미 무역 적자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관세는 2.5%에 불과한데 비해, 한국은 8%의 관세가 부과되어 있어 이들 관세가 철폐될 시 이득을 얻는 쪽은 미국이라는 의견이다. 3일(목) 새벽에 방송된 MBC <100분 토론>에서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정부는 수출을 강조하고 있지만,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가 무역적자가 누적되면 어떡할 것인가”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러한 대미 무역 적자와 함께 공공서비스 분야에도 민영화가 이루어질 경우,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또한 문화산업의 순차적 개방에 따른 문화산업 시장의 침체와 농업 생산의 40% 감소 등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이하 영화인대책위) 기자회견에서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의 말처럼 “미국이 최대 시장임은 분명하지만, 최악의 상대”인 것이다.
 
자유경쟁 가능한 경쟁력 확보 vs 유통·배급 잠식으로 경쟁 기회 박탈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는 한국영화 침체의 우려를 낳고 있다.사진은 발표 후 수심에 찬 이현승 감독     ©민예총 컬처뉴스 제공
스크린쿼터 축소 발표 이후 가장 뜨거운 논쟁은 ‘한국영화 경쟁력’을 놓고 벌어지고 있다. 스크린쿼터 축소에 찬성하는 입장은 이미 50% 이상 국내 점유율을 차지한 한국영화이기에 할리우드 영화가 들어오더라도 경쟁력이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조희문 상명대 영화학과 교수는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더라도 한국영화의 침체는 오지 않을 것이며, 스크린쿼터 축소로 인해 자유 경쟁이 이루어질 시 한국영화는 경쟁력을 더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고도 주장한다.
 
이에 대해 반대 입장은 영화산업의 경쟁력의 주요한 변수는 제작이 아닌 유통과 배급에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정지영 영화인대책위 위원장은 “시장은 영화와 관객이 만나는 극장에서 형성된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미국 배급사가 국내 유통망을 장악하게 되면, 아무리 경쟁력 있는 한국영화라 할지라도 극장에 걸릴 기회가 줄어들게 된다고 주장한다. 최근 문화관광부에서 내놓은 4천억의 지원금은 제작에 관련된 지원금이지 유통과 배급에 대한 산업 지원금이 아니기 때문에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대응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1990년대 대기업들이 영화산업에 들어왔다가 수익성이 별로 없자 철수했던 것처럼 현재 배급과 유통의 수직계열화로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CJ나 쇼박스도 한국영화에 수익성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외국영화 수입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문화산업 여타의 분야로 이어지는 개방의 도미노 현상
 
이번 스크린쿼터 축소가 단지 영화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사실, 이번 쿼터 축소로 인해 가장 불안에 떨고 있는 분야는 방송이다. 현재 방송은 지상파 80%, 케이블 50%의 쿼터를 갖고 있다. 하지만 미 무역대표부는 세계무역장벽보고서 등을 통해 계속해서 한국 영화·방송 산업에 대한 무역장벽을 언급해 왔다. 전문가들은 이 보고서의 기조가 한미 FTA 협상에도 작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강준구 연구원이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 따르면 “한국에서의 외국 프로그램 비율의 상한선 조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으며, 한국방송광고공사의 독점적 지위에 대해 미국이 이의를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영화인대책위의 양기환 대변인도 “스크린쿼터 축소로 인해 80%의 방송 쿼터도, 60%의 음악 쿼터도 무너질 것”이라며 이로 인해 “기껏 이루어놓은 한류도 곧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스크린쿼터의 수혜, 일부만 독점
 
▲한국영화 내부의 큰 문제점 중 하나인 스탭 처우 문제.사진은 영화산업노조 가입 지원서를 쓰고 있는 한 스탭.     ©민예총 컬처뉴스 제공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는 영화인들에 대한 가장 아픈 여론의 뭇매는 한국영화계 내부 문제에 대한 비판이다. 스크린쿼터의 보호 속에서 벌어들인 흥행 수익은 스타 배우, 스타 감독, 일부 제작자들이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에 동조하는 여론이 적지않다.
 
이미 지난해 강우석 감독과 스타 배우 최민식, 송강호와 오갔던 논란 중에 나왔던 ‘시장 가격’ 발언에 비판 여론이 적지 않았다. 특히 한국영화산업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영화산업 노동자들은 여전히 사실상 노동력 착취라 할만한 전근대적 도제시스템을 강요받고 있다. 스크린쿼터가 강대국의 자본에 대해서는 약자보호 논리를 펴면서 정작 국내 영화계 내부의 약자 문제에는 눈감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스크린쿼터로 확보된 극장의 대부분을 흥행 위주의 대형 상업영화가 장악함고 있는 실정이어서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 한국영화의 다양성은 전혀 존중받고 있지 못한 현실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무력한 영화인들이 문화 다양성을 주장하며 스크린쿼터 사수를 주장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것이다.
 
영화인들은 영화계 내부의 문제는 영화계 내부에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지 스크린쿼터 문제를 이와 관련짓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또한 스크린쿼터 축소로 한국영화의 상영 기회가 줄어들게 되면, 영화산업 노동자는 처우 개선 이전에 실업 사태를 맞게 될 것이며, 그나마 최근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들도 상영 기회를 갖는 것이 더욱 힘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도 영화계 내부문제에 대한 비판은 상당하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에 대한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라도 한국영화계에 제기되고 있는 비판에 영화계가 좀더 진지하고 구체적인 성찰과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 본 기사는 민예총 컬처뉴스 (www.culturenews.net) 에서 제공했으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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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2/05 [01:2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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