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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남자' 공길과 장생은 이기주의자?
[컬처뉴스의 눈] 스크린쿼터 예고편 된 '왕의 남자', 패배와 좌절만 남나
 
김소연   기사입력  2006/02/03 [19:39]
장안의 화제 <왕의 남자>를 보았습니다. <쉬리>도 제치고 <친구>와 <웰컴 투 동막골>을 한꺼번에 제친 팔백만을 넘어선 이 영화의 흥행 기록에는 제 머릿수도 하나 보태져 있습니다. 내친김에 연극 <이(爾)>도 다시 보았습니다.

<왕의 남자>의 원작인 연극 <이(爾)>는 연산군 일기에 등장하는 한 구절, 한 우인(優人)이 늙은 선비 놀이를 하던 중 논어의 한 대목을 인용해 군주의 덕목을 읊다가 연산에게 밉보여 극형을 당했다는 구절에서 출발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작가의 상상력은 이 구절에 기대어 연산이 광대놀이를 즐겼고 궁중에는 광대놀이를 관장하는 희락원이 있었으며 희락원의 장이라 할 대봉인 공길과 연산이 동성애 관계였다는 데에 이릅니다.
▲ 연극 <이(爾)> 와 영화 <왕의 남자>  

<이(爾)>에서 공길과 연산의 동성애라는 설정은 왕과 광대라는 이들의 신분에서 비롯되는 권력, 계급 그리고 광대 혹은 예술의 대립을 격렬한 극적 갈등으로 증폭시킵니다. 공길을 가운데 두고 연산과 장생을 양쪽으로 벌려 세움으로써 연극은 현실에서의 실체적 권력과 그것을 넘어서는 웃음, 광대, 예술을 격돌시킵니다.

반면 영화는 연극이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현실의 권력과 예술의 대립을 전면화하지 않습니다. 계급적 위계가 그대로 드러날 뿐만 아니라 계급의 넓은 간극이 권력에 대한 욕망과 예술 의지의 갈등을 도드라지게 하는 연극과 달리 영화에서 공길과 연산의 계급적 간극은 그다지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공길을 방으로 불러들여 '우리 놀자'라고 보채는 연산의 모습이나 연산의 눈물을 닦는 공길의 떨리는 손에서 이들의 계급적 간극은 지워지고 (혹은 그것을 뛰어넘는) 상처받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 도드라집니다.

영화와 연극 모두에서 공길과 장생 두 광대는 끝내 현실에서 패배합니다. 권력에의 욕망이건 혹은 상처받은 인간에 대한 뿌리칠 수 없는 연민이건 이들은 결국 현실에서 아무 것도 성취하지 못하고 죽음이라는 파멸에 이릅니다. 그러나 한편 영화와 연극의 결말은 이 두 광대가 스스로 현실을 넘어서 버림으로써 패배를 초월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휘청거리는 줄 위에서 창공으로 힘껏 오른 채 정지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나 연산이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발가벗기 우고 권력의 허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연극에서 공길의 마지막 놀이판은 현실의 패배를 초월하는 카타르시스를 전해줍니다.

예상 밖의 선전을 넘어 흥행기록을 갱신하는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왕의 남자>에 대해 찬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폭이라든가 분단 혹은 코미디 등 이즈음 흥행 트랜드와는 거리가 먼 남사당패라는 새로운 소재와 이야기, 감우성과 신인 이준기 등 배우의 발견, 거기다가 한국영화 평균 규모를 밑도는 제작비까지도 이 영화의 미덕으로 칭송 받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화제와 찬사는 거꾸로 이 영화가 개봉할 당시 별다른 이목을 끌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트랜드가 반영된 대중적 소재도 아니고 대형 스타도 없고 그렇다고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 '꺼리'가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처음 연극 <이(爾)>를 볼 때, 결말의 초월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권력에 끊임없이 좌절하는 예술가의 비애가 더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 역시 현실에서의 패배감과 좌절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런지요. 패배와 좌절이 깊기에 두 광대의 비상이 불러일으키는 초월의 울림이 큰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스크린과 무대에서의 '초월'의 판타지마저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설 연휴 극장가에서 <왕의 남자>와 <투사부일체> 등 한국영화의 선전을 요란스레 전하는 기사들은 지난 연초의 흥분과는 달리 그다지 흐뭇하지 않습니다. 바로 설 연휴 직전에 기습적으로 발표한 스크린 쿼터 축소의 파장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에서는 영화계 4000억 지원이라는 당근을 내밀고 다른 한편에서는 FTA협상이 성사되지 않으면 나라 전체가 굶어죽을 것처럼 협박을 합니다. 공길과 장생은 창공으로 뛰어올랐지만, 현실에서의 예술, 예술가들이란 '지원'으로 연명하거나 나라 경제는 안중에도 없는 이기주의자로 몰리는 천덕꾸러기들일 뿐입니다.

창 밖의 하늘도 우울한 빛깔입니다. 
  
* 글쓴이는 문화예술전문 인터넷신문 컬처뉴스 편집장입니다.

* 본 기사는 민예총 컬처뉴스 (www.culturenews.net) 에서 제공했으며, 본문의 제목은 원제와 조금 다르게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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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2/03 [19:3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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