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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테러리스트, 전쟁 즉각 중단해야"
흑인 인권운동가 해리 벨라폰테, 방송인터뷰에서 부시행정부 맹공가해
 
최별   기사입력  2006/01/31 [18:47]
앨범 '칼립소'로 백만 장 이상 판매기록을 올렸으며 흑인 최초로 에미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인권운동가로 활동해 온 해리 벨라폰테가 30일 뉴욕의 인디언론인 '지금 민주주의를'과의 대담에서 "부시 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라이스 국무장관, 럼스펠드 국방장관, 곤잘레스 법무장관, 체니 부통령은 테러리스트"라 비난했다. 그는 최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 아메리카회의에서도 부시 미대통령을 "지구촌 최악의 테러리스트"라 비난한 바 있다.

미국 인권운동의 대부인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함께 60년대 초 시민권 확보투쟁을 벌였던 벨라폰테는 이날 대담에서 "부시와 그 주변 사람들이 6년 동안 거대한 음모를 꾸며 우리를 비극의 한 가운데로 끌고 갔다"며 현행정부를 맹비난했다.

▲ 해리 벨라폰테    
세계사회포럼 카라카스회의서도 부시 비난


그는 이어 "우리는 하루하루 테러 속에 살고 있다"며 "미국인들이 빈곤과 안보를 위협받는 게 최악의 테러가 아니고 뭐냐"고 강조했다. 노인들이나 학생들이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바로 테러이며, 마약에 빠져드는 부랑인들을 그저 지켜만 봐야 하는 것 역시 테러라는 것.

그는 또 불법적 전쟁을 일으키고 10만 명이 넘는 무고한 이라크인을 살해하고 수천 명의 미국인 병사 생명을 앗은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테러행위라며 "미국 병사는 세계 어느 곳의 전장에 나가서도 안 되며, 이게 나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쟁을 종식시키는 유일한 길은 국가가 군대를 갖지 않아야 하며 핵무기도 모두 파기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문명화된 모든 나라가 자위권 차원에서 군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점진적으로 군을 줄여가야 한다는 것. 따라서 그는 자신이 병사이거나 오늘 군대에 입대하는 처지라면 양심에 따라 복무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울러 지금 시민들이 해야 할 일로 함께 모여 우리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공유하는 것이라며 "대학 캠퍼스에서 지역사회 모임에서, 그리고 직장이나 친구들 회합에서 우리가 처한 상황을 토론하는 캠페인을 벌이자"고 주장했다.

벨라폰테는 1월 24일부터 29일까지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 아메리카 회의에도 인권운동가인 배우 대니 글로버, 교수 코넬 웨스트 등 15명의 미국 인권운동가 대표단과 함께 참여해 "부시는 세계 최악의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했었다.

"국내 교육&복지정책 파괴한 게 더 큰 테러"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함께 참여한 이 자리에서 그는 "부시는 세계 최악의 독재자"라며 "수백, 수천이 아닌 수천만 명의 미국인들이 여러분(세계사회포럼 참여 활동가)의 혁명과 아이디어를 지지하며 연대감을 표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마틴 루터 킹 기념일인 1월 16일에는 듀크대에서 행한 연설에서 "부시가 수만 명의 희생자를 낸 수치스런 전쟁으로 우리를 몰아 넣었다"며 "부시가 욕하며 공격하고 있는 테러리스트와 부시가 뭐가 다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그는 또 1월 중순경 열린 예술평론가회 연례컨퍼런스에서도 "우리는 지금 '새로운 국토안보 게슈타포'가 이끄는 암흑시대로 끌려가고 있다"며 "지금 우리 모든 시민들은 기본권을 그들에게 저당 잡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벨라폰테는 전설적 음악인으로 카리브해 연안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뉴욕의 할렘가와 자메이카에서 자랐다. 2차대전에 참전한 뒤 뉴욕으로 돌아와 배우와 가수 활동을 해 스타덤에 오르기도 했다.

1950년대에는 여러 곡을 히트시켜 이른바 '칼립소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이 쓴 시 'Day-O'에 곡을 붙인 '바나나 보트송'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의 세 번째 앨범인 '칼립소'는 미국 최초로 백만장이 넘게 팔리는 기록을 남겼다. '벨라폰테와 함께 하는 투나잇' TV쇼로 흑인으로서는 최초로 에미상을 수상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와 56년 친분을 쌓은 뒤 킹 목사와 함께 '프리덤 라이드'라는 미국 전역을 휩쓴 인권운동에 나섰다. 킹 목사가 머밍햄시 교도소에 수감되자 보석금을 마련해 석방시켰고, 수많은 정치범 석방을 위해 수 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이밖에 흑인 유권자 등록운동에서부터 유명한 63년 워싱턴 대행진 등 활동을 벌였다.

미 최초 1백만 장 앨범 판매, 마틴루터 킹과 친분

80년대에는 '아프리카 기아돕기 캠페인'으로 '세계는 하나’(We are the World) 음반을 내 수천 만 달러를 모금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그는 또 노벨 평화상을 받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성사시키는 일도 했고 1987년에는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오랫동안 미국의 제국주의적 외교정책을 비판해 왔다. 실제 쿠바에 대한 경제 봉쇄 정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고, 전쟁과 외국의 정치에 개입하는 미국의 외교에 거세게 반대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인터넷저널> (www.injournal.net) 편집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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