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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지휘한 남자, 카라얀
[20세기를 거쳐간 인물들] 나치입당과 음악 대중화 비판도
 
두부   기사입력  2005/10/27 [00:46]
“그 자리를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나는 어떠한 범죄라도 저질렀을 것이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지휘자 카라얀의 말이다. 그는 20세에 지휘자로 데뷔하면서, 세계 음악계의 기린아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 뒤 그는 30년이라는 가장 오랫동안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맡았고, 부와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위대한 지휘자’, ‘불후의 거장’, ‘20세기 가장 위대한 지휘자’ 등의 수식어들은 그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초고속 성장의 배후에는 ‘나치’가 있었다. 카라얀은 자신의 성공 발판으로 나치를 이용, 이후 승승장구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지휘자로 불린 카라얀. 수많은 매니아를 거느렸지만, 그의 전력과 음악세계에 대한 논란 또한 끊이지 않았다.     © 인터넷 이미지
그러나 인간에게는 양면성이 있어 그에게도 부정의 언어들이 따라다녔다. 코카콜라 같은 음악, 기성복 같은 음악을 생산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음악의 대중화에 선봉장이었던 그가 이러한 비판에 동의할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그가 치러야 할 비용이지 않을까 싶다. ‘대중성이냐 작품성이냐’라는 태생적 질문은 예술가들의 그림자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경계에서 고민하려고 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비판자들은 ‘단지 그는 음악을 대중화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카라얀에게 쏟아지는 비판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그의 독일 나치당 입당이다. 그리고 그는 나치입당을 공공연하게 자신의 출세의 발판으로 삼았다. 세상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준 지휘자의 또다른 손에는 20세기 가장 폭력적이고 반인륜적인 나치가 들려 있었던 것이다. 그는 오른손에 음악을 지휘한 지휘봉을, 왼손에 인류를 죽음으로 내몬 나치를 나란히 들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는 세상을 지휘하려고 했던 ‘남자’인지도 모르겠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은 1908년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모차르트의 바통을 이어 받을 수 있는 ‘불후의 거장’이 탄생한 것이다. 그가 음악을 시작한 것은 질투심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자질을 보인 형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을 시작했다.
 
그는 평생 세 명의 아내를 얻어 살았고, 지긋이 눈을 감고 연주하는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으며, 키가 작았던 그는 하이힐을 즐겨 신었다고 한다. 1989년 고향에서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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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0/27 [00:4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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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민희 2005/10/27 [09:50] 수정 | 삭제
  • 나는 박경재에 집착하지 않아. 더 이상 허튼 미친 소리는 그만 두시지?
  • 최민희 2005/10/27 [09:49] 수정 | 삭제
  • 말했잖아. 아무리 정답이 없는 분야라도 깊이와 수준의 차이가 있는 법이라고. 다시는 이 사이트에 오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