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의 한국현대사OST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이땅에 록매니아가 몇명이나 되겠나?"
[Rock'n'roll Diary]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유감과 즐감 Keep On Rockin'
 
김수민   기사입력  2005/08/12 [21:51]
2001년 제2회 부산국제락페스티벌이 열렸을 때의 일이다. 개막 전야에 비평가들과 매니아들이 모여 세미나를 열었다. 그중 당시 음악계의 현실을 낙관하는 사람은 내 기억으로는 없었다. 한 평론가는 "이 땅에 록 매니아가 500명이나 되겠느냐?"는 뼈아픈 자학을 던졌다. 더 인상적인 것은 다른 평론가가 음악계를 영화계의 현실과 대조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대조는 오늘에 이르러 더 큰 힘을 얻는 것 같다.
 
넥스트나 시나위가 20만장을 상회하는 판매고를 올리고, 크래쉬나 크라잉 넛의 데뷔음반이 10만장 넘게 팔렸던 이야기는 마치 '주라기' 시대의 일처럼 느껴진다. 한국영화의 흥행성적을 굳이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달에 <친절한 금자씨>, <웰컴 투 동막골>, <박수칠 때 떠나라>가 치열하게 맞붙을 전망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들의 경쟁이 제로섬게임이 아니라 윈-윈이 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비약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겠지만, 나는 이달에 치뤄진 두 축제에서 이러한 현황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8월 10일 제천에서는 음악영화축제가 열렸고, 그에 앞서 5, 6, 7일에는 부산에서 국제록페스티벌이 치뤄졌다. 영화제와 콘서트를 견준다는 것은 무리고,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영화제가 아직 채 끝나기 전이다. 하지만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의 허술한 준비를 비판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제천영화제에 출품된 훌륭한 상영작들을 훑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한국의 록페스티벌에 겹쳐진 불운이야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1999년도에 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모았던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은 딥 퍼플과 드림 시어터라는 빅 그룹을 초청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소나기로 여러 팀들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말았다. 이듬해에는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러운 부진한 판매율로 공연 자체가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이 뼈아픈 역사가 '천재'에 의한 것이라면 올해 페스티벌의 혼란과 실패는 명백히 '인재'에 해당한다. 뜻있고 개방적인 교사들이 꾸렸던 동두천 페스티벌에 관해서도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오고, 속초 대한민국 음악제도 초라해 보인다. 출연진도 작년에 못 미치고 프로그램도 엉성하다. '신중현 트리뷰트' 공연에 등장한 어울리지 않는 가수들은 '김현식 트리뷰트 앨범'의 악몽에 비길 만하다.
 
▲2005 부산국제락페스티벌의 한 장면     © 부산국제락페스티벌 홈페이지

사정이 이러하니 매니아의 처지에서 부산국제록페스티벌에 건 희망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시골 동두천이 아니라 부산에서, 자치단체와 문화관광부의 도움에 힘입어, 록 전문공연으로 짜여진 행사이기 때문이다. 흘끗 봐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러나 피서철을 페스티벌에 할애하려던 팬들이라면 개막 보름전까지 불안했을 터이다. 그때까지도 라인업이 확정되지 않았던 탓이다. 게다가 공연 첫날에는 더 큰 사고가 터진다. 헤드라이너로 확정되었던 POWERMAN 5000이 비자 문제로 경찰에 붙들려가 공연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블루스 록의 매력을 십분 발휘한 리치 코젠의 공연이 끝난 뒤,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은 관중들은 낙담하거나, 성냈다.
 
그간 마음 고생이 심했을 성우진 프로그래머가 둘째날 크래쉬와 디어사이드의 공연 막간에 털어놓은 고백에 따르면 역시 페스티벌의 강력한 적은 개런티였다. 그의 부연으로는 메틀리카의 출연료만 해도 록페스티벌의 전체 예산의 두배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돈이 없는 걸 어쩌랴는 항변이 들려오는 듯하지만, 벌써 6회째를 맞이하는 록페스티벌의 예산 치고는 너무 작은 규모다. 주최측은 물론 공연의 부실함에 질린 대중들도 무책임하게 관성에 의해 굴러가고 있지 않나 성찰해야 한다.
 
만에 하나 공연이 유료화되면 얼마나 부산에 가게 될까? 또한 록 음반들은 행정가들로 하여금 낙관을 심어줄 만큼 팔리고 있는가? P2P나 스트리밍 서비스에 자주 접속한다는 이유로 매니아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지는 않은가? 일례로 나는 음반 소장량이 턱 없이 작다고 생각하지만(연배가 더 높은 매니아들에게는 무시당하고도 남을 것이다),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 특히 내 또래 사람들은 "와 많이 가졌네요"라고들 한다.
 
▲2005 부산국제락페스티벌 8월 7일 공연 참가자들이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 부산국제락페스티벌 홈페이지
 
올해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은 실패했는가? 주최측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편이 올바른 행동일 테다. 내막을 궤뚫어 보기는 어렵지만 '밀실행정'의 여지가 없었는지 새기고 흔히 회자되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따져야 한다. 하지만 초기보다 나아진 부분이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텐트를 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다대포라는 장소는 광안리보다 훨씬 낫다. 다대포가 부산 구석에 위치하고는 있으나 종착역에서 행사장을 오가는 버스가 운행되어 핸디캡을 얼마간 만회할 수 있었다. 짐을 못 맡겨 허둥대는 모습도 사라졌다. 
 
매니아들 입장에서는? 공연장에 와서 뛰었던 이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괜찮다. 국제적 행사에 합당한 인원이 몰리지는 않았지만 참가자들은 공연 당일에 스스로가 정예부대임을 증명했다. 레이지 어갠스트 더 머쉰과 오지 오스본의 내한공연을 거치며 관중들의 퍼포먼스는 갈수록 뜨겁고 폭발적으로 진화해 나갔고, 그것이 알려진 덕분에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한국을 찾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소문은 더 넓게 퍼지고 한국을 찾으려는 해외 밴드는 더 늘어날 것이 틀림없다(단, 홈페이지에 여러 차례 올라온바 관중들의 슬램에 지나친 면이 있었으니, 여성이나 초등학생을 배려하는 노력을 겸비해야 할 것이다). 오며가며 객석에서 공연을 지켜본 부산의 기성세대 시민들도 과격한 사운드에도 불구하고 열린 자세로 감상하고 있었다.
 
나는 현재 바다와 육지가 맞물리는 곳에서 신나게 흔든 후, 호수가 있는 내륙 지방에서 음악영화제에 흠뻑 빠져 있다. 전역과 복학 사이에 깃든 여유와 흥분을 만끽하면서. 일본 영화 <록!록!록!>의 주인공은 공장경영을 위해 밴드를 포기하지만, 록은 계속된다고 말한다.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이든 제천국제음악영화제든 기간은 일주 이내고 진한 여운도 한달을 넘기지 못하겠지만, 우리 모두 일년 내내, 평생동안, 페스티벌처럼 살자. Keep On Rockin'!
* 글쓴이는 경북 구미시 시의회 의원(무소속)입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영남지역 최연소(27세) 기초의원에 당선돼 현재 시의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2002년 <대자보> 필진으로 참여한 이래 다년간 정치칼럼 등을 연재해 왔으며,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대자보> 독자들과 만납니다.
기초의원으로서 풀뿌리 정치 현장에서의 경험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블로그 : http://kimsoomin.tistory.com/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5/08/12 [21:51]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