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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 한국적 경관의 아름다움
[임순혜의 영화나들이] 미나리아재비, 개쑥부쟁로 덮인 아름다운 공간 ‘땅에 쓰는 시’
 
임순혜   기사입력  2024/04/15 [22:09]

영화 ‘땅에 쓰는 시’는 1973년 처음 설립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조경학과 1기 졸업생으로, 한국 1호 국토개발기술사(조경)를 획득한 최초의 여성 기술사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의 땅에 관한 철학과 그의 아름다운 공간들로 관객들을 초대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정다운 감독이 연출했다.

 

▲ 영화 ‘땅에 쓰는 시’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은 지난 2023년에 한국인 최초로 조경계의 최고 영예상이라 불리는 세계조경가협회(IFLA) ‘제프리 젤리코상’을 수상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조경사다.

 

‘땅에 쓰는 시’는 국내 최초의 생태공원 ‘여의도 샛강생태공원’(1997), 기존의 정수 시설을 그대로 살린 국내 최초의 재활용생태공원 ‘선유도공원’(2002), 왕성한 생명력으로 환자와 마음이 힘든 가족들 그리고 의료진까지 모두를 품어주는 ‘서울 아산병원’(2007), 과거와 오늘을 잇는 철길을 그대로 살리고 시민들이 직접 경작하는 동네 텃밭이 있는 ‘경춘선 숲길’(2016) 등 정영선 조경사의 손길을 거친 장소를 탐방한다.

 

▲ 영화 ‘땅에 쓰는 시’의 한 장면     ©(주)영화사진진

 

‘땅에 쓰는 시’는 언제나 사람과 자연의 관점에서 치열하게 고민해온 땅의 연결사 정영선 조경가의 궤적을 따라가며, 일상의 위로를 건네는 공원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잃지 않는 삶의 태도로써의 공원의 의미에 대해 관객이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는 사계절을 중심 테마로 구성하여 다채롭고도 풍성한 볼거리를 전하는데, 모든 생명이 싹트는 봄과 생동하는 녹음으로 가득 찬 여름, 무르익은 색채 너머 휴식을 기다리는 가을 그리고 모든 아름다움을 준비하는 겨울을 담았다.

 

▲ 영화 ‘땅에 쓰는 시’의 한 장면  © (주)영화사진진


영화는 공간이 간직하고 있는 특성과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주변의 환경까지 고려하는 정영선 조경가의 손길이 닿은 친숙하고도 눈부신 장소들을 충실히 담아내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는데, 그녀의 작품관은 공원의 개념을 확장시키며 깊은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땅에 쓰는 시’는 미나리아재비, 개쑥부쟁이 등 우리 국토의 매력을 즐길 수 있는 각양각색의 야생화와 제주를 비롯한 전국의 금수강산을 포착하며 정영선 조경가가 그려온 자연스럽고도 감각적인 풍경들을 담아내, 우리나라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한다.

 

▲ 영화 ‘땅에 쓰는 시’의 한 장면  © (주)영화사진진


‘땅에 쓰는 시’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온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유동룡의 삶을 담은 ‘이타미 준의 바다’, 출판인들의 꿈과 건축인들의 이상을 실현시킨 문화 생태 유토피아 파주출판도시의 탄생을 그린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등 유수 건축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정다운 감독의 세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이다. 

 

정다운 감독은 중앙대학교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건축과 영상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시각매체를 활용한 인간과 건축, 자연, 공간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22년 건축문화대상 건축문화진흥부문 대통령상과 2021년 서울국제건축영화제 건축문화공헌상을 수상했다. 

 

▲ 영화 ‘땅에 쓰는 시’의 한 장면  © (주)영화사진진


정다운 감독은 공간과 자연, 건축과 문화를 연결하는 자연의 생명력을 전하고 지키기 위해 줄곧 노력해온 정영선 조경가의 철학을 통해 자신이 오랫동안 품고 있던 자연의 복원과 치유에 대한 희망을 풀어나가며 감동하게 한다.

 

영화는 우리 땅을 즐기고 가꾸는 아이들의 모습을 처음과 끝에 배치시키며, 그 땅이 겪은 모든 역사를 머금은 채로 건강하고 아름답게 미래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 영화 ‘땅에 쓰는 시’의 한 장면  © (주)영화사진진


정영선 조경가는 정원을 만드는 것이 단순히 꽃을 심고 나무를 기르는 것이 아니라 치유와 회복의 장이자 자연을 보살피고 서로 소통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선유도공원 등의 작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터가 가지고 있는 특성과 정신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공간, 사람, 자연의 관계를 잘 읽어내는 데 집중해 자연과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 한국적 경관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완성시켜왔다.

 

▲ 영화 ‘땅에 쓰는 시’ 포스터  © (주)영화사진진


‘땅에 쓰는 시’는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우리의 전통 미학에 뿌리를 둔 1세대 조경가의 진심 어린 철학을 전해,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운 어울림을 미래세대에 반드시 전해 이어가도록 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함께 전하는 한편의 아름다운 시다.

 

야생화가 만개한 정영선 조경가의 앞마당부터 대규모 공원과 신비로움을 간직한 개인 정원 등 다양한 장소를 종횡무진 누비며 각 계절이 지닌 고유한 경치를 온전히 담아낸 ‘땅에 쓰는 시’는 4월17일(수) 개봉이다.

 

글쓴이는 '미디어운동가'로 현재 미디어기독연대 대표, 언론개혁시민연대 감사,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공동대표/ 운영위원장, '5.18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특별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 심의위원을 지냈으며, 영화와 미디어 평론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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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는 '미디어운동가'로 현재 한신대 외래교수, 미디어기독연대 집행위원장, 경기미디어시민연대 공동대표이며, 영화와 미디어 평론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