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이문열과 폭탄주, 어느 기자의 망명?
홍성식기자에 대한 반론, "안티조선이 친북좌익의 탄압인가"
 
여인철   기사입력  2003/07/28 [12:52]

지난 23일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를 보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이문열과 폭탄주 그리고 프랑스망명"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가 그것이었다.  순간 나는 이문열이 프랑스로 망명했다는 줄 알았다.

클릭해서 읽어보았다.  "대통령 선거결과가 여의치 않으면 프랑스로 망명할 것"이라고 이문열이 말했다는 것이다. 허탈했다. 그리곤 생각했다. 무슨 이유일까? 홍성식 기자가 지나간 이문열과의 사적인 얘기를 뜬금없이 꺼내면서 그를 옹호하는 것은.

[관련기사]
홍성식, 이문열과 폭탄주 그리고 프랑스망명(오마이뉴스, 2003. 7. 23)
여인철, 안티조선이 친북세력이라 말한 적 없다? (대자보, 2002, 5. 3)
여인철, 셰익스피어 생가에서 다시 생각하는 소설가 이문열의 '폭풍의 언덕' 기행(대자보, 2002, 6. 12)

나는 홍성식이란 기자를 잘 알지 못 한다.  한번 본 적도 없다.  더구나 이문열이 쓴 것도 아니고, 기자가 쓴 글에 대해 내가 반론을 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서도 주저함이 있었다.  그러나 기자가 그의 글에서 쓴 것처럼 이문열의 말을 대신하는 것은 공평하지도 옳지도 않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쓰기로 했다.

우선 무엇보다도 전체적으로 그의 글이 참신하지 않다.  참신하지 않음은 그가 쓴 글이 그의 글이 아니라 이미 누군가 한 말을 옮겨놓은 것 같다는 데 있다.  이문열의 기이한(?) 행적을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등장하는 그의 아버지 이야기, 그리고 그 스테레오타입, 이젠 질리지도 않는가. 

"이문열의 가슴에 분명 담겨있을 사회주의자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애증(愛憎). 그는 아버지(사회주의)와의 완벽한 절연을 통해 자신을 옭아맸던 고통의 사슬을 끊고자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랬을 것이다."

어디선가 몇번이나 읽은 것 같은 얘기를 그가 처음 하는 것처럼 홍기자는 반복하고 있다.  물론 사회주의자인 아버지 때문에 겪은 고통이 이문열로 하여금 그렇게 살게끔 만든 한가지 이유는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수구적 언론매체를 통한 악의적, 비상식적 언행에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아니다.  아버지가 사회주의자라고 해서 자식이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어렵게 얘기할 필요가 없다.  "이문열이 그렇게 망가진 것은 그의 뒤틀린 성정 때문이다", 이 한마디면 설명이 된다.

홍기자가 이문열의 문학사숙에서 안동소주와 맥주로 만든 폭탄주에 취하건, 정갈하고 맛깔스러운 안주에 감동하건 그의 일이다.  시원한 국물의 평양식 냉면과 바비큐로 예를 갖춘 대접에 넘어가는 것도 그의 일이다. 그러나 이거 너무 심한 것 아닌가. 

"거기에 더해 주석이 파할 때까지 별 다른 말없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다가 손님들의 잠자리를 살펴주고 나서야 남편과 함께 안채로 돌아가는 이문열의 아내의 태도는 요새 보기 드문 것이라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폭탄주도 안 마신 내가 속이 거북해졌다. 

별다른 말도 없는 조용한 아내를 새벽까지 계속된 그 술자리에 옆에 둔 이문열이나, "먼저 들어가 주무시라"는 권유 한번 하지 않았을 것 같은 홍기자 일행이나 그 마초스러움이 경이롭다.  별 중뿔난 페미니스트가 아님에도 나는 "이런, 이런..."하는 애처로운 마음이 철철 넘치는데 말이다. 

그리고 새벽까지 계속되었다는 술판에 별 다른 말없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다 술판이 끝나고 나서야 남편과 돌아가는 여인을 보고 감동스럽기까지 하다고 하니, 요즘 기자들 중에 아직도 이런 취향의 젊은이가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내친 김에 한마디만 더 한다면, 스스로뿐만 아니라 매체의 품위마저도 깎아내리는 위와 같은 말, 그리고 "나도 저런 아내를 얻고 싶다"는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서론에 해당하고 결정판은 뒷부분에 있다.  참으로 나를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그가 이문열과 안티조선과의 관계를 "좌익의 탄압과 그로 인한 박해자"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문열의 후견인 노릇을 하고 있는 조선일보가 계속해서 주입하려 했던 것이다.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 안티조선을 친북세력이라고 말한 작가 이문열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안티조선 고소인단이 5월 2일 여주지청에서 이씨와 대질심문을 마친 후 모습.     ©대자보
그리고 이문열과 아직도 송사를 벌이고 있는 나에게는 모욕이다.  그리고 그 송사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직접 참여하지는 않지만 지지를 보내주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지금 이문열의 "안티조선 친북세력" 발언에 대한 고소건(민사)이 대전지법에서 진행되고 있다.  형사소에서는 그의 발언이 어느 누구를 특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나와 안티조선 진영에서는 유감스럽지만 그 판결을 존중한다.  그러나 그 발언에 의한 정신적 피해는 그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민사소는 계속 진행하고 있다.

나는 그의 "안티조선 친북세력" 발언에 대해 안티조선 진영을 대표해서 고소한 사람의 하나로서, 그리하여 여주지청 공안검사 앞에서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대질심문이란 것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말한다. 

나는 그의 몰상식과 싸운 것이다.  느닷없이 대명천지 21세기에 아직도 색깔론을 들먹이며 안티조선 진영을 매도하는 그의 몰상식을 응징하려 한 것일 뿐이다.  안티조선을 신념로 하는 사람으로서 안티조선이 "친북세력"이란 터무니없는 비방에 나의 명예를 지켜내기 위해 방어적으로 싸운 것이다.  말을 나눈 적은 없지만 그 소송에 기꺼이 돈 만원을 내고 참여한 100여명의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누가 "이념으로 인간(이문열)을 박해"했다는 말인가.  이는 나와 안티조선 진영에 대한 모독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념에 의한 인간탄압'이라고 딱지를 붙인다면 홍기자의 시각은 너무 위험스럽게도 이문열과 조선일보 쪽으로 경도되어 있는 것이며 그 또한 색깔론에 물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는 "이념에 의한 인간탄압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문열이 안티조선 진영에게 퍼부었던 색깔론적 언어폭력을 부지불식간에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념이라는 걸 잘 모른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할 뿐이다.  나도 잘 모르는 어떤 그룹으로 나를 분류해 놓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런 그룹의 의미도 잘 모른다.  나는 적어도 나도 잘 모르는 '이념'으로 그를 박해하지 않았고, 나와 행동을 같이 한 사람들은 건전한 시민사회단체와 언론단체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 전국에서 연락이 왔다  대부분 그의 말에 분개한 사람들이다.  서울 어디선가 60세 넘은 노인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오기도 했고, 주부가 참여하겠다고 하기도 했다.  그들이 '좌익'인가?  그들이 '이념'으로 이문열을 탄압하고 있는가?

"슬픈 일이다. 아직도 횡행하는 '이념에 의한 인간탄압'의 공포. 이문열은 그 공포의 희생양이 아닐지. 어떤 위대한 이념도 인간을 박해하는 도구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 또한, 생각과 지향의 차이가 그 사람을 차별하는 수단이 돼서도 안 된다. 그 차별은 폭력에 다름 아니기에." 

홍기자의 이 글 자체는 문학적으로 잘 엮은 글이나, 통찰이 결여되어 있고 감정과잉이다. 

 '이념에 의한 인간탄압'의 공포가 아직도 '횡행'하고, 이문열이 그 공포의 희생양이라니. 그가 저지른 엄청난 언어폭력은 어디 가고 그가 받은 '박해'만 남아있다.  이게 옳은 말인가.  그저 할 말이 없어진다.

거기에 홍기자는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기자는 이런 세상을 꿈꾼다.  우익이 좌익을 탄압하는 것은 물론, 좌익에 의한 우익탄압도 용서되지 않는 사회.  비단 기자의 바람만은 아닌 이 꿈은 언제쯤 이뤄질까?"라고 끝을 맺고 있다.

"좌익에 의한 우익탄압", 결국 이것이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홍기자, 아직 해방공간에서 살고 있는가.  누가 좌익이고, 이문열에게 탄압을 가한 그 좌익이 누구인가. 

답답하기 짝이 없다.  나는 홍기자에게 이문열이 그간 쓴 글들을 다시 한번 정독하기를 권한다.  어떤 언어를 그가 사용했는지, 어떤 논리 또는 비논리를 그가 동원했는지, 어떻게 터무니없는 언어폭력을 휘둘렀는지 자세히 알아보기 바란다. 그리고 나서 글을 다시 쓰기 바란다.

그리고 한차례의 진한 술판 속에서 태어난 연민이 글의 향방을 결정짓지 않도록 스스로 단속하기 바란다.

* 필자는 개혁당 대전 서구(을) 지구당위원장이자, 과학기술위원장이며, 본지의 주필을 역임했습니다.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3/07/28 [12:52]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