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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에서 폭력이 제도화된다는 이문열씨에게
이문열의 조선시론 '폭력의 제도화'에 대한 반론
 
여인철   기사입력  2002/12/30 [12:23]
{IMAGE1_LEFT}막판 선거전이 한창 진행중일 때 주위의 한 사람이 조선일보에 나온 이문열의 글을 읽었느냐고 물어왔다. 조선일보를 볼 일이 없는 나는 인터넷 신문에서 그의 글에 대한 비판기사는 보았지만 정작 그 글을 읽어볼 시간은 없었다고 말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대선이 끝난 후 어떤 이가 농 삼아 내가 '이문열 전문'이라며 그의 글에 대한 반론을 써보라고 주문하였다. 호기심도 발동하고 대선도 끝나고 하여 며칠 전 그의 글을 읽어보았다. 우선 그 글은 제목부터 화끈하다. '폭력의 제도화'라니, 역시 조선일보다운 제목 붙이기다. 그에게 알려야 할 사항도 있고, 그의 글을 읽다보니 슬그머니 오기가 생겨 늦게나마 반론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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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한동안 잠잠하기에 반성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그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그의 증상이 더욱 심해졌다는 것이었다. 이번 글에 등장한 그의 언어는 과거에 그가 사용한 '홍위병', '안티조선은 친북세력', '안티조선의 원조는 북한'과 같은 말과 글보다 훨씬 더 도발적으로 변했다.  

도대체 그가 왜 대선을 며칠 앞둔 시점에 느닷없이 나와 지나간 일을, 그것도 자신에게 유쾌하지도 유리하지도 않은 일을 끄집어내 그런 글을 썼는지 알 수가 없다. 자기가 혐오하는 사람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폭력이 제도화'될 것이니 그 후보를 찍지 말라고 선동할 목적으로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그 글은 논리도 없고 사실관계도 틀리고 사감만 앞선 글이었다.  

그러니 그와 안티조선 진영과의 험한 관계를 기억하고 있는 조선일보의 데스크에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의 일부가 안티조선 진영에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이럴 때 한마디 해달라고 청탁을 하지 않았을까 그저 추측만 할 뿐이다.  

그런데 폭력을 어떻게 제도화한단 말인가? '폭력의 제도화'는 전두환 폭압정권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데 앞으로 어떤 정권이 폭력을 제도화할 수 있단 말인가? 이문열은 지금 다른 모든 사람들과의 소통이 끊어진 절해고도에서 살고 있는가.

이문열씨는 그의 '홍위병' 폭언과 그 이후의 "안티조선은 친북세력이며, 그의 원조는 북한"이라는 황당한 주장(대한매일)과 폭언으로 빚어진 다른 사람들과의 다툼 이후 꽤나 되는 세월 속에서도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또 다시 작년 12월 19일 부산의 모 독서토론회에서 했다는 그의 말을 처음 접하던 때의 감흥(?)이 새록새록 다가왔다.

그는 "그러나 최근에 우리 문화를 짓누르고 있는 폭력의 가장 큰 원인은 아무래도 정치적 집단의 위장침투가 될 것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문화내용을 문제삼지만, 실제로는 거기에 투영된 정치적 견해를 겨냥한다. 그게 자신과 다르면 문화적 비판이 아니라 문화적 다수를 가장한 소수의 극렬 하수(下手)집단을 내세워 갖가지 폭력으로 상대를 말살시키려 든다."라고 말한다.  

지금 문화를 짓누르고 있는 폭력이 존재하는가? '정치적 집단의 위장침투'가 문화를 짓누르는 폭력의 가장 큰 원인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자기만에 한정되어 일어난 일을 '문화'에 까지 연장시켜 자신과 문화를 동일시하고, 그걸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언어폭력, 그것도 선의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시민단체와 그 회원에 대한 언어폭력은 '문화'이고, 그에 분개하여 일어난 시민단체 또는 집단은 "문화적 다수를 가장한 소수의 극렬 하수(下手)집단"으로, 그들의 '언어폭력'은 '집단 테러'라고 말한다. 이문열의 증오가 아직도 그렇게 깊은지, 그의 글을 보면 온통 이런 식으로 왜곡과 증오로 차있다. 뒤틀린 그의 성정만큼이나 뒤틀린 글이다.

그는 또 "그 전형적인 예는 이 나라의 한 작가가 작년 7월부터 그 일부는 아직까지 겪고 있는 모욕과 수난이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책을 인질로 삼아 반환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그게 별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이번에는 책 장례식이라고 하는 세계문화사에도 유례가 없는 해괴하면서도 끔찍한 해프닝을 벌였다."라고 말한다.

분명히 말하자. '이문열씨의 책을 반환하는 운동'인 소위 '이문열 돕기 운동'은 그의 자업자득이다. 그의 '홍위병' 발언에 분노한 어떤 독자가 그에게 책을 반환하겠다고 하자 그는 호기 있게 "이자를 쳐서 받아주겠다"며 반환하라고 했다. 그게 발단이었다. 말하자면 '이문열 돕기 운동'은 오만한 저자에 대한 독자들의 응징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얘기는 쏙 빼놓고 자기가 '모욕과 수난'을 받은 얘기만 하고 있다. 그저 "자신들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책을 인질로 삼아 반환운동을 벌였다"는 말로 자기가 피해자인양 하고 있다.

그를 둘러싼 일이 왜 그렇게 전개되어 갔는지에 대한 일말의 성찰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그의 말에 의하면 '위장침투한 정치적 집단'이) 집단적으로 그에게 '테러'를 감행한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에게 과연 이성이란 것이 존재하는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런 그가 "거기다가 그들의 적반하장(賊反荷杖)은 더 있었다."라고 말한다. 참으로 가당찮은 일이다. 그가 오히려 '적반하장'이라는 말을 들고 나오는 이 '적반하장'적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한단 말인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나는 그가 말하는 "멀리 충북 옥천까지 찾아가 두 번째 책 장례식에도 참여했고, 형사 민사 고소에도 이름을 빌려준 그 집단의 대표격인 어떤 배우"를 개인적으로 조금 알고 있다. 그의 연설도 몇 번 들었고 안티조선 행사장에서도 만났으며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선거운동을 위한 행사에서도 만나서 몇 차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그 배우가 대부분의 다른 연예인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문열씨가 경멸해 마지않는 그 배우에 대한 대중의 인기는 단순히 그가 영화배우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다. 그 배우의 인기의 비결은 그의 말이 주는 진실성과 명쾌한 해석 같은 것이 대중들에게 와 닿는다는 데에 있다.  

그 배우가 머리가 비어있고 오로지 배우라는 것 외에는 볼 것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의 인기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며, 그의 대중연설이 감흥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적어도 대통령 선거 참모진이 그를 기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대통령 후보의 '간판 연설원'으로 기용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말이 대중에게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국민은 그가 지지한 대통령 후보를 당선시킴으로써 그를 신뢰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그렇다면 이문열씨의 지적은 틀린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명'배우는 그 선거에 사명감을 가지고 뛰어들어 아무런 보수 또는 대가없이 헌신적으로 활동했으며 대선이 끝난 지금 현업복귀 선언을 하였다. 그리고 그동안 사업을 돌보지 못해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이제 열심히 사업에 전념할 뜻을 밝히고 있다.  

이문열씨가 그토록 혐오하는 '그 후보 지지모임'인 '노사모' 사람들도 이번 선거에 전혀 아무런 대가없이 오로지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신념으로 뛰어든 사람들이다. 나는 그것을 안다.  

나는 그 모임 소속은 아니지만 이번 선거에 그들과 연대해서 같이 뛰었으며 그들이 자신의 돈을 써가며 밥 사먹고 밤늦게까지 운동하는 것이 안쓰러워 그들의 저녁식사비를 얼마간 지원하려다 거절당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들의 말은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이문열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돈도 받지 않고', '아무런 대가없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전부 이문열씨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시대에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그런 사람들이 아닐까.

결국 세상은 이렇게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자기 돈 들여가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서는데 이문열씨는 유독 그 모든 것을 '누군가가 사주한 것'으로 판단을 하고 있다.  

심지어는 그런 선의의 집단에 대해서도 '폭력의 공범' 또는 '극렬 하수집단'이라는 '극렬' 폭언을 퍼붓고 있다. 혼자만 그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면서 세상을 향해 자기의 독선을 독설로 퍼붓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는 말한다. "그런데 더 큰 걱정은 이제 그 폭력집단이 이 선거를 통해 제도화를 꿈꾸고 있다는 점이다. (중략) 만에 하나 그 후보가 당선이 되면 그들은 일등공신으로 논공행상에 들게 될 것이고, 그 결과는 바로 그들이 저질렀던 폭력의 정당화(正當化)와 제도화(制度化)로 나타날 것이다. 이는 바로 한국적 문화혁명의 본격적인 전개이며,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지식인 수난사가 시작될 것이다."

이제 이문열씨는 앞의 그 배우를 지목해 "일등공신으로 논공행상에 들게 될 것이다"라고 거침없이 폭언을 하고 있다.  

이문열, 그는 이처럼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 도발한다. 그의 사적 감정을 이렇듯 거대언론의 힘을 빌어 배설해도 되는 것인가. 이건 명예훼손이라는 범죄행위에 가까운 것 아닐까. 그러니 이문열씨는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반박할 아무런 자격이 없다. 모든 것이 다 자업자득이다.

'논공행상',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나는 차라리 그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한자리씩 주었으면 좋겠다. 일등공신이라면 당연히 대접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올곧은 사람들을 "논공행상 한다"는 말이 무서워 멀리 한다면, 그 자리는 어떤 무임승차한 사람이 차지하게 될 것이고 그래서 더욱 나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니 그런 올곧은 일등공신에게 논공행상을 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만에 하나 그 후보가 당선이 되면, 그 결과는 바로 그들이 저질렀던 폭력의 정당화(正當化)와 제도화(制度化)로 나타날 것이다."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다. 지금의 이문열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문열, 그는 참으로 아는 게 탈이다. 어쩌다 '홍위병'을 알고 '문화혁명'을 알아서 이다지도 자신의 신세를 볶는가 말이다.

이제 그 후보가 당선이 되었으니 폭력이 "정당화(正當化)",  "제도화(制度化)"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그의 걱정을 하나 덜어줘야겠다. 나는 이문열씨에게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  

만일 이문열씨의 걱정대로, 그리고 조선일보가 붙여준 글 제목처럼 '폭력의 제도화'가 다음 정권에서 일어나고, '새로운 형태의 지식인 수난사가 시작'된다면, 내가 지금 소속해있는 안티조선 진영에서 바로 뛰쳐나올 것이며, 그 제도화를 획책하는 모든 이들과 정권에 작은 힘이나마 대항하여 싸울 것이다. 이제 되었는가.

{IMAGE2_RIGHT}그는 안티조선 진영에서 '형사 민사 합쳐 세 건이나' 소송을 벌인 것으로 알고 있으나 한 건이 추가되었음을 이제 알려야 할 것 같다. 지난 12월 20일 전국의 112명의 안티조선인을 대표하여 내가 대전지법에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소송물가액은 1인당 100만원 씩, 총 1억 천3백만 원이다.

부산의 모 독서토론회에서 "안티조선 친북세력" 운운하여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냈던 것이 작년 12월 19일이니 딱 1주년이 되는 날이다. 꼭 1주년을 채울 뜻은 없었으며, 소송이 늦어진 것에 대해서는 이문열씨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어쨌든 곧 연락이 갈 것이다.

이문열씨는 형사는 '혐의 없음'으로 결정나고, 민사는 '기각'으로 결정났다고 의기양양하는 모양이나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적어도 한때, 일각에서나마 '문호'라는 소리를 들은 소설가라면.

사실 그의 이런 글이 조선일보에 실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번 민사소송 건은 그냥 보고차원에서 안티조선 진영의 게시판에 공지사항으로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엉터리 '시론'을 그냥 놔두고 지나가는 것은 도저히 안 되겠기에 이렇게 긴 칼럼의 형태를 빌어 반론을 제기한다.

끝으로 이런 증오와 왜곡에 찬 수준낮은 글을 '시론'이랍시고 실어 주는 조선일보에게 한마디: 노무현 후보에 대한 반감으로 그의 당선을 저지시키기 위해 막판에 이문열을 등장시킨 조선일보, 한 작가의 증오를 대선을 코앞에 두고 교묘히 이용하는 그 치밀한 기획력에 찬사를 보낸다. 어디에서 이런 글을 보겠는가. 역시 조선일보다.

그러나 그 교활함에 대해서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나를 포함하여 안티조선 진영에서는 조선 '삐라' 안의 어떤 '정신병자'의 말처럼 '정신병동' 같은 '성채'에서 신문이란 허울을 뒤집어쓰고 이런 사회악을 퍼뜨리는 준범죄행위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강력한 문제제기를 계속 해나갈 것이다.

사족 하나. 대선미디어국민연대 선거보도감시위원회는 28일 제16대 대선 보도 모니터 결과를 토대로 편파왜곡보도 5선을 선정해 공개했는데 그 중 이문열씨의 위 칼럼이 신문보도 '나쁜 보도 워스트 5'에 선정되었다 한다. 그리고 그 '워스트 5' 중 4개를 조선일보가 차지하였다. 두루두루 축하할 일이다. 세상 사람들 보는 눈이 대개는 비슷한 모양이다. / 주필



[시론] 폭력이 제도화되는가 ........ 李文烈  (2002.12.16)

어느 시대에나 정치적 견해에 따른 문화내용의 차이는 있었고, 그 차이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 또한 있었다. 하지만 치열했던 1980년대에도 그 대립과 갈등은 오직 문화안에 머물렀으며, 그 범위를 벗어나면 모두에게서 비난받았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 들어 우리 문화에는 전에 없던 현상이 나타났다. 문화적 갈등, 특히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문화 내용 사이의 충돌과 대립은 여과 없는 언어적 폭력으로 표출되었고 나아가서는 집단적 테러로 자행되었다. 네거티브 문화의 불행한 변종이었다.

물론 그런 현상은 인터넷 문화로 대표되는 시대상황의 급변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최근에 우리 문화를 짓누르고 있는 폭력의 가장 큰 원인은 아무래도 정치적 집단의 위장침투가 될 것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문화내용을 문제삼지만, 실제로는 거기에 투영된 정치적 견해를 겨냥한다. 그게 자신과 다르면 문화적 비판이 아니라 문화적 다수를 가장한 소수의 극렬 하수(下手)집단을 내세워 갖가지 폭력으로 상대를 말살시키려 든다.

그 전형적인 예는 이 나라의 한 작가가 작년 7월부터 그 일부는 아직까지 겪고 있는 모욕과 수난이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책을 인질로 삼아 반환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그게 별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이번에는 책 장례식이라고 하는 세계문화사에도 유례가 없는 해괴하면서도 끔찍한 해프닝을 벌였다.

그들이 일부 신문과 방송의 지원까지 받아 석 달에 걸친 요란스런 운동으로 모은 그 작가의 책은 정신병자의 비율보다 더 작았지만 상징적인 효과는 컸다. 자신이 무슨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어린 소녀를 상주 삼아 거창한 장례식을 치러 세상 사람의 이목을 끌었고, 그 뒤 1년이 넘는 지금까지 한 작가의 창작의욕을 끊어놓는 데도 온전히 성공하였다.

그들의 잔인한 폭력은 석 달 뒤 충북 옥천에서 한 번 더 가열하게 표출되었다. 먼저 그 작가의 책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불사르고, 풍장(風葬)이란 이름으로 나무에 매달았다. 까막까치가 파먹으란 뜻인데, 작가의 책을 인질로 삼은 폭력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그들 중에 하나는 자기 집 마당에 그 작가의 책을 흩어 소 돼지가 밟고 비도 맞게 하며, 필요하면 불쏘시개로 쓰다가, 그 광경을 사진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거기다가 그들의 적반하장(賊反荷杖)은 더 있었다. 그같이 표독스럽고 집요한 폭력으로도 모자라 그들은 다시 형사 민사 합쳐 세 건이나 소송을 벌였다. 형사는‘혐의 없음’으로 결정나고 민사는‘기각’으로 결정이난 소송으로 1년이나 그 작가를 괴롭혔다.

구경하는 이들은 그 모든 일이 문화내부의 갈등과 대립인 줄 알고 있지만 이번 대선(大選)으로 그들 가해자의 성격은 분명해졌다. 특정정당과 후보를 지지하는 모임으로 들어가 자신들의 정치적 성격을 명백히 했기때문이다. 곧 그 일은 그 정치적 집단이 문화에 가한 폭력이었다.

그런데 더 큰 걱정은 이제 그 폭력집단이 이 선거를 통해 제도화를 꿈꾸고 있다는 점이다.

멀리 충북 옥천까지 찾아가 두 번째 책 장례식에도 참여했고, 형사 민사 고소에도 이름을 빌려준 그 집단의 대표격인 어떤 배우는 이제 당선가능성이 없지 않은 집권여당 후보의 간판 연설원 중의 하나가 되었다. 작가의 책을 인질로 삼은 그 폭력의 다른 공범들도 모두 그 후보 지지모임의 열성적인 일꾼이 되었다고 한다.

만에 하나 그 후보가 당선이 되면 그들은 일등공신으로 논공행상에 들게 될 것이고, 그 결과는 바로 그들이 저질렀던 폭력의 정당화(正當化)와 제도화(制度化)로 나타날 것이다. 이는 바로 한국적 문화혁명의 본격적인 전개이며, 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지식인 수난사가 시작될 것이다. (이문열/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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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2/12/30 [12:2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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