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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부 진대제 장관은 강심장?
디지털TV의 전송방식을 대통령까지 속여
 
양문석   기사입력  2003/04/02 [15:32]
정보통신부 진대제 장관과 관련된 이중국적 등 자격시비가 채 가시기도 전에, 진장관이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까지 속이는 행위를 서슴치 않는 것을 보면, 진장관의 강심장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두를 뿐이다. 반면에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진장관을 지켜 준 노무현 대통령이 안스럽기까지 하다.    

지난 달 28일 오전 청와대에서 노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정통부 진대제 장관이 업무를 보고했고 정통부 현안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며 한겨레신문은 정통부의 발표를 다음과 같이 인용 보도했다.  

"…노 대통령은 디지털텔레비전 방식에 대해서도 '이미 미국 방식의 수상기가 120만대나 보급됐고, 우리나라 기업이 미국 방식의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점등을 종합할 때, 방식 변경은 불가하다'며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3월29일자)

한데 한겨레신문은 다음날인 30일 2면 오른쪽 귀퉁이의 '바로잡습니다' 코너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사를 수정한다.

"…29일치 17면 '정보통신부 업무보고기사'에서 디지털 텔레비전 전송방식 변경불가는 '대통령이 주문'한 게 아니고 '정통부가 보고'한 것입니다.…"

'대통령의 주문'과 '정통부의 보고'는 천양지차

왜 이런 오보사건이 발생했는지 살펴보자. 28일 정통부는 제1차 보도자료에서 '대통령의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서 "방식변경은 불가하다.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 마라"며 '대통령의 주문'이라는 이름표를 앞세웠다. 한데 이것이 시민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역풍의 조짐을 보이자 몇 시간 후인 오후 늦게 제2차 보도자료를 내면서 '대통령의 주문'이 아니고 '정통부가 보고한 내용'이라는 요지로 말을 바꾸었다.

제1차 보도자료에서는 `방식변경에 대한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공감하였음`이라고 표현하여 '대통령의 의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몇시간 후 제2차 보도자료에서는 `방식변경에 대한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건의를 드렸음`이라고 표현을 바꿈으로써 '정통부의 보고'를 강조하는 문구로 번복한 것이다.

이에 대해 '미디어오늘' 4월2일자에 의하면 정통부 공보관실의 한 관계자는 "보도자료를 급하게 내는 과정에서 빚어진 실수"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해명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변명에 불과하다. '대통령의 의지'가 '정통부의 보고'로 180도 바뀌었는데 이것이 단순한 실수란 말인가.  

이것은 결코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정통부의 '정통성' 부족한 진장관과 관료들이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대통령을 팔아서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런데 몇 시간 후 청와대의 강력한 항의를 받은 후에 고친 것이다. 미디어오늘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측은 "당시 업무보고에서 노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하지도 않았고 청와대의 보도자료에서도 그런 부분은 없었다"면서 "애초 연합뉴스에서 정통부의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1차보도가 나간 뒤 정통부에 강력 항의했다"고 밝혔다.

정통부도 국방부처럼 오로지 미국?

이번 보도자료 번복 해프닝의 기저에는 정통부가 그간 보여왔던 친미사대주의적 습성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시민사회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그 동안 정통부는 YMCA, 민언련 등 시민사회단체가 줄기차게 반대해 온 미국기술을  고집해 왔다. 그러면서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유럽기술을 반박하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한 적이 거의 없다. 오로지 미국의 기술이기 때문에 한국은 미국을 따라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존재하는 것 같은 인상만 풍겨왔다.  

이런 강박관념은 국방부의 강박관념과 유사하다. 지난 해 국방부는 미국의 'F15 전투기'와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를 놓고 온갖 로비설과 뇌물공방이라는 추문에 휩싸였다. 그리고 현직 공군대령의 양심선언 등이 이어지면서 'F15기'의 각종 문제점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결국 미국 전투기 'F15'를 선택하는 '우직함'을 보여 주었다. 미국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국방부의 '강박관념'이 낳은 결과물이었다.

정통부는 국방부를 '벤치마킹'하듯이 어떤 반대여론도 무릅쓰고 '미국기술'을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의심도 바로 이런 친미사대주의적 습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듯 하다.  

진장관의 맹목적인 조직이기주의?

진대제 장관이 갖는 시민사회에 대한 자신감은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번복할 '대통령의 주문'을 이용할 수 있는 요인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다. 거의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이 이중국적과 관련된 진장관의 집안문제를 들어 장관 취임에 반대했다. 하지만 대통령과 청와대의 '지극한' 호위 속에 무사히 정통부 장관실에 입성한 경력을 진장관은 지니고 있다.

아무리 시민사회가 국민의 시청권 보호와 재산권 보호를 외치며 미국기술을 반대해도 대통령의 우산 아래만 있으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는 신념과 자신감이 진장관에게 생길만도 하다.

또 국민의 이익보다 미국과 소속 부서의 이해관계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정책결정을 할 수 있을 개연성이 누구보다도 큰 사람이 진장관이다. 자신이 미국인이었던 적도 있고 두 아들 모두 미국인이고 정통부 부하직원들이 한 목소리로 미국 편을 들고 있으니 당연히 미국의 손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 간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사장 시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씨의 편법적인 증여 및 상속에 관여했다는 의혹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삼성그룹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을 한겨레신문이 사설에서 제기했듯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보를 보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진장관으로서는 충분히 의심받을 수 있다.  

대통령까지 속이는 진장관

시민사회에 대한 이런저런 오만함이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충실한 성격도 백 번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어찌 자신을 '장관직'에 임명한 대통령까지 속였는지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지난 한겨레신문 29일자 보도에 의하면 크게 2가지로 대통령을 속였다.

첫째, 디지털텔레비전이 120만대나 한국에서 팔렸기 때문에 '미국기술'로 가야한다고 주장한 대목이다. 미국기술이냐 유럽기술이냐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디지털텔레비전의 보급수'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제 겨우 10만대 정도 팔려나간 '셋톱박스'로 일컬어지는 '전용수신기'가 미국기술로 갈 것인지 유럽기술로 갈 것인지에 영향을 주는 통계자료다. 한데 대통령이 '디지털 방송방식'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전혀 관련없는 엉뚱한 수치를 들이대며 대통령의 동의를 이끌어내려 했다는 점에서 진장관의 도덕성은 자신과 아들의 이중국적문제나 각종 의혹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도마에 오를만하다.

둘째, 한국이 방송방식에 대한 원천기술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 대목이다. 이것도 거짓말이다. 진장관은 LG전자의 자회사인 '제니스'가 미국식 전송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제니스'는 명백한 미국기업이다. 그것도 누적적자가 10억달러에 이르러 미국 파산법원의 관리를 받고 있는 부실기업이다. 이미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충분히 논리적으로 반박 당한 것을 또 다시 대통령에게 버젓이 제시했다는 것은 대통령을 무시하거나 가지고 노는 작태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더 이상 진장관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정책결정을 할 자격도 성향도 아닌 것 같다. 국민과 대통령 입장보다 정통부 입장을 일차적인 잣대로 삼고 있는  진장관이, 한국의 미래산업을 관장하는 장관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 논설위원

* 필자는 언론학 박사로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전문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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