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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 선생과 ‘패권적 민족주의’
[도끼빗의 갈라치기] ‘민족’ 개념 얽매이지 말고 홍익인간 정신 되살려야
 
도끼빗   기사입력  2006/09/22 [15:40]
홍익인간의 정신이 민족의 알기이다 이 범주를 만들까 말까 하다 오늘 드디어 간송 미술관 이야기를 보고 피가 끓어 만든다.
 
우리 배달 민족은 소중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고 또 사람 안에 하늘과 땅이 있으므로 네가 하늘이고 내가 땅이고 네가 사람이고 내가 하늘이고 의 복잡한 논리를 공기돌 다섯개와 윷놀이 한판으로 담을 줄 안 귀중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요즘은 "민족 정신"하면 무슨 영토를 넓히고 어디 만주고 몽고고 북경이고를 영토로 다스렸습네 무슨 "과학적인" 발명을 했습네 하면서 "세계에 알려야 한다"라고 하면서 뻘건 핏발 선 눈으로 몰쳐다닌다.
 
喝!
 
단군 할아버지가 홍익인간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동명성왕은 시달린 만주의 평민들이 맘놓고 쉴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단 세명의 친구들과 함께 나무 베어다가 목책을 세우는 노고를 아끼지 않으셨는가. 먼 신농 할아버지는 약초를 캐어 직접 맛보다가 중독되어 돌아가시지 않았는가.
 
사람이 왜 태어나고 왜 소중하고 왜 인종과 피부색과 언어를 가리지 말고 모두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지를 그래야 나라가 생기고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는 것을 아는 분들이었지 않은가.
 
"민족"이라는 미명하에 서양인들이 만들어놓은 가장 천하고 유치한 어리석음을 따라하지 말자. 
 
이제 영토 얘기는 그만 해두자. 기원전 숫자 놀음도 적당히 해두자. 대신, 우리가 그 극악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우리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그렇게 유지해 주신 분들은 어떻게 사셨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셨는지를 깊이 생각해보자.
 
이제 정신 문화에 대해 생각해보자. 민족의 알기는 정신이다. 영토도, 국력도, 부국강병도 아니다. 그걸 제일 먼저 깨달은 사람들이 가장 위대한 민족이 되는 때가 지금이다.
 
오로지 그 뜻을 위해, 도자기 하나를 몇억에 사서 온겨레에게 바친 분이 계시다. "애국애족"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캐나다에 있을 당시였다. 그곳 헌책방들을 드나들다가 어느 곳의 고서 섹션에서 Francois Lenormant의 Chaldean Magic 을 발견하였다. 무려 200불...16만원
 
나는 오래전부터 최초의 문명을 연 수메르 인들이 우리 민족과 뿌리가 같다는 심증을 가지고 있었다. 요즘 환단고기에서 알량하게 "수밀이"라는 한줄 보고서 떠드는 작자들이 많다. 그게 사실이면 무언가 우리 민족이 "인류문명의 시조다!"라는 큰 개소리를 떠들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 옛날에 한국인과 수메르인을 다 아우르는 큰 나라가 있었다면 그게 "한반도에 사는 인간들이 잘났다"는 증거인가. 아니면 온 인류가 한 뿌리라는 증거인가. 당연히 후자다. 그렇다면 민족이고 나발이고를 떠나서 큰 인류의 한 뿌리, 한아버지를 생각하라는 선조들의 깊은 뜻이 아닌가.
 
각설하고, 내 심증은 이런 광기에 가까운 민족주의와는 무관하다. 첫째, 수메르인들의 언어가 교착어이며 한국어와 비슷하다는 수많은 보고가 있다. 아마도 한국어와 수메르어 양쪽을 다 잘 알 45억 중 두 세명의 한 사람일 김철수 박사는 두 언어가 동일한 뿌리라고 단언하고 있다.
 
근데 나는 언어학적인 증거에 대해 큰 신뢰가 없다. 그래서 그보다는 민속학이나 종교 특히 제의(祭儀) 부분에 대해 관심이 갔다. 근데 이 19세기에 나온 프랑스의 걸출한 언어 민속학자 Claude Lefort가 수메르의 제문과 제의를 상세히 관찰하여, 몽고 계열의 아시아 쪽 사람들과 동일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근데 이 책은 수메르 인이 유럽인이기를 바랐던 당시의 분위기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기에 심지어 고대학에서조차 묻어버린 책이다.
 
이 책을 헌책방에서 보았으니 어찌 피가 끓지 않으랴. 하지만 간송 전형필은 커녕 식비가 없어 식빵으로 연명하던 당시 책 한권에 16만원이라니...책을 보다가 보다가 그냥 돌아와서 담배만 뻑뻑피고 말았다.
 
다음날 핏발 선 눈으로 토론토 대학 도서관을 뒤졌다. 없다. 세상에 토론토 대학 도서관은 그래도 북미에서 5번째 안에 드는데...가만히 뒤져보니 마이크로파일이 있다. 가서 보았다. 종이로 뽑을려고 했더니 한 장에 200원이다. 돈이 없다. 한 열 장 했더니 돈도 없고 게다가 눈이 아프고 힘이 들어 못하겠더라.
 
interlibrary loan 으로 뒤졌다. 있다. 신청했다. 두어달 후에 도착했다. 아...푸른 색 까마득하게 낡아버린 19세기 하드카버...냉큼 손으로 다 복사해서 한국으로 챙겨왔다. 언젠가, 이 책의 의미를 누가 알고 번역했으면 좋겠다. 그 개나발 같은 영토 놀음보다는 기원전 4000년 경에 우리 조상들이 대충 무슨 식으로 제사를 지내고 했는지 아는게 더 재밌지 않을까.
간송 전형필 선생은 갑부집 아들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도자기 하나에 몇억씩 부르는 판이라면 그도 힘들지 않았겠는가. 감히 견줄 바가 못되지만, 민족정신의 명맥을 잇고 싶은 누구도 끼니가 힘든 상황에서 한번 16만원짜리 책을 훔칠 생각을 했었다. 선생의 노고에 후손으로서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송구스러울 뿐이다. 그 분 덕에 우리는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떳떳이 느끼고 볼 수 있게 되었다.
 
전형필 큰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간송 미술관에 꼭 가겠습니다.
 
후기: 제길. 알고보니 이 삼년 전에 어떤 출판사가 이 책을 페이퍼북으로 영인하여 지금은 abe.com에서 한 2만원이면 산다. 맥락은? 요즘 서양 사람들이 마법이나 악마숭배가 붐이다보니 이 Chaldean Magic 이라는 제목이 장사가 될 것으로 본 것 같다. 에라 신바빌로니아 마술을 하면서 Cyrus의 칼이나 받아라.  

전형필 [全鎣弼, 1906~1962] 안내 (네이버 백과사전)


본관 정선(旌善). 호 간송(澗松). 서울 출생. 1926년 휘문(徽文)고보를 거쳐 1929년 일본 와세다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오세창(吳世昌)의 지도로 민족문화재를 수집하는 데 힘쓰는 한편, 한남서림(翰南書林)을 지원·경영하며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1940년 경영난에 빠진 보성(普成)고보를 인수하여 교주(校主)가 되었으며, 1945년 광복이 되자 보성중학교 교장직을 1년간 맡았다. 1954년 문화재 보존위원이 되고, 1956년 교육공로자로 표창을 받았다.
 
수집한 문화재는 그의 개인 박물관인 보화각(?華閣:현 간송미술관)에 보존하였는데, 수집품 중에는 1942년 일본인 몰래 안동에서 거금 2,000원을 주고 구입한 《훈민정음(訓民正音)》 원본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서적·고서화·석조물·자기 등이 있으며, 10여 점 이상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1962년 문화포장, 1964년 문화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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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9/22 [15:4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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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끼빗 2006/10/15 [23:50] 수정 | 삭제
  • 김영조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적하신대로 제가 이글을 쓸 적에 좀 감정적이 되어서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말하고 글쓰기 전에 다시 걸러서 생각하는 연습을 더 해야겠습니다.

    박철수님 또 그런 면이 있네요....근데 제가 정말 흥분했던 것은, 그 고려청자가 싸그리 일본 프랑스 어디 가 있을 위험만 피하게 했어도 그게 어디냐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 박철수 2006/09/24 [15:40] 수정 | 삭제
  • 지금 인터넷에 간송미술관을 쳐보세요.
    뭐가 나오나....

    나는 간송미술관하면 마치 그 모든 소장품이 제것입네 하고 떠드는 어떤 얄궂은 자가 떠오릅니다.

    사이트 제대로 만들 돈 몇백만이 없어 그저 주소만 덩그러니 있는 화면만 뜨는 것입니까?

    수고들 하세요.
  • 김영조 2006/09/23 [09:31] 수정 | 삭제
  • 좋은 글입니다. 하지만, 남이 하는 일을 거친 숨소리로 낮추는 것은 보기좋은 일이 아닙니다. 문제점만 가볍게 지적해주는 것이 모양새가 더 좋지 않을까요?
  • 김영조 2006/09/23 [09:29] 수정 | 삭제
  • 1942년 일본인 몰래 안동에서 구입한 《훈민정음(訓民正音)》 원본은 2,000원에 샀다는 확증은 없습니다. 그 저 한가지 설일뿐. 문제는 안동 긍구당가에 있던 책을 그 집의 사위 이용준이 훔쳐다 간송에게 팔았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지금 긍구당가의 장손이신 김대중 어른은 간송 선생에게 잘 보관해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계십니다.
  • 미친이반 2006/09/22 [17:03] 수정 | 삭제
  • 광개토대왕이 영토 넓히자고 전쟁한게 아니었다. 둥북아 무역의 허브를 장악하기 위해 싸운 것을 알려주지 않고 그저 싸움꾼인 것처럼 묘사하는 거 자체가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