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인간존재의 위기와 도시의 사회경제학
[도끼빗의 갈라치기] 인간은 1만년 만의 심각한 위기, 근원을 더듬어야
 
도끼빗   기사입력  2006/09/02 [18:03]
현대 사회의 비극의 근원은 착취도 지배도 아니다. 인간 존재의 위기가 근원이다. 물론 착취와 지배의 문제는 그 인간 존재의 위기의 결과이자 원인이라는 점에서 하나로 엮여 있으므로, 이 두 문제와의 싸움이라는 진보 세력의 전통적인 노력은 문제 해결의 기본의 기본이다. 마치 봉준호의 "괴물"의 등에 꽂힌 두 마리의 정체 불명 물고기처럼, 이 셋은 한 덩어리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 생체의 원동력이 착취나 지배에 있다고 하는 주장이 맞는 것은 아니다. 헤겔 식으로 말해서 그 Grund는, 어디까지나 인간 존재의 위기가 맞다. 따라서 착취와 지배와의 싸움이 결코 그 자체로 머물러서는 아니되며, 좀 더 근본적인 이 인간 존재의 위기라는 문제를 풀어가는 한 디딤돌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존재의 위기란 무슨 말이냐. 여기에서 온갖 사기꾼 약장수들이 다 몰려 들어 한바닥씩 풀어놓는다. 교황, 종정, 샤, 라바이 같은 몇 천년 빌어먹은 악취나는 떼거지들부터 시작해서 독일어 불어 영어 라틴어 책좀 읽는 덕에 사람들이 업어줘도 서럽다고 징징대는 인문학 거지들을 거쳐 최근의 반짝거리는 연예인 광고 급기야 성형외과 비뇨기과 의사들까지. 저마다 인간 존재의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 말이 많다. 
 
요지경 속 ‘괴물’로 전락한 도시
 
나는 거지도 아니고 약장수도 아니니 그 원인을 규명하고 또 떠들어댈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냥 descriptive 한 차원에서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산업 혁명 개시 200년이 지나 인간과 자연과 정신과 물질이 만나는 방식의 근본적 개혁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 1만년간 내려온 농경 시대에서 생겨난 행복의 관념을 "이상"으로 그리워하며 마치 젖 떨궈진 애기마냥 울며불며 집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도시는 200년전 시작된 인류 진화사의 대 사건 즉 우리가 아직 적절한 말이 없어 "산업 혁명"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또 지금도 진행중인, 신석기 농경 혁명과 도시 혁명의 뒤를 잇는 대사건의 최전선이다. 따라서 이곳의 삶이야말로, 농경 시대에 인간과 자연이 교호하던 방식과 가장 멀리 가 있다. 도시는 불면증 환자다. 도시는 썩지않는 쓰레기 공장이다. 도시는 눈물과 땀과 피와 콧물 정액 오줌 똥 그 밖의 모든 체액이 눈먼 방향으로 이리저리 튀는 곳이다.
 
그런데도,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농경 시대에 생겨난 인간의 행복의 고정 관념에 철저하게 잡혀 있다. 이들이 농촌의 삶에 향수를 가진다는 뜻이 아니라, 도시에서 인간들이 그 피똥을 싸면서 달성하고자 하는 삶과 생활 방식을 보면, 결국 농경 시대에 시골 영주나 호족 쯤 되는 인간들이 살던 삶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애 많이 낳아 잘 키우고, 권력도 적당히 바람도 적당히 옷이며 장신구며 각종 사치품도 풍족히 남에게 꿀리지 않을 만한 각종 물자와 "쯩"도 적당히 그렇게 즐기면서 살다가 언젠가 편안하게 저승으로....이런 것이다. 골때린다. 도시는 산업 혁명의 물결 최전선으로 가고 있는데, 행복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은 몇 천년 전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니 도시 생활이 힘들 수 밖에. 꼭 여객선 객실에서 반드시 당구 게임을 즐기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무리스런 일이 아닌가.
 
나는 그래서 도시가 싫다. 도시에서의 삶은 한마디로 요지경이다. 아니, 요지경의 렌즈가 터질 지경이다. 한쪽에서는 70먹은 할머니들이 횟박으로 화장하고서 남자 한번 꼬셔보겠다고 콜라텍에 나왔다가 그 비좁은 도심지의 계단에서 불난리에 휘말려 서로 밟아 죽였다.
 
다른 쪽에서는 윤도현이 꽁지머리를 하고 나왔으며, 그 사진은 네이버에서 크게 떴다. 한편, 넘쳐나는 고아들 중 여자 아이만 입양하여 성폭행하는 "괴물"이 살고 있다고 하며, 그 결과  할머니 어머니 딸이 모두 같은 씨에서 나와 버렸다는 괴담이 돌고 있다. 다른 쪽에서는 바다 이야기에다 돈과 집과 가족을 날리고 자살하는 사람이 있다. 한편, 그 바다 이야기 오락실 주인 중에는 최근의 개난리로 된서리를 맞아 쪽박차게 되었는지라 부부가 음독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수백억 수천억의 예산을 투입하여 나라 사정을 속속히 파악하신 북악산 아래 "쌍거풀 썅커풀"은 바다 이야기와 함께 국정의 걱정에 오늘도 시름이 깊으시다. 이 모든 일이 같은 시간 같은 하늘(반경 60킬로미터) 안에 공존한다. 그러다가 이 모든 인간들이 4년에 한번씩 시청앞에 몰려나오기도 하고, 스크린에서 결정적으로 "뚫리는" 장면이 나오면, 몇 백만이 함께 simultaneous orgasm 의 비명을 지르며 몸부비고 끌어안고 지랄을 하기도 한다. 이게 도시다.
 
나는 요지경을 좋아한다. 길거리의 토사물에 섞인 음식물과 같은 요지경도 도전해 볼 생각이 있다. 19세기의 랭보는 21세기의 이 도끼빗의 요지경에 대한 욕망으로 보면 낮잠 베개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런 도시라는 요지경을 가장 좋아할 인간이기도 하다. 그랬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 나는 도시 소년이었고, 전대가리 시절의 그 칙칙한 서울이 싫어서 항상 일본과 미국의 영화 패션 잡지 보면서 대학 들어가서 날라다닐 날만 기다리던 올챙이였다.
 
도시라는 참혹극의 써커스 천막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다. 삐에로들은 서로 몽둥이도 휘두르고 간지르기도 하고 망치도 휘두르고 또 방구도 끼고 귀에서 비둘기도 꺼내지만 결코 다치지 않기로 되어 있다. 그래서 그걸 보는 나도 또 누구도 편하게 웃고 즐거울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실제 상황이라면. 그래서 공연이 끝날 때마다 운없는 40대 삐에로 아저씨들 몇 명은 정말 머리가 터지고 창자가 터져나온다면. 이건 아니다. 나는 그 뒤에 무슨 마술과 무슨 미녀가 무슨 괴물과 싸우는 재주가 기다리건, 나는 집에 그냥 갈거다.
 
도시를 떠나고 싶다. 내 집 내 그리운 움집으로 가고 싶다. 이 똑같은, 몇 십년 째 힘없는 삐에로들이 계속 죽어나가는 소식을 하루 종일 보고 들어야 하는 참혹극의 써커스 천막에서 날 좀 빼다오.
 
아앗싸.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장 기초적 매뉴얼의 1장 1절. 옆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와 고통소리를 끊어라. 너도 우울하고 칙칙해져서 인상 더러워지고 생활 흐트러져서 피부 더러워지고 이빨 헝클어지고 기미 주근깨 생기고 성능력 저화되어 각종 경쟁력 떨어진다. 우울하고 칙칙한 광경은 100미터 전에 포착하여 피하라. 대신, 네 몸의 5감을 해결할 "세속5계"를 네게 주노라. 잘 뻗고 볼륨있고 맵시나는 것만 보아라. 톡톡쏘고 향긋하고 싸아한 것만 맡아라. 탱탱하고 부드럽고 봉긋한 것만  만져라. 기름지고 잘씹히고 가벼운 것들만 맛보라. 쿵쿵대고 간들맞고 쏘옥 들어오는 것만 들어라.
 
벼락이 아깝다. 흙도 만지지 않고 땀도 흘리지 않고 돼지 불알을 까지도 않고 네 손으로 탯줄을 끊지도 않았고 심지어 배조차 아프지 않았고 지붕 얹을 짚도 꼬지 않고 거기서 나오는 굼벵이는 전화번호부로 밢아 죽이기 바쁜 주제들이,
 
부모를 원하고 자식을 원하고 남편을 원하고 아내를 원하고 밥을 원하고 구수한 된장찌개의 해장 아침밥을 원하면서 자식이 크기를 바라고 자식이 하바드에서 영어 씨부리며 눈파란 애들과 헤롱거리기를 바라면서 또 자기를 죽을 때까지 돌봐주기를 원하면서 맞벌이를 원하면서 누가 집에 있어주기를 원하면서 농촌의 원두막을 바라면서 땅투기를 하면서 계곡의 시냇물을 원하면서 그 옆에 펜션짓는 펀드에 투자하면서 겨울의 찬바람 속에서 스키타면서 그러고 들어오면 스팀팍팍 원하면서 동시에 차가운 콜라와 맥주 마시면서 그러다가 홰동하면 벽난로 태우면서 벌거벗으면서 낑낑거리다 또 찬물 혹은 뜨거운 물로 샤워하면서 차타고 먼길 돌아 아침 출근하면서. 벼락은 싫으면서. 그래 벼락도 스스로가 아깝다.
 
도시가 싫다. 이 반경 50킬로 안에서 이 끔찍한 비극과 이 해괴한 웃음바다가 섞이는 이 공간이 싫다. 그래도 내 블로그는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고 해도 말없이 먹어주는 공간이다. 무슨 말이든 해도 된다. 으하하. 그래서 소줏병과 함께 이글을 썼어도 나는 당당하다. 누가 혹시 내일 아침 내가 제정신을 차려 자체 검열을 통해 죄송한 구절들을 바꾸겠으며 아예 없앨 수도 있지만, 비록 횡설수설이 되어버린 글이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다음이다. 
 
우리 인간은 지금 1만년 만의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우리의 존재 전체가 위기에 처해 있다. 정신 바짝 차려서 그 근원을 더듬어야 한다. 행복의 관념을 새로이 창출하든가, 도시라는 생활 방식을 바꾸든가.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09/02 [18:03]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