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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김부겸을 다시 잠깐 생각한다
[공희준의 일망타진] 수도권에서 야당 패배, 천금같은 기회 버린 사람들
 
공희준
불길한 예언일수록 맞아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난 6월 4일 치러진 여섯 번째 전국동시지방선거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야당을 대표하는 주요한 정치인들이 영남과 호남을 의미 없이 들락날락하면 지자제 선거의 승패를 가를 핵심적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야당이 불의의 일격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 겸 경고해온 터였다.

한국정치를 ‘기울어진 운동장’에 빗대어 표현하는 식자들이 많다. 진보로 불리는 세력에게 그만큼 구조적으로 불리하다는 뜻이다.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표상되는 현재의 야당 세력이 엄밀한 견지에서 진보로 분류될 수 있는지를 따지는 작업은 이 글의 주제와 목적이 아니므로 이는 일단 논외로 부치기로 하겠다. 관건은 수많은 국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수백 명의 꽃다운 어린 학생들이 목숨을 잃게 만든 세월호 침몰 참사가 박근혜 정권의 총체적 무능과 무책임을 생생하게 폭로함으로써 한국의 정당과 정치인들이 여야와 보수-진보로 나뉘어 뛰고 있는 경기장을 결과적으로 비록 일시적이나마 평평하게 만들어줬다는 점이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이 별다른 의의를 찾아낼 수 없는 광주시장 선거에 올인하다시피 하면서 야당 스스로가 이 평평해진 운동장을 제 발로 떠나버린 꼴이 되었다. 나는 안철수 의원이 과연 어떤 이유로 전체 야당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도 백해무익할 ‘광주 올인’을 감행했는지 알지 못한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그가 광주에 있는 야당 조직을 그야말로 ‘접수’하기 위해 남행열차를 탔다면 비록 동의는 못해도 이해라고 할 수 있지만, 윤장현 씨를 광주시상으로 당선시켰다고 해서 광주를 중심으로 한 호남 정치의 지형이 안철수 의원에게 급격히 우호적으로 변화할 것 같지도 않은 터라 동의에 더해 이해마저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현직 시장인 박원순 후보가 새누리당의 중진 정치인인 정몽준 전 의원에게 완승을 거뒀다. 문제는 박원순의 서울 사수가 경기도와 인천에서 김진표 전 교육부총리와 송영길 현 시장이 남경필 전 의원과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에게 각각 패배함으로써 야당 차원에서는 빛이 바래고 말았다는 것이다. 무슨 구실과 핑계를 가져다붙이든 수도권에서 야당은 패배했고, 다른 지역에서의 승리나 선전은 수도권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서의 1 : 2 점수 차이를 감춰주지도, 만회하지도 못한다.

선거를 하다 보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야당의 이번 수도권 패배가 뼈아픈 까닭은 그 과정과 내용이 극히 좋지 않은 데 있다. 무엇보다도 치명적 대목은 문재인 의원은 두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안철수 의원마저도 “호남의 지지를 받는 영남후보”라는 2002년의 낡은 성공법칙에 집착하는 듯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거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노릇이다.

나를 특별히 멘붕에 빠뜨린 일은 안철수 의원 측에서 ‘광주 올인’을 비판하는 여론에 대응한답시고 그가 선거기간 중에 어떤 지역에 얼마의 횟수로 들렸는지를 일종의 알리바이로 내걸은 사건이었다. 그 순간 내 머리에 떠오른 인물은 IMF 사태가 터지기 바로 직전까지도 “펀더멘털은 좋다”면서 이런저런 경제지표들을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이 내보여가며 국가부도 위기의 징후를 애써 무시하던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였다.

그렇다. 안철수 의원은 지표상으로는 다른 지역도 자주 방문했다. 허나 본질은 방문한 횟수가 아니다. 안철수 의원이 한국정치의 무게중심이 오래전에 어디로 옮겨갔는지에 대해서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근본 모순은 점점 더 경제적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경제력의 생산과 부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정치의 내용과 형식을 철저히 규정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영미식 신자유주의에 찬동하건, 북유럽식의 복지국가 모델을 추종하건 경제를 어떤 시스템을 채택해 발전시키고, 재화를 어떠한 기준에 의거해 분배할 것인지가 모든 정당과 정치인에게 주어진 숙명적 과제로 대두하였다. 단적인 예로 세월호 참사를 불러온 원인도 인간의 생명보다는 선박에 관련된 이런저런 비용을 더 중시한 천박한 배금주의에 있지 않은가?

이 모든 경제적 갈등과 투쟁의 태풍의 핵은 인구와 돈이 단연 많이 몰려있는 수도권이 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안철수 의원은 민주당과의 합당을 계기로 본인이 이끌게 된 현재의 야당을 수도권 선거에 전력을 집중하도록 견인해야만 옳았다.

나는 서두에서 불길한 예언은 늘 맞아 들어간다고 탄식하였다. 미안하다. 또다시 불길한 예언을 본의 아니게 남발해야할 상황이라. 문재인 의원은 재작년 초겨울의 대통령 선거에서 승부의 열쇠가 달린 수도권을 내팽개치고 부산에만 매달렸다가 패배의 고배를 마셨다. 예상했던 경로였기에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안철수 의원이 서울 강북에 어렵사리 마련한 근거지를 벗어나 수시로 광주에 내려가는 광경을 무기력하게 우두커니 목도하면서서 나는 야당이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인천시장 가운데 하나만 건져도 다행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유감스럽게도 이 또한 적중하여 나는 다시금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던지 나의 불길한 예언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다크호스가 출현했다. 수도권에서 안산만큼이나 서민층 거주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군포를 버리고 대구로 내려간 김부겸 전 의원이 그 주인공이다. 대부분의 진보 성향 지식인들과 정치 평론가들은 그의 선택을 희생과 결단이라고 찬양하더라. 나는 그들과는 의견이 다르다. 달라도 아주 다르다.

자신을 세 번씩이나 국회의원에 선출시켜준 지역구의 서민층 유권자들을 버리고 대구에 내려가 박정희 기념시설을 짓겠다고 공약한 김부겸에 대해 나는 한마디로 ‘배은망덕’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다정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선거 플래카드로까지 사용하면서 자신의 오랜 원칙과 소신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김부겸의 패배를 ‘아름다운 패배’라고 추켜세우는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 같은 주류 진보매체의 현실은 사람들이 단체로 미쳐 돌아가면 얼마나 심하게 미쳐 돌아가는지를 설명해주는 사례라고 하겠고.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국정운영과 경제회생에는 완벽히 실패했어도, 한 가지 측면에서는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그들은 야당이 중원, 곧 수도권에서의 대마싸움, 즉 한국사회의 사회경제적 모순과 이를 혁신적으로 해결할 미래비전에 관해 정부여당과 양보할 수 없는 불퇴전의 일합을 겨루는 일을 회피하면서 광주와 부산과 대구를 한물간 유랑극단처럼 전전하며 측면대결에만 몰두하도록 만드는 일에 성공한 것이다. 두 갑자 전인 120년 전의 갑오년에 기의한 녹두장군 전봉준도 도성인 한양으로 진군해 나라의 근간과 세상의 질서를 완전히 바꾸기를 꿈꿨는데.

* 21세기 경제학연구소(www.taeri.org) 6월호 소식지에 올린 글임.
글쓴이는 시사평론가, <이수만 평전>의 저자입니다.
 
기사입력: 2014/06/17 [00:35]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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