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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 면죄부' 후폭풍…"결과에 충격, 말 안나와"
현직 판사들, 법원내부통신망에 잇따라 글 올려…이용훈·신영철 직접 겨냥
 
이석주   기사입력  2009/05/11 [18:48]
'촛불 재판' 개입 논란을 불러온 신영철 대법관에 대해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 8일 '경고-주의' 조치를 내려 사실상의 면죄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법원 내 소장 판사들을 중심으로 윤리위 결정을 비판하는 성토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그간 입장 표명을 자제해온 현직 판사들의 맹성토는 이용훈 대법원장과 신 대법관, 법원 내부의 '침묵'을 직접 겨냥하는 양상이어서, '제식구 감싸기' 비판을 받고 있는 신 대법관 파문이 법원 내부에 어느정도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는가를 가늠케 하고 있다.
 
신 대법관은 그러나 자신에게 쏟아지는 법원 안팎의 곱지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사퇴불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법원 일각에선 '사법 파동'까지 우려하는 목소리 마저 제기되고 있다.
 
"가슴만 답답…요건 갖추지 못한 대법관 존경 철회할 것"
 
서울중앙지법 이옥형 판사(사법연수원 27기)는 11일 법원내부통신망 '코트넷'에 '희망, 냉소, 절망'이란 제목의 글을 올리고 "(공직자윤리위에서) 너무 졸렬한 의견이 나와 많은 법관들이 실망하고 있다"며 윤리위 결정에 일침을 가했다.
 
▲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지난8일 촛불 재판 개입논란을 가져온 신영철 대법관에 대해 사실상의 면죄부 결정을 내렸다.     © CBS노컷뉴스

또 "많은 법관들은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결과 발표와 각급 법원의 의견수렴, 전국법관 워크숍에서의 논의 내용들을 보면서 작은 희망을 간직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무망한 것이었음을 알고 '그러면 그렇지' 하는 냉소를 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신 대법관의 부적절한 행위를 '사법행정권 행사의 일환'이라고 밝힌 윤리위 결정을 강도높게 성토, "(신 대법관의 촛불 재판 개입을) 일반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법관 사회는 그것이 무엇을 주문하는지 듣는 순간 알고 있다"며 "(윤리위 결정에)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아 가슴만 답답하다"고 까지 토로했다.
 
이 판사는 신 대법관에 대해서도 "대법관이라는 자리는 법관 사회에서 최고로 명예롭고 존경을 받는 자리로, 정의를 선언하는 곳"이라며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에 철저해야 한다. 불의와 부당한 간섭에 대해 비타협적이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또 "우리가 모시고 있는 대법관은 그 이념적 모습을 향해 가고 있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저를 포함한 많은 판사들이 대한민국 최고법원의 대법관을 존경한다"며 "저는 이러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대법관이 있다면 그 존경을 철회하겠다"고 직접 겨냥했다.
 
이 판사는 나아가 법원 조직 전체를 향해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독립은 누군가의 은혜로서 주어지는 지는 것이 아니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할 때 만이 얻어진다는 것이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우는 진실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법원 내 자성 목소리도…"윤리위 결과가 주는 충격, 입을 다물게 해"
 
이번 파문에 대해 일부 법관들의 '침묵'을 꼬집는 비판도 제기됐다. 사법부의 신뢰회복을 위해선 법관들의 강력한 의견 개진과 소신이 필요하다는 자성의 목소리인 셈이다.
 
서울서부지법 정영진 부장판사 역시 이날 법원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리고 "윤리위 스스로 징계 관련 부분은 권한 밖이라고 선언하면서 신 대법관 사태는 원점으로 돌아왔다"며 "이제 법관들이 강력한 의견 표명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촉구했다.
 
그는 먼저 윤리위 결정에 대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자,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비판한 뒤, "경고나 주의 촉구로 신 대법관 사태를 마무리하려는 윤리위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는 특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신 대법관 발언에 위증 논란이 제기된 것을 거론, "(국회에서의 위증도) 중요한 징계사유인데, 이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는 것은 애초 윤리위 회부 자체가 시간 끌기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법원 조직을 향해 "어차피 신 대법관 사태는 엎질러진 물이고, 우리에겐 현재와 미래가 더 중요하다"며 "반드시 신 대법관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사법권 독립과 국민의 신뢰를 확고히 하기 위해 법관들의 강력한 의견 개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부산지법 문형배 부장판사도 "독립돼 있지 않으면 사법이 아니다"라며 신 대법관의 촛불 재판 개입을 비판하는가 하면, 서울동부지법 오경록 판사도 "윤리위 회부 자체도 못마땅한데 결과가 주는 충격은 입을 다물게 한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신 대법관 '사퇴불가' 고수…현직 판사들 집단 반발 불러오나
 
신 대법관의 '촛불 재판 개입' 의혹이 불거진 이후 시민사회진영과 야권의 자진사퇴 압력 속에서도 현직 판사들은 입장표명을 자제하는 분위기 였다.
 
하지만 이날 4명 이상의 현직 판사들이 논란의 소지가 있음을 알면서도 비판글을 올렸다는 점은 '경고·주의' 조치를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권고한 공직자 윤리위 결정이 법원 조직에 얼마나 크 반발을 불러오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민주노동당은 지난달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신영철 대법관의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민주노동당

이런 상황에서도, 법원 안팎에선 신 대법관이 '사퇴불가' 결심을 굳혔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며 나아가 신 대법관 거취 논란에 열쇠를 쥔 이 대법원장 역시 공직자윤리위 결론대로 '주의나 경고'를 내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3월 부터 불거진 촛불 재판 개입 논란은 신 대법관에 대한 '면죄부'로 종결될 우려가 높아지고 있으나, 시민사회진영과 야권의 '사퇴 촉구'와 판사들의 집단 반발 등은 향후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와 관련, 민생민주국민회의(준)는 이날 오후 '신영철 대법관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3차 기자회견'을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 앞에서 열고,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의 결정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들은 "윤리위 결정은 전형적인 '봐주기-면죄부'에 불과하다"며 "신 대법관이 최소한의 양식이 있다면 더 이상 사법부와 재판의 독립성-공정성 훼손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직무를 어렵게 수행해 갈 것이 아니라, 자진 사퇴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민주당 정세균 대표도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결정에 실망스럽다"고 입장을 밝힌 뒤, "사법부를 살리는 길은 결자해지 하는 것으로 스스로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우리 당의 입장"이라고 사퇴를 촉구했다.
<대자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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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5/11 [18: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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