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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역사의 현장 노근리
미군 양민학살이 벌어졌던 충북 영동 노근리에서
 
홍성관

 
▲노근리 입구에서     ©홍성관
오전 열한 시, 열차는 미끄러지듯 서울역을 출발했다. 영동역까지 가는 두 시간 이십 분동안 인터뷰할 질문들을 정리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교차하였다. 누구에게나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는 법인데, 하물며 가족이 죽고 자기 몸이 불구가 되는 전쟁의 참화를 다시 끄집어내려는 것은 당사자들에게는 너무도 잔인한 일은 아닌가. 약간 숙연해진 마음으로 영동역을 나서자 한적한 시골 면소재지가 펼쳐졌다.

 현장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면서 백발이 성한 노부부를 인터뷰할 수 있었다.

 "다 지나간 일을 왜 자꾸 들추려고 하나. 그거 다 군에서 보상받으려고 그러는 거 아닌가. 양평에서도 미군이 조사하면서 '너 공산당이지'라고 묻는데, 한사람이 영어를 못 알아들으니까, 그냥 'ok'라고 대답했고, 그이는 총살당했다. 전쟁통이라 다 그랬다. 미군들도 우리 도와주려고 왔다가 그런 거 아니냐. 미군 철수하면 인민군도 쳐들어온다. 미국 때문에 그래도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됐는데, 뭘 자꾸 들춰내려고 하나."

 인근에 사는 것 같아 보였는지라 이런 말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목사를 하다가 은퇴하고 공기 좋은 곳을 찾아 내려와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이해가 갔다. 같은 시대에 전쟁을 겪었더라도 각자의 신분과 처했던 상황에 따라 인식도 다를 테니까.

 버스를 타고 20분쯤 지나 쌍굴다리 현장에 도착했다. 인간에 의해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됐던 끔찍한 장소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여느 농촌의 풍경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쌍굴다리 옆에는 조그만 컨테이너 사무실이 '노근리 사건 현장 안내소'라는 현판을 걸고 있었다. AP통신에서 보도된 이후 군청에서 대책 담당 부서가 만들어졌고, 5명이 교대로 상주하고 있다고 한다.

 생존자들이 거주한다고 소개받은 주곡리로 가기 위해 마을 주민의 차를 얻어탔는데, 그 주민은 심규철 의원 등이 제출한 특별법을 언급하면서 '미국놈들이 거저 보상해줄 놈들이 아니지. 어떠한 명분을 달아도 말야. 국방부, 한미연합사령부에서 수백번도 더 왔다갔는데,,아무것도 안됐어'라고 했다. 특별법의 결과에 대해서 마을주민들이 회의적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주곡리 마을의 경로당에서 당시 쌍굴다리에 있었던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 분은 김소은 79세(당시 27세) 할머니로 당시 영동에서 살다가 피난 오던 중 미군에 의해 쌍굴다리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친정어머니와 딸, 올케를 잃었다. 다른 한분은 이석조 83세(당시 31세) 할머니로 쌍굴다리에서 아들을 잃었다. 조심스럽게 당시 상황에 대해서 여쭈어 보았다.

『가면 산다고, 밤을 세고 낮에 동굴 밑에 갔다가 닷새 만이지, 닷새만에 나왔어. 아무것도 못 먹고, 인민군이 쳐들어온다고, 미군들이 마을에 들어와서 쫓아내다시피 피난가라고, 그래 우리 아버지는 소를 몰고 간겨.. 저녁 해놓은 것도 못 먹고 그냥 쫓겨간거 아녀. 아침에 총소리가 나는겨. 철둑으로 올라가라고, 미군들이 총으로 밀어내는겨, 철둑을 올라가니까 와다다다다, 비행기가 뭘 쏘아대고, 거기서 그리 많이 죽었대.. 마악,,,소도 그냥 씨러지고,, 철둑에서, 사람도 쓰러지고,, 그래가지고 그거 피해서 쌍굴로 간겨, 들어가본께, 우리 언니 죽었지 올케 죽었지 엄니 총맞았지 우리 아버지 그랬지 우리 딸 총 맞아 죽었지. 아가 대롱대롱 하는게, 내가 쌍굴로 내삐고 정신이 없어가지고 안고 있었는데, 굶고 그래가지고 정신이 없었으니까 우리 어머님이 아이고 얘야 얘야 죽었다.. 움직이면 그냥 쏘는겨.. 닷새를 굶어 가지고 핏물을 먹었어.. 우린 살라고 송장을 데려다가 가슴을 덮고 살려고,, 송장이 피 투성이에..나흘 째 되던날, 송장물이 불그리한걸 바가지로 퍼먹었어.. 그 물을 퍼다먹고  나흘 닷새 인민군이 들어와 가지고,,, 일주일을 굶은겨..친정어머니도 돌아가셨지.. 나오니께 해방됐다는 소리도 나오고,, 우리는 피난을 잘가가지고 있는거 영동살았거든 임실로 피난을 왔었거든 가만히 놔났으면 괜찮았을걸 미군이 쫓아내가지고 벼락을 맞은겨..』

『지난 일인데도 너무 억울해요.. 송장으로 감아쌌고,,살라고,,
나 같은 경우에는 집이 영동에 있었는데 임실로 와서 친정으로 피난을 가지고 영동집도 다 타고 옷 파묻어 논것도 없고 다 타고 없지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몰라요 친정아버지가 농사 조금 지은 걸로 얻어먹고 살고 있다가 누구한테 하소연 할 수 도 없고 쌀 한톨 주지도 않지 누가 눈 빠졌다고 거시길 해줘 총맞았다고 거시길 해줘 국한그릇 밥한그릇 얻어먹을데도 없었어요 그렇게 고생을 한거야. 그걸 누가 알아주겠냐고, 나 같은 형편에는 집도절도 아무것도 없고 시동상하고 시어머니하고는 얻어먹을래도 넓은 데로 얻어먹으러간다고 가고,,,친정에서 얻어먹고 친정아버지 농사짓는거 거들고 아버지가 그라데 너도 따로 살아라 숫갇두개하고 쌀한되주드라고 그거 가지고 나와가지고 방을 얻어가지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방아 찧어주고 그걸로 개떡지어먹고 그렇게 산겨..』

 이제 역사속에 묻혀있던 이 사건을 주민들이 알려나가기 시작했던 과정에 대해서 질문을 드렸다. 

 
▲노근리의 할머니들     ©홍성관
『하루 옷을 세 번 갈아입었어 대전 정모.. 그 양반이 한번은 한복입고 나오라고 한번은 몸빼입고 나와서 하루 사진 세 번 찍었어..(이석조 할머니)  나는 생각도 안하고 상관도 안했자나... 안하고 나뒀는데 그 정씨가 찾아와 형수님 딸도 죽고 그랬는데 억울하자나요..그래.. 노근리 사건이라면 말하기도 고만 싫다고만 생각도 안하고, 가다 죽으나 오다 죽으나 마찬가지 아녀..그러니까 말하지도 못하고 있었지. 그 양반(정은용씨)이 애를 써가지고.. 너무 억울하게 해가지고 애를 쓰는데 미국이 우리나라를 너무 얕보는 거 같어.. 억울하게 이렇게 해가지고도 잘 안되고,, 그런 생각을 하면 이걸 얼마정도라도 해결을 해주면 좋겠는데 한국을 너무 얕보는거 같어 미국이.. (김소은 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신지 5년됐으니께 할아버지가 하신게 3년이여.. 할아버지 하신 말씀이 있는데... 성공해야하는데 아이구,,,,(이석조 할머니)
 회원인 사람들이 2만원도 내고 3만원도 내고 이래가지고 뭘하날 사더라도 다 돈아니에요 이번에 서울간대도 2만원 내가지고 간겨..그건 잘모르겄어요 금방듣고 금방 잊어먹고,, 』

 이 회원이라는 것은 '노근리 인권평화연대(대표 정은용)'의 회원을 말하는 것으로 지난 5월 21일에 삼성동 지하철 2호선 앞에서 '이라크 어린이에게 희망을'이라는 성금모금행사에 참여했었다. 나이가 들어 지난 일들도 많이 잊어버리고, 새로운 말도 들으면 곧잘 잊어버리게 되었지만, 당신들처럼 똑같이 무고한 학살을 당했던 이라크 인들을 위해 없는 살림에 돈을 각출하여 서울까지 올라오신 모습에 다시 한번 숙연해졌다.

▲매년 걸리는 현수막, 역사의 상처는 언제 아물려나     ©홍성관
『보상 없어요, 우리 정부에도 없어, 조사만 해가지고 갔지 사탕하나 받은게 없어 내돈내고 했지 ..우리 생각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미국서 우리나라를 얕보기 때문에 거시기 하덜 못하는데 그래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높은 사람들이 힘을 써서 이렇게 좀 억울한 사람들 억울한 거시기를 안면해줄까 이런 생각도 많이 해봤어요. 고만 해결되어야 하는데.. 이제는 없어야지.. 세월이 지나서 어쩔 수 없었지만 마음을 보상해야 되는데. 마음이라도 합의를 보고 그러면 좋잖아.. 근데 마음 가라앉을라카면 오라고 해서 마음 이상해지게 하고...』
 
 한국전쟁이 종식되어 철조망이 쳐진지 반세기가 지나도록, 군사독재정권의 서슬퍼런 세상을 지나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어째 이 분들의 아픔을 한번 어루만져드리지도 못했을까. 가해자인 미국이 여전히 한반도 뿐 아니라 세계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어 제대로 항변하지 못하는, 그래 보상은커녕 사과한번 받기 위해 빌어야 하는 그런 처지라고 한다면, 최소한 우리 정부만이라도 이들을 보살펴주고 보상해주었어야 마땅했다.

 '얼런 끝이 나야 되는데,,, 이게 오십년을 넘어가니..' 라고 하시던 이석조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현장을 나오면서 내내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 객원기자

 <현재는 한나라당 심규철 국회의원 외 34명의 제안으로 "노근리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안"이 행정자치위원회에 상정되어 있는 상태다-필자 주>


기사입력: 2003/06/29 [16:18]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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