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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목사님, 그렇게 하면 ‘우파’ 못 삽니다!
[논단] 좌와 우 어느 한 쪽 아닌 '토지정의'를 통한 통합의 길 제시해야
 
고영근   기사입력  2006/03/11 [13:33]
지난 3월 9일자 <중앙일보> 시평에는 김진홍 목사가 쓴 '우파(右派)가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8년 발표한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구절('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을 패러디한 "전국의 우파여 단결하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우선, 김진홍 목사가 이 글에서 지난 1년간 뉴 라이트(New Right) 운동을 이끌면서 느낀 우파의 한계와 단점을 지적하고, 이런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로 "지난날 우파가 누렸던 호시절에 잘못하였던 죄와 과오를 철저히 회개하는 일"을 언급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김진홍 목사는 이 글에서 시종일관 우파(右派)와 좌파(左派)의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우면서, 우파와 좌파를 통합하는 대안을 이야기하지 않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 <중앙일보> 시평에 김진홍 목사가 쓴 '우파가 살 수 있는 길'    © 3월 9일자 중앙일보 pdf

분열보다는 '토지정의(土地正義)'를 통한 통합을

김진홍 목사는 글에서 우파의 유형(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튼튼한 국방, 전통적 가치, 작은 정부와 큰 시장)과 좌파의 유형(민중민주주의, 통제경제, 큰 정부와 작은 시장)을 그 차이점으로 들었다. 그리고 우파는 자유와 성장을 추구하는 반면, 좌파는 평등과 분배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일면(一面)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파와 좌파, 양쪽 모두 완전하지는 못하고 어딘가에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김진홍 목사는 인정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성장과 분배는 결코 함께 갈 수 없는 것인가? 우파와 좌파가 통합할 수 있는 길은 이 세상에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김진홍 목사는 해야만 한다. 그리고 종교인으로서 한 국민을 우파와 좌파로 나누어 편 가르기를 하기 보다는, 그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한다.

지난 반세기가 넘도록 이 민족이 고통스럽게 겪어온 우파와 좌파의 대립을 언제까지 계속 해야만 할 것인가? 이러한 우파와 좌파의 대립과 한계를 뛰어넘는 정반합(正反合)으로써 '시장 친화적 토지공개념'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는 '토지정의(土地正義)'를 말하지 않는 김진홍 목사의 현실-역사 인식이 참으로 안타깝다.

우파는 생산의 3요소인 (토지+노동+자본)을 개인이 절대적이고 배타적으로 사유(私有)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좌파는 (토지+노동+자본)을 공유(公有)라는 이름 아래 국유화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사유(私有)와 공유(公有) 사이에 적절한 타협점은 없는 것인가? 무엇은 사유하고 무엇은 공유해야 하는 것일까?

토지정의(土地正義)의 정신과 원리에 따른다면 토지는 그 가치(수익권)를 사회가 공유(사용권과 처분권은 사유)하되, 인간의 노력과 기여의 산물인 자본(독점자본이 아닌 순수자본을 의미)과 노동은 사유해야 한다. 결국 우파와 좌파의 대립은 무엇을 사유하고 무엇을 공유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차이점에서 발생한 비극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시장 친화적 토지공개념이 대안이다

김진홍 목사는 또한 글에서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을 예로 들어 좌파정권이라 규정하고 있다. 경제의 효율성 면에서 본다면 이 말은 부분적으로는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다. 사회민주주의(약칭 사민주의)를 추구했던 서구복지국가가 현재 겪고 있는 딜레마와 이들 복지국가들의 신자유주의로의 이행은 이를 증명해 준다.

복지국가는 (토지+노동+자본) 중에서 자본과 토지에 더 많은 부담을 부과하여 복지예산을 확충한다. 그러면 공유해서는 안 되는 (독점 자본이 아닌) 건전한 자본마저도 과도하게 부담을 안게 되어 생산이 위축된다. 열심히 일해도 많은 것을 정부가 가져가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려는 능률(효율성)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효율성을 담보한다고 해서 형평성마저 내버린다면 이 또한 또 다른 일면(一面)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꼴이 되고 만다. 효율성(자유+성장)과 형평성(평등+분배)은 양쪽 모두 중요하다.

어쩌면 이 둘은 로마신화에 나오는 야누스(Janus)의 두 얼굴인 것 같다. 그러면 무엇에서 효율성을 높여야 하고 무엇에서 형평성을 가져야할까? 인간의 노력과 기여의 대가인 (독점자본이 아닌) 건전한 자본에 대해서는 효율성을 높여야 하고, 인간이 만들지 않은 토지에서 발생하는 토지불로소득은 사회가 환수하여 형평성을 높이는 게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효율적이면서도 형평에 맞는다.

김진홍 목사는 글에서 "성장을 무시한 채 분배를 강조하면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같은 나라가 되기 쉽고, 자유 없이 평등만을 강조하게 되면 북한의 굶주리는 평등에 이르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 남미 국가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다름 아닌 심각한 토지소유의 불평등을 안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북한은 설명할 것도 없이 토지와 함께 자본마저도 함께 국유화하고 있는 나라다. 남미국가와 공산주의 국가 모두 무엇을 사유하고 무엇을 공유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김진홍 목사는 말해야 한다. 그리고 김진홍 목사의 말대로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게 하려면, 생산적인 노력소득에 대한 감세와 투기적인 토지불로소득에 대한 증세를 동시에 시행하는 '패키지형 조세개혁'이라는 '시장 친화적 토지공개념'의 한 방법론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높은 지가를 감당하지 못하는 많은 생산시설들이 해외로 나가 있고, 창업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높은 임대료와 살인적인 땅 값, 건물 값으로 인해 창업의 진입장벽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업들이 진정으로 자유롭게 일 할 수 있게 하려면, 이 나라의 심각한 토지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고는 해답이 없다.

"우파와 좌파여, '토지정의(土地正義)'를 통해 통합하라!"

또한 '시장 친화적 토지공개념'은 김진홍 목사가 이야기하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이라는 세계적인 흐름에도 정확히 부합한다. 국가는 토지불로소득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환수하여 정부의 운영과 국민의 복지에 쓰면 되고, 생산적인 활동에는 과감하게 감세를 해주어 시장메커니즘을 통한 자연스러운 시장 활성화를 이룩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작은 정부, 큰 시장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김진홍 목사의 말대로 한국사회의 여러 복잡다단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우파의 단결이 아니라, 우파와 좌파를 통합할 수 있는 '토지정의(土地正義)'를 통한 범국민적인 화합일 것이다. 김진홍 목사의 말처럼 "우파가 누렸던 호시절에 잘못하였던 죄와 과오를 철저히 회개하고" 우파뿐만 아니라 좌파도 그 갈등과 반목에서 돌이켜 토지정의(土地正義)를 통한 화합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김진홍 목사의 말처럼 하늘은 다시 한 번 이 땅에 역사를 주도할 기회를 줄 것이다. 김진홍 목사의 말을 패러디하여 이렇게 바꾸고 싶다.

"전국의 우파와 좌파여, 토지정의(土地正義)를 통해 통합하라!"

그러면 김진홍 목사 글의 마지막 말처럼 진실로 “선진 통일한국 시대로 나가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 글쓴이는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부장이며,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함 모임 전임간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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