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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나비'와 민방위대의 존재이유
[주장] 유비무환(有備無患)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
 
예외석   기사입력  2005/09/08 [12:01]
지구상에서 전쟁이 주는 교훈보다 더 강한 것이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다. 인간이 달나라에 가고 첨단 네트워크가 세계를 연결하는 지금도 인간은 자연에 대한 무기력함으로 재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번 경험한 이후로는 그와 같은 재난을 아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쌓인다. 민방위대가 존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에겐 전쟁이 주는 교훈이 온 국민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다. 그것을 통하여 후손들에게 이 땅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고 평시에는 재난대비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민방위대의 역할이다. 과거 역사 속에서 이율곡 선생이 주장한 10만양병론을 통해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고사성어를 한번 되새겨 보았다.

아직도 2년 전의 태풍 매미가 불어 닥친 그날 밤의 기억이 생생하다. 민족의 대이동이라고 부르는 추석명절에 모두가 고향에서 즐거운 한가위를 보내고 난 다음날이었다. 느닷없이 아파트 베란다의 창문이 여기저기에서 깨지는 소리와 함께 주차장에 있던 자동차들이 둔탁한 소리들을 내면서 파손이 되고 있었다.

전날부터 아파트 관리실에서 태풍이 온다고 주의사항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지만, 주민들은 "설마 그 정도일까"라는 생각에서 대부분 경고방송에 무관심을 보였다. 결국 베란다의 창문이 부서져 나가고 자동차가 파손된 다음에야 실감을 하게 된 것이다. 다음날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그 생생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거리 곳곳의 가로수들은 뿌리까지 뽑혀서 나뒹굴고 있었고 거대한 고압선 철탑이 맥없이 나가떨어진 광경을 목격하였다. 주차장에 세워둔 나의 자동차도 유리창이 다 깨지고 엉망이었다. 그리고 마산과 부산에서는 밤사이에 인명피해자들이 많이 나왔다는 보도를 들었다.

언론과 시청이 앞장서서 주의를 촉구하고 재난대비를 단단히 하라고 경고를 하였건만 정작 방송을 듣고 있던 우리는 남의 일처럼 느꼈었고 ‘밤사이 안녕’이라는 말처럼 정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풍과 해일 앞에 건물들이 물에 잠기는 것을 망연자실 지켜 볼 수밖에 없었던 그날 밤의 기억들이 그저 부끄럽게만 느껴질 뿐이다. 그 설마? 설마? 하는 마음이 결국 사람들을 교만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재난을 당하지 않게끔 만전을 기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눈앞에 벌어진 기가 막힌 현실도 외면할 수만은 없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못 느끼고 있었지만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여러 곳에서 발생하다보니 이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동네마다 주민들이 앞장서서 깨어지고 물에 젖은 가재도구와 쓰레기들을 정리하는 데 모두가 내일처럼 도와주었고 정부에서도 신속하게 재해복구를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에 마음이 든든하였다.

내가 살던 동네도 동네지만, 근무하는 직장에도 피해가 보통이 아니었다. 밤  사이에 공장 지붕이 날아가고 조립식 판넬들은 마치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구부러져 온 공장안에 널부러져 있었다. 마치 전쟁에서 폭격을 맞은 것 같이 폐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 민방위교육을 통하여 재난대비훈련이 잘 되어져 있어서 아주 신속하게 피해복구가 이루어 질 수 있었다.

추석연휴 기간 중이었지만, 멀리 고향에 가 있던 대원들까지 회사로 돌아와 모두가 하나 되어 복구 작업에 구슬땀을 흘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자신의 가정에도 아주 큰 피해를 본 직원들이 있었는데 만사 제쳐두고 직장복구부터 우선 하자는 마음으로 복구 작업에 임한 대원들도 있었다.

특히 마산에서 가장 심하게 피해를 입은 어시장 부근에 집이 있었던 대원은 밤사이에 집이 물에 잠겨서 온 가족이 대피를 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새벽에 회사로 달려와 지붕과 창문이 다 날아간 사무실에서 상황근무를 하였던 직원도 있었다. 웅웅거리는 바람소리에도 라디오 방송에 촉각을 세우며 시시각각 전해오는 일기예보를 듣고 또 비상연락망을 통하여 전 직원들에게 상황전파를 신속하게 하였던 것이다. 

다음날 오전 10까지 대부분의 직원들이 회사로 집결하여 응급복구를 서둘렀고 연휴기간 이후 생산 활동에 지장이 없게 빠른 시간 내에 마칠 수 있었다. 문제는 지역 복구였다. 태풍피해를 가장 심하게 입었던 곳이 마산과 경남 일원이었다. 회사의 배려로 민방위대원 100명을 마산어시장 부근 수해복구현장으로 긴급 투입하여 2일간 대민지원을 하고 직원 중 수해를 입은 마을에 50명을 투입하여 마산시 진동면에서 2일간 수해복구 작업을 하였다.

망연자실이라는 표현은 이제 우리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평소에 각별한 주의와 대비가 중요하겠지만, 천재지변으로 어쩔 수 없이 재난을 당했다면 아주 신속하게 복구하는 방법만이 피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는 길인 것이다. 재난복구에는 너와 내가 있을 수 없다. 모두가 하나 되어 내일처럼 할 때 그 성과는 아름다운 것이다.

얼마 전 마산시에서 ‘태풍 매미의 아픔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이 넘치는 든든한 마산을 만들어 가고자’ 전국 민방위 해일대비 시범훈련을 실시하였었다. 시민들에게 방재의 중요성과 경각심을 심어주고 재해예방 및 대처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훈련에 새로 생긴 소방방재청, 경남도지사, 국회의원, 시도의원 등 재해대책본부 관계자분들과 유관기관 종사자들이 참여하여 대규모 시범훈련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창원시에서 회사로 민.관합동 재난대비긴급구조종합훈련에 민방위대원들을 참여시킬 수 있는지 제안이 들어와 민방위대장님께 보고 드린 후 124명의 일반대원을 창원파티마병원 훈련현장에 투입하였다. 모두가 민.관합동훈련은 처음 참여하는 생소한 훈련이라서 그저 흥미위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훈련이 시작되면서 실제상황을 방불케 하는 연출과 소방대원들의 진지한 자세, 그리고 훈련관계자들의 지휘통제능력을 접하고 다시금 훈련에 임하는 자세를 가다듬게 되었다.

온 몸을 던져 한 가닥 레펠에 의지하여 피해자 구조에 임하는 소방대원들을 볼 때 평소에 음지에서 봉사하던 그분들의 노고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아주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 웃으면서 장난삼아 훈련에 임하던 민방위 대원들도 점점 실제상황처럼 긴장을 늦추지 않았고, 훈련을 모두 마친 후에는 아주 좋은 경험으로 평가하는 대원들이 많았었다. 그리고 다음에도 이렇게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훈련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올해에도 회사에서 민방위 비상소집이 있었다. 매년마다 비상소집을 하던 대원들의 행동을 보면 점점 민방위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 가고 있음을 확연히 느낄 수가 있었다. 500명의 직장대원들이 대부분 소집발령 20분 내외에 응소를 하였고 민방위 비상소집이 있던 날은 아침에 출근하는 모습들이 아주 더 활기차다. 평소에 근무처가 달라 자주 만나지 못하던 동료들을 만날 수가 있어서 더욱 반가운 모습들이다.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는 기회만 되면 꼭 여러 곳에다 소개를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민방위훈련이 있는 날은 우리 회사의 노사화합의 장을 여는 날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노조간부들이 솔선수범하여 정문에서부터 차량통제를 하고 인원유도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민방위대장님을 비롯하여 모든 간부들이 제일 먼저 출근하여 대원들을 맞이하면서 인사를 나눈다.

4시간 일반교육에 참석하는 대원들도 전에는 민방위 교육을 단순히 회사를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시간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난번 실시한 재난대비긴급구조종합훈련 이후에 민방위대의 존재이유를 확실히 인식하게 되었고 잠깐씩 듣는 강의 내용 중에서도 일상생활에서 많은 도움이 되어 교육의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요즘 민방위 대원들에게 민방위대의 존재이유를 물으면 “사고예방, 재난발생시 긴급대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

민방위대 관리를 하는 시청담당 부서도 민방위재난관리과로 전문화가 되었고 재난관련 업무체제를 소방방재청으로 일원화하여 시민들이나 민방위 대원들도 새로운 기대감이 많이 있다. 특히 민.관합동으로 재난대비긴급구조종합훈련을 통하여 시민들이 민방위의 역할과 위상에 대하여 많이 알게 되었고 살아 있는 체험교육이 되어 주변에도 많이 소개해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훈련기회가 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고 시민들에게도 많은 홍보를 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재난대비는 남의 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바로 나의 일이고 우리의 일인 것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 필자는 경남 진주시 거주하며 한국항공우주산업 노동자, 시인/수필가, 열린사회희망연대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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