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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주의자와 진보세력, 그 내부모순 구조
[진보의 개념5] 북한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 지양해야 수구세력과 차별돼
 
뒤집기   기사입력  2005/03/10 [00:47]
김일성주의자가 가진 내부 모순 구조

지난 글에서는 김일성주의가 설령 옳다고 하더라도 김일성주의자가 진보세력에서 떠나야 할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그 전에는 무정부주의, 트로츠키주의 등은 그것이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내부적 모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한 것들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글에서는 김일성주의자가 가진 내부적 모순 구조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노파심에서 한 번 더 밝히자면, 이 시점에서 김일성주의를 거론하는 것은 수구세력이 항상 주장하듯 국내에 친북세력이 들끓어서도 아니고 우리 사회가 좌편향이 되어 있어서도 아니다. 이 글은 국내에 존재하리라 예상되는 한 명의 김일성주의자에 관한 대화 형식의 글이다. 왜 한 명에 대해 글을 쓰는가는 지난 글에서 그 이유를 이미 밝혔다.

김일성주의자의 특징은 북한이 정한 방향과 정책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낸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따라서 국내의 김일성주의자에 대해 논하려면 필연적으로 북한 정책의 옳고 그름에 대해 논할 수밖에 없다.

수십 년 동안 북한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기에 혈안이 된 수구세력 입장에서야 북한이 주장하는 것은 모두 틀렸으므로 이런 문제에 대해 논의할 필요조차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북핵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의 갈등에서 보듯이 무조건 북한만 틀렸다고 하는 것은 균형 잡힌 시각이라고 볼 수 없다. 더군다나 용서할 수 없는 한승조식의 친일발언 조차 반북이데올로기를 지렛대 삼아 빠져 나가려는 친일 수구들을 보면 그러한 자세는 매우 비열한 태도가 될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이처럼 유치한 논리전개, 즉, "북한은 악이다. -> 김일성주의자는 북한을 추종한다. -> 김일성주의자도 악이다."가 아니라 좀 더 다른 각도에서 김일성주의자의 문제점을 논해보려고 한다. 수십 년간 수구세력이 만들어 놓은 반북이데올로기를 등에 업고 마녀사냥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김일성주의자에게도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글에서는 북한에 대한 평가를 배제한 상태에서 글을 전개하려 한다. 이는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국가보안법 때문에 공정한 논쟁이 되지 않는 상황을 고려한 측면도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이렇게 되었을 때, 이 글의 논지는 논의가 전개되기도 전에 미리 정해진 선입견 또는 양비론에 의해 결론이 미리 결정된 글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가 주체사상의 한 단면, 정치적 중립성과 반운동권을 표방하는 현 외대 총학생회가 '주체사상 문건'을 발견했다면서 경찰에 신고하는 헤프닝이 벌어졌다.     © 네이버 '이기자 행복저널' 블로그에서 인용

위에서 말했듯이 한국 내 김일성주의자의 핵심적인 문제는 그가 북한의 정책을 “선별없이 모두” 수용한다는 점이다. 그가 이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북한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여겨서이다. 그는 북한이 친일파 처단도 잘했고, 미국에 굴종하지도 않아서 북한이 잘 되는 것이 “선”이라고 여기고 있다. 밝힌 바대로 이러한 것에 대한 가치 판단은 일단 유보하기로 하자.

다만, 이 글에서는 그의 희망과 행동이 왜 모순되며, 왜 그가 어리석은가를 그 스스로의 사고방식에 근거해서 드러내보도록 하겠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10여 년 전에 북한에서 기근이 발생해서 엄청난 주민이 굶주림에 허덕였다. 당시 한국의 수구세력은 이러한 북한의 기아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이를 한국의 체제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삼거나 북한을 조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하였다. 반면, 당시의 김일성주의자의 태도는 북한의 기근 소식 자체가 반북세력들의 모략이라는 자세를 드러내었다. 이는 앞서의 수구세력의 태도에 대한 반발로서의 성격도 있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고 판단된다.

그것은, 첫째, 북한이 초기에 공식적으로 기근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둘째, 한민전 구국의 소리 등이 북한 동포 돕기에 적극 나설 것을 독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의 태도는 비난받을 것이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핑계거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북한 내부의 동요를 막고, 북한 체제의 피폐함을 드러내기가 내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한국 김일성주의자를 이끈다는 구국의 소리가 “지상낙원이고 전 세계의 진보적 인민이 우러러보는 공화국”을 돕자고 나서는 것은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한국의 김일성주의자는 초기에 자발적으로 북한동포를 돕기 위해 나서지 않았다. 김일성주의자는 그들의 주장에 근거한다면 한국 내에서 북한 동포에 대해 가장 큰 사랑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북한전체를 증오, 멸시하는 수구세력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종교단체 등이 주축이 된 북한돕기운동이 시작된 후 한참 후에야 여기에 결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김일성주의자는 북한의 주장을 무조건 따랐지만 이는 북한동포에게든 북한 정권에게든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북한 정권의 성격 자체를 반민중적인 것으로 규정한다면, 북한 정권이 초기에 기근사실을 공식화하고 즉각적인 구호를 요청하지 않은 것은 논리적 결과이다. 물론 김일성주의자는 이러한 가정을 부정할 것이다. 즉, 그는 북한정권이 민중의 배고픔을 모른 척 할리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정권이 초기에 기근사실을 공식화하고 구호요청을 하지 않은 것은 표면적일 뿐이며 실제로는 그것을 바랬다고 봐야 한다. 즉, 기왕이면 타국에 구걸하기 보다는 해당국에서 자발적으로 구호물자가 모여 전달되기를 학수고대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김일성주의자의 판단이 옳다면 바로 그 점 때문에 김일성주의자는 스스로에게 적대적이게 된다. 그는 초기에 이런 자발적 북한동포 돕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의 정책을 그대로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예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1994년 북한 핵 위기 이후 북한은 미국과 여러 차례 물밑 교섭을 가져왔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을 헐뜯어도 수면 아래에서는 여러 가지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원쑤"라고 하던 미국의 국무장관이 평양에 도착한 것은 북미관계가 더 이상 증오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정도의 관계 진전이 있기까지는 상당한 북미간의 "밀월"이 있었던 것이다.

이를 간파한 수구신문은 진작부터 미국을 공격했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면서 무리해서는 안된다”는 충고에서부터, “미국을 무조건 따라가는 사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자주론"을 펴는 데에 이르기까지 수구세력은 전방위적으로 미국을 공격했다. 반면 한겨레 등 중도, 진보언론은 미국의 입장을 두둔하는 자세를 취하였다.

그러면 한국의 김일성주의자는 어떠했을까. 이들은 북한이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즉, 이들은 북한의 전통적 주장인 "미국 주적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수구세력과 동일한 미국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북한 수뇌부는 이미 내부적으로 반미를 벗어나 "친미"로 접근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반해 한국의 김일성주의자는 여전히 반미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김일성주의자에게는 이러한 지적이 북한 수뇌부와 핫라인을 개설해야 한다는 것으로 들리겠지만, 물론 그건 가능성도 없고 올바른 해결책도 아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김일성주의자가 김일성주의를 벗어던져 버리는 것이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우선 스스로 사고하는 습관부터 기르라고 충고해주고 싶다.

지금까지 김일성주의자는 북한의 공식발표를 반복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예컨대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한다고 하면, 6자회담에 나오라고 촉구하기보다는 거부한 이유가 정당하다고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북한이 6자회담을 덜컥 받아들이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 가서 6자회담 참석은 잘한 것이라고 할 것인가.

나는 이런 점에서 김일성주의자의 가장 큰 특징을 스스로 사고하지 않는 자라고 규정한다.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돼내지만 정말 자주적이지 못하고, 창조적이지 못하며 의식이 없는 자라고 판단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앞서 든 예에서 같은 우(愚)를 설명할 것인가.

미국이 "미치광이 전략"을 쓴다는 것이 몇 해 전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인즉, 미국이 너무 합리적으로 비취면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는 단체, 국가가 미국을 상대로 공격할 수도 있으므로, 보복을 할 때는 상대의 예상을 뛰어 넘어 미치광이처럼 광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북한도 가끔 이런 전략을 쓴다고 판단된다. 2002년 제임스 켈리의 방북을 앞두고 벌어진 서해교전은 북한이라는 나라가 고분고분한 나라가 아니라는 이미지를 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김일성주의자들은 북한을 너무 좋게 보려고만 해서 설령 전쟁이 나도 북한의 미사일은 일본에 떨어지지 한국에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물론 수십년 동안 수구세력이 북한을 전쟁미치광이로 만들어 북한을 증오하게 한 것 또한 사실이고, 표면적으로 수구세력에 반대하는 김일성주의자가 그러한 주장을 펴는 것은 그들 입장에서는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북한이 한국에 미사일을 쏘지 않는다면 가령 미국의 전투기가 북한의 특정지역을 폭격하는 것에 대해 4천 5백만 한국민이 예외없이 반대해야 할 근거는 없어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김일성주의자는 그 의도와 무관하게 조갑제 등의 전쟁불사론자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 된다.

요컨대, 김일성주의자가 유포하는 바의 지고지순한 이미지는 북한정권조차도 그리 바라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예를 보면 또다시 김일성주의자는 북한 수뇌부와 핫라인을 개설할 유혹을 느끼겠지만 더 쉬운 길을 제안하려 한다.

진정으로 한반도에 전쟁이 없고 평화가 깃들며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을 원한다면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북핵 문제가 계속 해결되지 않는 것에는 미국이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상식이고,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다시 나와야 하는 것도 상식이다. 전쟁이 시작되면 북한이 남한에 미사일을 쏠 것이라는 것도 상식이고, 그렇게 되면 한반도가 잿더미가 된다는 것도 상식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예를 생각해보자.

북한 정권은 향후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주고받는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주둔을 인정할 수 있다. 북한 내의 김일성주의자들에게 그러한 타협이 협상의 성공을 위한 양보로서 결국은 북한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일 수 있다. 한국의 김일성주의자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주한미군주둔을 찬성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행태로 보면 능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향후 중국, 대만 간의 갈등 속에서 미군이 주둔하는 한국이 공격의 목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진보세력에게 주한미군의 철수는 타협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런 부분이 김일성주의자와 진보세력이 뚜렷이 구분되는 지점이다.

김일성주의자여 제발 스스로 사고하라. 그러면 길이 보일 것이다.

김일성주의자는, 김일성이 항일운동 당시 지령을 받는 것이 상식처럼 돼 있던 코민테른의 방침을 교조적으로 따르기보다는 독창적인 노선을 제시했던 것을 엄청난 업적이라며 치켜세우고 있다. 당신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더라도 김일성은 지령을 받기보다는 스스로 사고했다는 것인데, 왜 당신은 김일성이 그토록 비판한 교조주의자가 되어 버렸는가. 김일성주의라는 껍질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고 일신우일신하라. 그리하여 마침내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김일성주의에서 탈출하라. 그래서 제발 수구세력 좋은 일만 시키고, 또 시킬 수밖에 없는 일들을 미연에 방지하기를 충심으로 당부 드린다. / 독자 논설위원
 
* 필자의 홈페이지 안내 http://www.geocities.com/turnover2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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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3/10 [00:47]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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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5/03/10 [11:02] 수정 | 삭제
  • 도대체 대자보가 지향하는게 뭔가? 고작 남남, 남북갈등 전면확대에 군침흘리는게 대자보야? 더러운 얼치기 개혁집단들. 웃긴다 웃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