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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서의 '쿠데타발언'과 박근혜의 '눈물과 웃음'
권위주의 해체 속 시민사회의 성장, 2004년 대한민국의 다양한 초상들
 
이태경   기사입력  2004/04/02 [09:16]
삽화 하나,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여기 초현실주의풍의 그림이 한 점 있다. 그림의 왼편에는 민주공화정을 지키려는 결의로 가득찬 시민들의 자발적 촛불집회가, 오른편에는 예비역 장성들을 상대로 군사쿠데타를 암시하는 강연을 하는 교수가 그럴듯한 구도로 자리하고 있다.

이 그림이 초현실적인 이유는 그림의 한켠에 자발성과 유쾌함이, 그 반대편에는 비장함과 어두움이 사이좋게 머물고 있기 때문이고 근대의 시계와 봉건의 시계가 각기 다른 초침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고 있는 까닭이다.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 어떤 명화도 그 안에 이렇게 이질적이고 대립적인 요소들을 담아 내지는 못했다.

얼마전부터 각종 TV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그 명성(?)을 세간에 알린 김용서 교수가 파문의 중심에 서 있다. 예비역 장성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그는 "참여정부를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수립된 좌익정권"으로 규정하고, "현 시국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국민들이 한시바삐 이 현실이 '혁명상황'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라며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성립된 좌익정권을 타도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복원하는 방법에는 군부 쿠데타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 이해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김교수가 4.15 총선과 촛불집회를 바라보는 시선도 독특(?)하다. 즉 "정상적 선거나 절차적 민주주의를 경유하는 사이에 이미 치밀하게 준비된 인민혁명이 전략적 고지(국가권력)를 재탈환하게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며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4·15 총선거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잘 짜여진 한국적 좌익혁명의 통과 의례적 축제행사가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4.15총선에 대한 그의 평가이며 "참가자들에게 로맨틱하고 신비적인 감성적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반면, 예리하고 냉철한 판단력과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계산능력을 마비시키는 일종의 최면상태를 조성한다"고 최근의 촛불집회를 비판하고 있다.

김교수 강연의 백미(白眉)는 질의 응답시간에 있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교수는 강연 후 질의·응답시간에 한 참석자가 '나라가 망해가야 하는 꼴을 보고 있어야 하나'라고 묻자 "군이 나가는 방법도 있죠"라고 대답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김교수의 강연전문을 보면 김교수의 사상의 거처가 어디인지 또 그의 정치적 지향은 무엇인지를 알려 줄 만한 단서가 널려 있다. 김교수는 강연의 말미에 자신의 생각을 압축해 놓았다.

"따라서 오늘의 결론은, 두말할 것 없이 미국과의 동맹공조를 국가생존전략의 우선순위 제1위로 놓고, 일본의 명치유신과 독일의 비스마르크 모델을 학습할 것을 2위로 놓고, 따라서 강력한 권위주의체제로 근대국가의 패러다임을 다시 한번 단시간에 졸업한다는 목표를 향하여 금욕성과 합리성이라는 자본주의 2대 패러다임으로 무장할 것을 3위로 하며, 새 역사를 창조하는 전투대오를 편성하여 행군의 출발을 선언하는 것으로 맺고자 하는 바이다. 이는 분명히 이승만, 박정희, 한미동맹으로 연결되는 역사의 축이 김대중, 노무현, 김정일로 연결되는 역사의 축과의 최후의 정면 대결을 의미한다. 어차피 통과해야 할 이 결전 앞에 대화와 타협이란 위선과 속임수일 뿐이다. 탄핵정국은 그 결전의 신호탄이다. 그 준비가 부족한 측이 패배하여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새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라는 것이 김교수 강연의 요체이다.

도대체 무엇이 김교수를 이토록 불안케하여 '군부쿠데타'라는 극단적인 방법마저 은연중 발언토록 하였을까? 한국사회의 기득권측은 해방 이후 사회 각 부면을 장악하고 갖은 특권을 누려왔다. 그리고 그 지배질서를 유지시켜 준 기둥은 김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한미동맹과 권위주의 체제라 할 것이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그런 질서가 계속되길 바랬지만 이제 그들의 때는 지나가고 있음이 최근의 대선결과와 참여정부 수립, 시민사회의 성장 등으로 확인되고 있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와 그에 따른 지지율 하락을 탄핵으로 돌파하려던 보수야당의 시도는 오히려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단축시키는 악수(惡手)가 되었고, 많은 정치적 변화를 가져올 4.15총선은 눈앞에 박두했다. 행정부에서 시작된 개혁의 물결은 이번 총선을 계기로 의회를 거쳐 사회 각 부면으로 퍼져나갈 것이며 기존의 질서와 특권은 서서히 해체되어 나갈 것이다.

혹시 김용서 교수의 강연은 임박한 개혁에 대한 두려움과 반감(反感)의 발로는 아니었을지 조심스럽게 질문해 본다.

일찍이 시인 김수영이 말했다. "지식인이란 인류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류의 고민을 자신의 고민으로 여기는 자"라고. 인류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과 가족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계급의 문제만을 자신의 문제로 여기는 한국사회의 많은 지식인들이 미간(眉間)에 새길 경구가 아닌가 싶다.

삽화 둘, 박근혜의 눈물, 웃음 그리고 민생투어

그녀가 울고 있다. 그녀는 아버지가 생각나서 운다고 했다. 아마도 그녀의 아버지는 자상하고 너그러운 부친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녀가 보기에 그녀의 아버지는 국가와 국민만을 위하는 헌신적인 통치자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의 아버지를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한국사회에 그렇게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아버지를 잔인한 독재자로 기억하고 그녀의 아버지가 통치하였던 18년 동안을 야만의 시절로 평가하고 있다. 진심으로 그녀가 한나라당이 새롭게 거듭나고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길 원한다면 아버지의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반성하는 작업을 했어야 할텐데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는 아버지의 유산을 별다른 반성없이 계승하려 한다. 과연 그녀의 눈물 속에 국민을 향한 사랑과 송구함은 얼마나 함유되어 있는 것일까?

그녀의 웃음은 화사하다. 어머니를 닮아서 단아하고 기품있어 보이는 그녀의 인상은 정치인으로서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 그녀가 웃으면 마치 향기로운 꽃들이 피어나는 듯한 착각마저 일으키게 한다. 그러나 3월 12일 국회에서 같은 여성인 김희선 의원이 끌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짓는 그녀의 웃음은 너무나 차갑고 여유있는 것이어서 차라리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녀의 웃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웃음이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비수가 될 수도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당 대표가 된 이후 그녀의 행보는 무척 바쁘다. 특히 시장과 골목을 누비는 이른바 '민생투어'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는 듯 하다. 그런데 그녀는 도대체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무슨 말과 다짐을 하는 것일까? 서민들 사이를 파고드는 그녀의 행보가 단지 이미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녕 한나라당의 근본적 변화의 신호로 해석해도 좋은 것일까?

부디 그녀가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하는 모습을 민생투어가 아니라 정책으로 보여주길 기대한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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