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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월드컵은 없다
[정문순 칼럼] 세월호와 닮은 월드컵, 대한민국 응원이 부끄럽다
 
정문순   기사입력  2014/06/16 [20:28]
축구의 반여성성

나는 축구를 볼 줄 모른다. 작심하고 90분간 텔레비전 화면에 코를 박고 시청도 해보았지만, 공이 왔다 갔다 하는 것 말고는 경기 흐름을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나만 그러나 보다 했더니 한국 못지않게 축구에 미쳐있는 이탈리아의, 여자들도 경기 규칙을 이해하는 사람이 20%라고 한단다. 역시 축구는 여자들을 멀어지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축구라는 경기의 반여성성은 폭력적인 속성에서 상당 부분 기인한다고 본다. 스포츠 중 머리와 발을 쓰도록 되어 있으면서도 보호 장구 없이 경기에 임하게 하는 것은 격투기가 아닌 종목에서 축구가 유일할 것이다. 경기 자체도 격렬하여 선수가 경기 중에 갑자기 쓰러져 사망하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

축구의 폭력성을 부채질하는 것은 세계축구연맹인 피파(FIIFA)이다. 피파는 축구를 갈수록 공격적으로 변모시켰고, 선수들이 쉴 틈 없이 뛰도록 규칙을 계속 바꾸어왔다. 흔히 유럽 축구를 본 사람들은 한국 축구와 비교하며 경기 흐름이 대단히 빠르고 선수들이 경기 내내 질주한다고 하는데, 한국 축구와 유럽 축구의 차이는 축구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공격력이 강회되면 자연히 수비가 거칠어지고 몸싸움도 격해지며 부상이 나올 수밖에 없지만, 다치는 것을 무릅쓰고 경기해야 하는 선수들의 처지는 피파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피파가 이러는 것도 4년마다 열리는 지구촌 최대의 제전으로 미화된 월드컵 경기에 온통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주마가 된 선수들

월드컵의 주인공은 필드에서 뛰는 선수들일까? 물론 아니다. 월드컵의 임자는 피파이고 이들은 선수들을 혹사시키는 대가로 돈을 긁어모은다. 한여름 미국에서 열린 1994년 대회는 섭씨 40도가 넘는 불볕 아래에서 선수들을 뛰게 했다. 바람조차 뜨거워 숨쉬기도 힘겨웠던 선수들은 스스로를 경주말 신세라고 한탄했다. 피파는 유럽의 시청률이 높은 시간대를 감안하여 더위가 조금이라도 꺾이는 시간에 경기를 편성하지 않았지만, 선수들은 종마 신세에서 벗어날 힘이 없었다.

유난히, 월드컵은 더운 나라와 인연이 있다. 축구를 그리 잘 하는 나라도 아닌 멕시코는 개최권을 한 번 따기도 어려운 월드컵을 16년 사이 두 번이나 따냈다. 멕시코 정부가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르기 위해 대대적으로 꾸민 경기장은 해발 2천 미터 고원의 염천이었다. 1986년 대회에서 마라도나가 잉글랜드 선수 6명을 제치고 골을 넣었다는 멕시코시티 아즈테카 스타디움에는 ‘세기의 골’ 탄생을 기리는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멕시코 월드컵의 공식적 기억은 마라도나의 기행과 영광일 뿐, 경기 내내 불볕 아래 얼굴 근육을 모두 동원하며 고통에 일그러졌던 이름 없는 선수들과 심판들은 잊혔다. 

 월드컵은 개최 대륙이나 개최 국가에 유리하도록 또는 당대 정치 상황에 맞추어 공공연히 부정행위나 편파 판정도 저질러져 왔다. 1954년 스위스 대회,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 1982년 스페인 대회, 1986년 멕시코 대회가 특히 그랬다. 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와중에 열린 스위스 월드컵에서 피파는 사회주의 국가에게 우승컵이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당시 결승전에 오른 헝가리는 무패의 기록을 쌓고 있던 무적의 팀이었으며, 1라운드에서 경기 하루 전에 간신히 도착한 한국 대표팀이 9:0으로 패배한 바 있다. 헝가리의 결승전 상대는 구 서독이었는데 우승컵은 아무도 점치지 않았던 나라의 차지가 되었다. 지금은 대부분 세상을 떠난 헝가리 선수들에게 이 대회는 생전에 죽을 때까지 잊을 못할 한으로 남았다. 그들은 서독 선수들이 헝가리 선수가 골을 넣을 때 대놓고 반칙했다며 울분을 토했지만, 당시만 해도 경기 생중계가 되지 않던 시절이라 문제의 장면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1978년 대회 때 피파는 개최국이자 우승할 역량이 안되는 아르헨티나를 위해 수를 썼다. 브라질과 프랑스는 각각 자신의 대륙을 대표하는 강호였지만 피파는 아르헨티나 편이었다.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경기에서 프랑스를 울린 벌칙차기 판정은 불공정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출전국이 16개 나라이던 당시는 지금과 달리 1라운드 경기 결과 상위 8개 국가가 두 개 조로 나뉜 2라운드에 진출하여 조별 1위끼리 결승을 치렀다. 아르헨티나가 같은 조 소속인 브라질을 제치려면 페루와의 경기에서 4점 이상의 점수 차이가 필요했는데, 이 경기에서 아르헨티나의 공은 신들린 듯 골문을 넘어갔다.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이 아르헨티나 출생의 페루 골키퍼를 매수했다느니, 페루 팀을 협박했다느니 하는 소문이 파다했는데도 피파는 그냥 넘어갔다. 

 스페인에서 열린 1982년 대회는, 이번에는 피파가 유럽에 유리하도록 남미 국가에 불리한 판정을 했다. 이 대회에서 브라질의 선수 구성은 공격력에서 역대 최강 중 하나로 손꼽힌다. 2002년 대회에서도 봤듯이 이탈리아 선수들은 반칙이 몸에 배어 있었다. 실력이 안되면 힘으로라도 막아보겠다며 이탈리아 수비수들은 거친 파울을 일삼았지만 심판은 호각을 불지 않았다. 브라질 선수 지쿠는 하도 잡아당겨 구멍이 뻥 뚫린 셔츠를 심판에게 보여주며 이래도 반칙이 아니냐고 하소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1986년 대회가 중남미가 아닌 유럽에서 열렸다면 주심이 마라도나의 ‘신의 손’ 반칙을 목격하지 못한 바보 같은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마라도나의 손 기술이 묵인된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숙적 잉글랜드를 이겼다. 그 마라도나도 직전 대회가 열린 1982년 스페인에서는 유럽 선수들의 집중 견제와 반칙으로 악동 오명만 뒤집어쓰고 퇴출당했다. 사실 ‘4강 신화’의 한국도 개최국이나 개최 대륙 편들기에서 남 말 할 처지는 못 될 것이다.

월드컵과 세월호는 닮은꼴

영원한 제국은 없다. 사람들은 월드컵의 위상이 언제까지나 하늘을 찌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1982년 대회를 끝으로 수익이 점차 하락하는 추세라고 한다. 지금 월드컵에 버금가는 위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유로 대회이다. 유럽인들은 축구 변방의 대륙에도 할당하는 월드컵보다는 실력이 고른 유로 대회에 더한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수준 낮은 유색 인종들과 같이 못 놀겠다는 노골적인 인종차별 정서일 수도 있다. 민족주의의 상처가 남아있는데다 경제 통합을 이룬 유럽에게 민족주의를 표나게 내세운 월드컵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유럽을 끔찍이 챙기는 피파가 월드컵을 등한시하는 날이 오면, 한국인의 축구 열정도 식게 될까.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월드컵을 지배하는 손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다. 돈의 색깔은 검든 희든 중요하지 않다. 돈 때문에 온갖 부정과 비리는 얼마든지 용인되었다. 세월호를 침몰시킨 놈들이나 축구공을 주무르는 자들이나 돈에 환장한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 돈 앞에 아이들과 선수들은 파리 목숨 취급을 당했다. 세월호 아이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닥쳐올 기말고사를 걱정하는 부모들의 성화를 뒤를 하고 한국 경기가 열리는 날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잊지 말자고 하면서 월드컵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는 건 무섭다. 온 나라가 대한민국! 짝짝짝 하던 시절, 2002년의 대한민국은 부끄럽지 않기라도 했다. 정권 교체가 되었고 민주주의가 발전하던 과정이었으니 어디 가서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하고 다녀도 낯 뜨겁지는 않았다. 최소한 2014년의 대한민국처럼 뻔뻔스럽고 염치없지는 않았다.

눈앞에서 아이들이 스러져가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전부였던 나라에 애국심을 바치는 국민만큼 자존심 상하고 수치스러운 일은 없다. 2014년의 대한민국이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보살펴줄 것 같은 나라가 아니라면 내게는 애국심을 바칠 나라가 없다. 2014년의 대한민국도 월드컵도 아웃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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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6/16 [20:2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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