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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기념하는 호전성
[김영호 칼럼] 전쟁기념관은 호전적 성격, 전사박물관으로 이름 바꿔야
 
김영호   기사입력  2010/07/07 [16:03]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긴장국면으로 치닫는 가운데 천안함 사태가 터졌다. 여기에 맞물려 한국전쟁 60돌을 맞았다. 60이란 십진법에 의한 주기의 뜻도 있지만 환갑이란 점에서 의미가 더 커진다. 언론도 60이란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여 한국전쟁을 재조명하는 특집과 드라마를 어느 때보다 많이 다뤘다. 이명박 대통령이 6월 24일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북한에 분명히 책임을 묻겠다는 대국민담화문을 청와대도 현충원도 아닌 전쟁기념관에서 발표했다. 이런 이유로 전쟁기념관이 개관 이후 가장 많이 회자된 듯하다.

평소 전쟁기념관이란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전쟁기념관이자주 거론되자 그 표현이 옳지 않다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 전쟁의 참혹상을 생각한다며 어찌 기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어린이를 데리고 갔는데 전쟁과 기념이란 단어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더라는 의견부터 적극적으로 개명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전쟁박물관, 전쟁역사관, 전사박물관, 전쟁기록관 등등이 말이다. 보수계열의 바른사회시민회의라는 단체는 호국기념관으로 개명한자는 운동을 편다고 한다.

전쟁기념관은 영어적 표현이다. 영어로 'war memorial'을 사전적 의미에 따라 그대로 직역한데서 발생하는 문제일 것이다. memorial은 기억, 회상, 추억, 추도, 추념, 기록의 뜻을 지닌 memory에서 파생한 단어이다. 이 단어는 어떤 인물, 사건을 기억하거나 추도하는 기념물 또는 공휴일을 뜻하기도 한다. 현충일을 Memorial Day라고 하는 것도 그 까닭이다. 우리말의 기념은 지난 일을 상기하여 기억을 새롭게 하나 긍정적, 축하적 의미를 지녔다. 두 언어의 의미적 차이를 무시하고 전쟁기념관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거부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전쟁기념관은 원래 전쟁이나 승전을 축하하는 건축물, 기념물, 조각상, 조형물을 뜻한다. 20세기 들어서 서방 국가에서는 점차 전쟁을 찬양하기보다는 전사자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마을, 소도시 단위로 그 지역 출신 전사자명비를 세워 추모하는 곳이 많이 생겼다. 세월이 흘러 2차 대전과 베트남전 전사자도 함께 추모한다. 1차 대전 후 프랑스에서는 전사자를 추모하기보다는 그들의 미망인과 자식의 고통을 상기하며 전쟁을 규탄하는 평화주의자 전쟁기념관을 세운 마을들도 있다. 물론 대형 기념물, 조형물을 세우고 무명용사를 추모하며 현충일 행사공간으로 쓰이는 곳도 적지 않다. 

전쟁을 기념하는 역사는 길다. 고대 로마의 승전을 기념하는 개선문이 대표적일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폴란드의 유태인 수용소 아우슈비츠와 일본의 원자탄 피폭지 히로시마 평화공원은 참혹한 현장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말한다. 반면에 일본의 정치인들이 종종 방문하여 한국, 중국과 외교적 마찰을 빚는 야스쿠니 신사에는 2차 대전 전범들이 묻혀 있다. 정치적 의도는 없었지만 헬무트 콜 전 독일 수상이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나치 친위대가 묻힌 비트버그 전몰자 묘지를 방문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전쟁기념관은 1988년 6월 노태우 정부가 수립한 한국전쟁 기념사업 추진계획에 따라 1994년 6월 10일 개관됐다. 장소는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의 군영이었고 해방 이후 육군본부로 쓰였던 용산에 있다. 당초 계획은 반공안보관 확립, 민족통일관 재확립을 강조했으나 이듬해 4월 자문회의에서 기념대상이 확대됐다. 고대부터 한국전쟁과 그 이후까지 기념대상을 넓힌 것이다. 이 나라 역사상 승전을 기념할 만한 전쟁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전쟁은 동족상잔의 전쟁이었는데 무엇을 기념한다는지 모를 일이다.  

전쟁기념관은 선사시대부터 한국의 전반적인 전쟁자료를 갖추고 있다. 유물, 복제품, 무기류, 기록화, 영상물 등등 9,000여점에 달한다. 옥내전시장만도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 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방산장비실, 대형장비실로 나눠진다. 옥외전시관에는 2차 대전, 한국전, 월남전에서 쓰인 대형무기만도 1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 양측에는 한국전, 월남전에서 희생된 국군전사자명비, 유엔군전사자명비가 있다. 이런 규모와 성격이라면 전쟁기념관이란 표현은 옳지 않다. 전사박물관이 적합하다. 전쟁기념관은 호전적으로 비치니 이름을 바꾸어야 마땅하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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