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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이효리’ 전여옥을 누가 키우나?
냉전수구세력의 얼굴마담, 전여옥은 아예 상대를 말아야
 
황진태   기사입력  2003/10/17 [15:49]

인터넷 담론을 점령한 전여옥의 인기

▲다음 포탈의 인기검색어 11위에 전여옥이란 이름이 올라와있다     ©다음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로 ‘전여옥’이 뜰 정도니 가히 그녀의 인기 아닌 인기가 화제를 일으키고 있는 게 사실인 거 같다. 기자가 지난 글에서 박종호 교수를 비판하며 그의 글 행태를 ‘전여옥 따라하기’라고 불렀지만 사실 박종보 교수는 전여옥에 비하면 새발에 피다.

기자는 6월 경에 조선닷컴에 실린 전여옥의 ‘노무현은 대통령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칼럼에 대해서 진보개혁성향의 논객들이 그녀를 비판하는 일련의 글들을 올린 것을 보고서는 당시에는 그러한 비판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얼마 전 조선닷컴에 실린 전여옥의 또 다른 칼럼, ‘기쁨 못 준 대통령 물러나길’을 읽으면서 이거 아무래도 지난 대선 국민통합21의 정몽준 구원수로 100분 토론에까지 나오며 활약한 그녀의 정치한 행동이 잠시의 일탈이 아닐 거란 강한 확신이 들어섰다. 전여옥의 칼럼은 다분히 언론 플레이다.

요즘 동국대 황태연 교수만 하더라도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며 내년 총선에서 황교수가 전국구를 노린다는 소문이 돌고, 민주당 의원들의 입맛에 맞는 말을 몇 번 지껄인 것만 가지고도 폴리페서(정치교수)로 찍혀 진보개혁성향의 네티즌들에게 욕먹고있지만 이러한 황태연의 행태도 전여옥의 ‘돌쇠’스러움에 비하면 퍽이나 모자라다.

본 기자는 정치논객 변희재가 쓴 ‘돌쇠 전여옥은 총선에 출마하라’는 칼럼에서 “우스운 것은 그가 그의 약력에 '방송인'이라는 직함을 붙인다는 것이다. 방송을 혐오하면서 방송을 이용하고, 정치를 혐오하면서 정치칼럼 쓰기를 즐기는, 바로 20년 전에 유행했던 한국의 구 지식인들의 출세공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는 글이 금뱃지를 달을 전여옥의 데자뷔로 비쳐졌다. 데자뷔. 즉, 내년 총선에서 국회의원 전여옥의 모습이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금뱃지를 향해 추파를 던지는 전여옥의 글빨

▲전여옥씨가 조선일보에 쓴 칼럼 "기쁨 못준 대통령 물러나길"     ©조선닷컴
그녀의 글쓰기는 독자들의 묵은 체증 해소용으로 각광 받아왔다. 필자도 당파고 뭐고 간에 ‘될대로 되라’식으로 그녀의 칼럼을 읽는다면 청량감을 느낀다. 하물며 건강이 허하신 대한민국 보수 층의 독자들은 고작 ‘사이다 한 병’의 청량감 정도겠는가. 아마도 ‘비아그라’를 복용하고 10년은 회춘하신 듯한 기분이 드실 테다. 이러한 독자들의 반응을 몰고 오는 전여옥의 장점은 ‘여론을 잘 읽어낸다’는 거. 그렇다면 칼럼니스트에게서 여론을 잘 읽는 재주가 과연 필요할까? 사실 칼럼니스트라면 냉정한 이성으로써 사회 현안들을 판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본분이다. ‘여론을 잘 읽어낸다’는 것은 칼럼니스트보다는 정치인들에게 더 적합하고 필요한 자질이다. 변희재는 이러한 전여옥의 글에 대해 “사실상, 정치인들의 선동글, 혹은 군인들의 군가, 스포츠의 응원가나 다름없다.”고 밝히고 있다.

‘수구냉전세력의 이효리’ 전여옥. 뭣하러 키워주나?

잠정적으로 내년 총선에서 대체적으로 개혁VS반개혁 진영으로 나뉘어 서프라이즈든 시대소리든 남프라이즈든 다시 지난 대선처럼 하나의 개혁진영으로서 똘똘 뭉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똘똘 뭉쳐서 뭐하겠는가 하면 조선일보-한나라당 연대를 격파하는 전투를 치를 것인데. 여기에 더불어 기자의 점이 맞아 떨어져 전여옥이 정말 총선에 나가게 된다면 우리는 그녀에 대한 비판작업도 해야 할 것이다. 근데 이러한 (자의든 타의든) 키워주고서 다시 공격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사이트의 명분으로나 비효율적이다. 왜 진보개혁매니지먼트사에서 굳이 ‘수구냉전세력의 이효리’ 전여옥을 키워줘야 하는 가 말이다. 그때 가서야 “이제 와서 키워주니까 소속사를 바꿔!”하며 상실감 갖지 말고 지금이라도 그녀의 칼럼에 대해서 진보개혁진영에서만큼은 대꾸를 안하는 게 나을 거 같다.

한때 대통령 후보 토론회까지 공중파 TV로 방영될 만큼 떴던 한국논단의 암울한 현재를 보자. 한국논단에 실린 극우성향의 글들은 한국논단이 대중에게 미치는 힘이 모잘 거 없어지자 논객들에게 한국논단은 이제 비판의 가치조차 없지 않은가? 조선일보가 안티조선하는 인물과 사상, 아웃사이더, 대자보가 혹시나 뜰까봐, 기사화 안하듯이 우리도 키워 봤자 떡고물 하나 안 들어오는 전여옥을 굳이 그녀의 네임벨류만 상승시키고, 스타덤에 오르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강준만의 기대를 저버린 전여옥

지난 2001년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저널룩 인물과 사상 18권에서 전여옥을 다뤘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강준만은 전여옥이 이렇게까지 난리 부르스를 출 거란 예상을 못했던 거 같다.   

“호전성을 가질 땐 가져야 마땅하다. 나는 ‘한국마초의 대부’라 할 이문열에 대해 고운말 쓰는 여자들 아주 싫어한다. 나는 앞서 전여옥의 호전성에 ‘필요 이상’이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 그건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에나 갖는 생각일 뿐이다. 그렇다. 중요한 건 방향이다. 나는 전여옥이 다른 여성의 호전성 진작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호전성 발휘의 방향이 옳은 것인지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좀더 조심해주시면 고맙겠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강준만은 전여옥의 “무거운 책임감”을 꽤 믿고 있었던 거 같지만 2년이 흐르고 대선이 지난 지금. 그녀는 그녀의 호전성 발휘를 한갓 여론의 가벼운 비위에 맞추려는 정치인의 자질로서 여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차라리 ‘진보개혁의 이효리’를 키우자.

또한 강준만은 인물과 사상 18권의 표지에 다른 세 명의 남자 얼굴과 함께 전여옥의 얼굴을 삽입했었는데 책표지에서 그녀의 얼굴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여 정작 책 속에서 전여옥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5장 분량이었다. 아무래도 강준만은 전여옥을 키워줄 생각까지는 없었겠지만 정치와 사회에서 너무나 귀하디 귀한 여성참여의 현실 하에서 그래도 전여옥이 여성 목소리의 한 대안으로 생각하고 전여옥을 너무 둥글게 둥글게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전여옥은 “’언론과의 전쟁’을 부르는 ‘돌쇠’ 같은 엽기성 가수도 주가를 높인다”고 말씀하셨다. 주가를 높이는 게 잘못됐나? 주가를 높일 수 있는 자유는 전여옥에게만 있나? 그렇진 않으리라 믿는다. 우리 모두같이 주가를 높이자.”

서로를 띄워준다는 거. 이것도 상호간에 똘레랑스(관용)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상대방을 무시하는 앵똘레랑스, 조선일보가 매니저이고 거기에 놀아나는 혹은 이용하는 전여옥에게서 무슨 상생을 논할 수 있겠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 전여옥의 행태로 볼 때 이렇게 진보개혁진영에서 그녀에 대해서 자꾸 떠들고 회자되는 것은(모순되게도 필자의 이 글도 그 ‘떠듬’에 포함된다.) 전혀 영양가가 없는 행위이다. 잘해야 본전. 동반급락만 면하더라도 다행이다. 차라리 진정한 극우 이데올로그인 조갑제의 ‘순수한’(?) 선동이 그립다. 전여옥이 차지하는 진보개혁 인터넷 신문과 정치웹진의 서버 용량이 아까울 따름이다. 차라리 고은광순을 키우든가 추미애 의원보고 민주당 탈당을 압박하는 칼럼을 쓰고 앞으로 전여옥에 대해서만큼은 뭐라고 지껄이든간에 아주 生무시하자. /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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