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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개방과 결속', '주체성 강화'돼야
신영복교수 서울대강연, 21세기는 패권보다는 공존으로
 
홍성관   기사입력  2003/10/15 [09:50]

신영복 교수(성공회대, 경제학)는 어제 서울대에서 존재론에 기인하는 패권주의의 만연을 비판하면서 관계론 재조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신영복 교수    ©대자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더불어 숲」등의 저자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신 교수는 서울대에 개설된 '세계경제와 한국경제(교수 김세원)'의 초청강사로 나서면서, 현대 사회에서 도외시되고 있는 '관계'에 대한 이해를 자신이 겪었던 수감생활과 연결 지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88년 8.15 특사로 가석방되기까지 무려 20여 년의 수감생활을 했던 신 교수는 당시 옥사에서 익혔던 서도의 '관계론'으로 강연의 운을 뗐다.

신 교수는 "글씨를 쓸 때 첫 획이 마음에 안 든다고 지우고 다시 쓸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다음 획으로 첫 획의 부족함을 메워주는 것이 서도"라면서, 한 획, 한 획이 전체의 조화, 균형 속에 녹아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 한 행의 결함은 다른 행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이며, 서도의 경지는 냉랭한 글자들이 나열된 배타적 집합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어 오늘날 사회적 과제가 '관계의 황폐화'라고 지적하면서, 자신에 대한 반성의 선행을 바탕으로 한 타인에 대한 온당한 이해과정 속에 관계가 맺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근대사가 자본의 자기증식원리를 근원으로 삼는 존재론으로 구성된 역사라면서, 이로 인해 안으로는 거대한 자본축적을 이뤄지고 밖으로는 잔혹한 패권주의 역사가 전개됐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수감생활 중 한번은 '鄭大義(정대의)'라는 신입이 들어왔는데, 이름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물어보진 못하고 1년 정도 지난 뒤에 물어보니, 자신이 고아였는데 광주 대의동 파출소 앞에 버려져 이름을 대의로 지었다고 말하더라"라면서, 대상을 문자를 통해서만 이해하려는 창백한 관념을 비판했다. 그리고 목수가 그림 그릴 때 여느 사람처럼 지붕부터 그리는 것이 아니라 주춧돌부터 그린다는 예를 들면서 지식인의 한계를 지적했다. 또 '어디에 서서 누가 바라보는가'가 중요하다며, 많은 사람들이 서울역에 서서 남대문을 바라보고는 '왜 북쪽에 있는가'라고 질문하는 식의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저/ 돌베개     ©yes24
또 근대사회의 기계, 분석적 사고를 반성해야 한다면서, 모든 정보가 대상자체로부터 나온다는 관념을 버리고 대상과 주체간의 관계를 이해하려고 애쓸 것을 당부했는데,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별 볼일 없는 70대 노인이 있었는데 신입이 들어오면 꼭 자기 옆에 불러 앉혀놓고 만주시절에서부터 시작해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시간이 지나면 노인이 별 볼일 없다는 것을 알게되니까 그전에 얼른 긴장하고 있을 신입을 불러다 얘기하는 것인데, 얘기를 할 때마다 부끄러웠던 과거는 줄이고 좋았던 것들은 부풀리는 식으로 각색을 하더라. 그러다가 명절이 다가오던 어느 날 그 노인이 비가 내리는 철창 밖을 바라보고 서 있는 뒷모습을 보았는데, 그렇게 수척해 뵈고, 쓸쓸하게 보일 수가 없더라. 그 때 노인이 자기 인생에 대해 회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각색이 진실이고 그보다 못했던 노인의 삶이 사실이라면, 그 노인을 각색의 주인공으로 봐야하나 사실의 주인공으로 봐야하나. 아무래도 반성, 소망이 담긴 각색의 주인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온당하지 않겠느냐."

또 출소 후 옛친구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젊은 시절 자신의 사람 보는 관점이 틀렸었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말 잘하고 설득력 있고 조직력이 있어 높이 평가받던 사람들이 이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데 반해, 당시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사람들은 아직도 운동판에 남아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사람들은 사명감보다는 인간관계로 참여했던 사람들이라면서 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근대사회에 대해 신 교수는 얼굴 없는 생산과 소비가 세계를 배타적인 집합으로 보게 하는 존재론을 키웠다면서, 근대사가 풍요의 역사인 것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아직 빈곤, 질병, 무지, 오염, 부패 등의 기본적인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했다면서 자본주의의 축적과정이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요구했다.

그리고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행복이 필요하다'는 도덕감정론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이 빠진 국부론이 근대 비극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에 대해서도 "세계경제의 큰 톱니바퀴 속에 물려있는 작은 톱니바퀴로 항시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구조"라고 평하면서, 한국 사회의 정치군사적 종속구조, 세계경제질서의 중하위에 편입된 비자립적 경제구조, 그리고 최소한의 자부심마저 허용되지 않는 식민    주의적 의식과 구조화된 콤플렉스를 직시할 것을 주장했다.
   
신 교수는 21세기의 과제로 和而不同(화이부동)을 들면서 흡수를 뜻하는 同(동)이 존재론, 패권론을 의미한다고 할 때, 우리는 공존을 뜻하는 和(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한반도에 내려오는 두 가지의 축을 <개방과 결속>, <주체성 강화>로 설명하면서, 현재 분단구조도 이 모습을 띠고 있는데 둘의 적절한 배합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를 위한 방향도 흡수가 아닌 공존으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 교수의 이날 강연은 재신임 발언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현 정국에도 귀감이 될 만하다. 흔들리며 쓰여진 획들이 계속되면서 지친 대통령의 '재신임' 선택은 그야말로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행동'이다. 또 그것이 얼마나 지리한 정쟁을 낳으며, 산적해 있는 국가 현안들은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소모전만 펼치게 될지를 예측하지 못한 실책이다. 어떠한 의도였든지 간에 지금의 국가상태를 미루어 볼 때 신중치 못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혹 그것이 신 교수가 "판단력에 결정적 영향력 주는 것은 정보나 원리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콤플렉스다"라고 말한 것처럼, 노 대통령이나 현 정권이 갖고 있는 콤플렉스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든다.

물은 엎어졌고, 다시 주워담을 수도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잘못 그어진 획을 다음 획을  보완하고 메우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다. 어쩌면 그것이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신 교 수가 그 콤플렉스를 그것을 깨뜨리는 방법은 반대논리가 아닌 정체성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  이라고 지적했듯이, 부디 노 대통령도 서둘러 해결하려는 성급함을 버리고 현 정권의 정체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을 갖고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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