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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감싼 '검은 그림자', 현병철 본색 표출
현병철 '입장 번복' 논란, 사면초가…사무총장 사퇴는 보수인사 내정 수순?
 
이석주   기사입력  2009/08/12 [16:58]
"국가보안법은 인권침해법이다. 폐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7월31일 인권시민단체 질의에 대한 답변)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선 안 된다는 것이 내 소신이다" (8월11일 <조선일보> 인터뷰)


자신 스스로 '인권 문외한'임을 시인하며 지난달 20일 국가인권위원회 수장으로 취임한 현병철 인권위원장. '자격 미달' 논란 속에 인권시민단체의 끊임없는 반발을 불러온 현 위원장이 취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사면초가'에 빠진 양상이다.

'이명박 정권의 하수인'이란 비아냥을 듣고 있는 현 위원장이 최근 국가보안법과 촛불집회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현안을 놓고, 상황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달리하면서 거센 사퇴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 위원장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한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안경환 전 위원장과 2년 반 동안 '국가 인권'을 점검했던 인권변호사 출신 김칠준 사무총장이 최근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11일 확인되면서, 인권단체의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꼭두각시 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운 뒤, 인권위 핵심 보직인 사무총장 자리에 보수인사를 안착시키려 한다'는 기존의 의혹이 현실화 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현병철, 10여 일 만에 입장 정반대로 뒤집어…뉴라이트도 사퇴 촉구

앞서 현병철 위원장은 지난 11일 <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인권위가 '폐지' 입장을 유지해온 국가보안법과 관련, "폐지해선 안 된다는 것이 내 소신"이라고 잘라 말했다.
 
▲ 현병철 위원장은 11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입장을 밝혔다.     © 조선닷컴

이와 함께 "나의 개인적인 의견에 따라 인권위 전체 입장을 한순간에 뒤집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앞으로 인권위 안팎에 내 소신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설득해 옳다고 판단하는 쪽으로 공식 의견이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현 위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달 열린 이른바 '도둑 취임식' 이후 인권시민단체의 질의에 대한 답변과 정 반대의 내용을 보여 '자질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앞서 인권단체연석회의 등으로 구성된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은 현 위원장의 '인권 무지'를 문제삼아 임명 반대를 강력 주장해왔으며, 취임식 이후엔 한국의 인권과 관련한 일련의 문제들에 대해 현 위원장의 입장을 묻는 질의서를 보낸 바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현 위원장은 당시 "2004년 8월 위원회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했듯, 위원회의 기본적인 입장은 인권침해법이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위원회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었다.

'촛불'에 대한 공권력의 정당성과 인권위 축소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서도 현 위원장은 "경찰의 과잉진압 이었다", "인권위 조직 축소는 현 정부의 인권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밝혔으나, <조선>과의 인터뷰에선 입장을 달리했다.

"어떤 충돌 현장에서건 공권력이 정당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까지 문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 구성원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법을 존중해야 한다"

현 위원장의 '질의 답변' 내용은 특히 보수단체와 일부 언론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청와대의 인사실패'로 규정했으며, 뉴라이트 전국연합도 7일 성명에서 "심각한 사상적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며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실제로 보수성향의 재향군인회는 12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현 위원장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국가보안법과 북한 인권에 대한 공개질의서를 현 위원장에게 보냈다.

인권단체 비판 잠재우기 위한 '거짓말'?…"보수진영 눈치 보기 행보"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도 12일 성명을 내고 현 위원장의 '상반된 입장'을 비판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의 임명 이후 자질 논란에 휩싸여온 현 위원장이 보수와 진보단체로 부터 자진 사퇴압력을 받는 '사면초가'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 현병철 위원장은 지난 20일 인권시민단체의 반발 속에 이른바 '도둑 취임식'을 강행했다.     © CBS노컷뉴스

공동행동은 "이번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무자격을 넘어 '무소신'과 '반인권성'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현 위원장은 '무자격자'라는 인권단체들의 강력한 비판에도 꿋꿋이 자리를 탐내더니, 이제는 반인권적 본색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고 맹성토했다.

자신 스스로가 입장을 정면으로 뒤집었다는 것은 인권단체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며, 설사 '국가보안법 폐지'가 자신의 소신이라 할 지라도 이는 국제인권기준을 거스른 것으로, 위원장으로서 자격미달을 드러낸 것과 다름 아니라는 지적이다.

특히 공동행동은 현 위원장의 이런 행보가 최근 <동아>와 뉴라이트 전국연합, 재향군인회 등이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등 강력 반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좌편향'이란 이념 몰이로 국가인권위원회의 폐지 까지 주장하는가 하면, 국가보안법 폐지와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 등을 놓고 진보단체와 각을 세워온 보수진영에 대해 현 위원장이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공동행동은 "현 씨가 답변서에서 밝힌 입장을 번복하고 인권 기준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것은 명백한 '눈치 보기' 행보"라며 "힘있는 자들이 원하는 발언을 선물용으로 뱉는 자가 과연 인권위원장 자리에 머무를 자격이 있는가"라고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인권위 둘러싼 검은 그림자…안경환 '러닝메이트' 사퇴, 보수인사 안착 수순?

한편 김칠준 인권위 사무총장의 예고 없는 사퇴를 놓고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인권위 핵심 보직 중 하나인 사무총장 자리에 보수진영 인사가 임명되는 게 아니냐는 것. 결국 이명박 정부가 인권위를 단순 행정조직으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지적이다.

인권위 관계자에 따르면, 김 사무총장은 최근 현 위원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규정에 따라 후임자가 내정될 때 까지 손심길 기획조정관이 사무총장 직무를 대행할 걸로 알려졌다.
 
▲ 김칠준 사무총장(사진 중앙 상단)이 최근 현병철 위원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한 걸로 알려지면서, 보수진영 인사 내정에 대한 인권시민단체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 CBS노컷뉴스

김 사무총장의 사퇴 이유와 관련, 인권위는 '위원장과 사무총장이 러닝메이트로 움직인다는 관례에 따라 안경환 전 위원장 사퇴에 따른 사의 표명'이라고 밝혔으나, 일각에선 김 사무총장 사퇴를 계기로 인적 물갈이가 뒤따를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두고 인권시민단체는 현 위원장 내정을 전후한 시점에서 부터 지속적으로 '사무총장' 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명박 정부가 현 위원장과의 '러닝메이트' 역할을 수행할 인물로 보수인사를 내정하는 게 아니냐는 것.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이 예상밖의 현병철 한양 사이버대학장을 신임 인권위원장으로 내정한 직후, 일각에선 정부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내세운 뒤 실세 사무총장을 통해 인권위를 통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당시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청와대는 현병철 내정자를 즉각 철회하고 누구라도 반길 수 있는 인권전문가를 발굴하라"고 촉구했으며, 공동행동 역시 보수인사의 인권위 요직 차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한편 공동행동은 이날 성명에서 현 위원장의 <조선> 인터뷰와 김 사무총장의 사퇴를 연결시켜 "반인권적 발언을 쏟아내는 인사가 한시라도 위원장 자리에 머물러선 안된다"며 "현 씨가 해야 할 일은 차기 사무총장 고르기가 아니라 자진 사퇴"라고 못박았다.
<대자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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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8/12 [16:5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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