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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가 서준식 선생의 예수 이야기
"예수를 추체험(追體驗)하라"
 
정연복   기사입력  2009/03/27 [09:05]
아무리 숙련된 역사학자라 해도 사회적 약자들과 철저히 함께한 예수와 '공감대'가 없는 이상 예수의 행동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참된 예수 재구성에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신학 서적이나 목사들의 설교에 의존할 게 아니라 예수를 추체험하는 삶의 실험에 비추어 직접 성서를 대할 때, 우리들 앞에는 희한한 지평이 열리게 될 것이다.
 
순수하게 살고 싶은 욕망에 불타는 순진한 기독교도들은 안타깝게도 예수의 삶과 죽음의 뜻을 엉뚱하게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성서를 직접 읽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배부른 목사들의 설교만 듣고 무심하게 '아 그런가 보다' 해버리기 때문에 기만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음주라든가 흡연, 우상숭배 따위의 자질구레한 도덕 문제를 강조함으로써 인간 사회의 근본적인 악을 은폐하려는, 거대한 자금을 동원하는 현대의 바리새파들에 의해 예수의 죽음의 참된 뜻이 끊임없이 거짓 꾸며지고(mystified) 있는 것이다.
 
"큰 것에도 굴복하지 아니하고, 가장 작은 것에서도 기쁨을 찾아내라."

예수는 바로 이 말을 체현하고 살다가 간 사람이었다. 예수는 미리 신에 의하여 예정된 대로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혔다"고 말하는 표준적인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느낌을 내가 실감하는 깊이까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처럼 예수를 닮고 싶은 갈망도 없고, 닮을 수 있다는 희망도 없고, 닮으려고 노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닮아야 할 대상일 수 없고, 다만 경배와 동경의 대상일 뿐이다.
 
예수를 추체험(追體驗)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도 못하는 그들은 끝내 예수의 삶과 죽음의 뜻을 이해할 수 없기에, 어느 날엔가 또 한 사람의 예수가 이 세상에 나타날 때 그들은 또다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야 말 것이다.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야 예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묘한 아이러니가 아닌가?

종교인들이야 얼토당토않은 신학적 허구를 쌓아올리면서 개소리를 짖든 말든, 우리는 힘을 다하여 예수를 닮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서준식·인권운동가)


* 연세대학교 영문과와 감리교 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으로 있다. 민중신학적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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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3/27 [09:0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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