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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사항, 결혼의 끝자락
생명 창조시대의 자기경영 14
 
이동연   기사입력  2003/09/23 [10:30]

혹자는 미래의 시대를 3'S의 시대라 규정한다.

세 번 대학을 다니고, 세 번 결혼을 하며 세 번 직장을 옮긴 다른 뜻이다. 교육과 결혼과 직장은 한 사회를 지탱하는 세 기둥이다.

교육은 사람의 인성과 지성을 길러 인간다운 모습으로 만드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결혼은 인류를 재 생산하고 양육하며 개인의 안식처 기능을 하고 있으며

직장은 재화를 생산하고 사회에 필요한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고 있다. 
  
▲결혼식 사진     ©인터넷이미지
지금까지는 교육과 결혼과 직장은 한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평가하는 주요한 잣대였다.

더구나 교육과 결혼과 직장은 매우 '단일회적'성격이 강했다.

대학 들어 갈 나이, 결혼 적령기, 취업연령을 놓쳐서는 않 되었었다. 또한 교육과 결혼과 직장에서 한번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기 힘들었다. 즉 '단 일회적 사회'에서는 패자 부활전이 불 가능하며, 무엇보다 외형이 중요하였다.  

어떤 내용의 교육믈 받았느냐? 보다는 어디서 교육 받았느냐로 평생의 좌우되었었다.
어떤 유형의 사람과 결혼했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결혼했느냐로  신분의 상승과 하강이 결정되었었다. 
무엇을 추구하는 회사이냐 보다는 어느 회사에 다니느냐로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랐었다. 
 
이처럼 '단 일회성 사회'에서는  내용보다는 브랜드가 중요하였다. 부채야 많든 적든 외형이 큰 회사가 일류회사였고, 머릿속이 비어 있든 말든 외모와 간판만 좋으면 일등 배우자였다.

그러나 '기회의 연속 사회'인 정보화 사회에서는 끊임없이 재평가를 받으며 합격과 탈락을 반복한다. 

이 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 할 것이다. 패자에게도 또 다시 승자가 될 기회가 수 없이 주어 질 것이며 승자 역시 한번의 승리로 결코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브랜드에 너무 집착할 필요 없다. 정보화 사회라는 함의 속에는 간판 뒤의 질을 간파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대학 교육을 세 번 받아야 한다는 말도 교수나 대학 직원들에게는 듣기 좋은 소리일 수 있으나, 시대의 변화를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다. 
대학 그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으나 지금 처럼 평생 보장되는 교수들에 의해 주도되는 강의실 위주의 교육은 사라진다.  몇 주전에 대학이 사라진다는 글에 몇 분이 매우 의미 있는 답 글을 주셨다.

한 분은 프랑스의 '그랑제꼴(Grandes Ecoles)' 과 같은 소수 정예위주의 엘리트 교육이필요하다고 하였다. 미래의 대학은 지금처럼 온갖 분야을 다 취급하는 백화점식 대학이 아니라 특화된 분야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

다른 한 분은 디지털교육이  조직화된 지식을 교육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정규교육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부분적 진리들을 전체의 안목으로 정리하고 개념화해서 가르쳐야 당연히 교육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정리되지 않은 지식과 정보는 쓰레기와 같다.   

인터넷은 그냥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가 지금의 지역중심의 대학교육을 무력화시키고 교육과 일, 교육과 오락, 교육과 삶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든다. 

이미 교육 철학자인 죤 듀이(J.Dewey)도 '행함으로 배운다(Learnning by doing)'라며 주입식 교육의 한계를 지적하며 현장중심의 경험교육을 주장하였다.
    
결혼을 세 번한다는 말도 한참 빛 바랜 말이다.

이제 결혼 제도 그 자체가 보편적 제도가 아닌 소수의 선택 사항에 불과해 진다.  

체 세포 복제를 통해서 자기의 형상을 지구 위에 남겨 놓겨 놓을 수 있다면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가 인류사회를 지탱하는 필수요소로 남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꼭 자식만 낳으려고 결혼하느냐? 라고 질문에 '반드시 그렇다.' 라고만 대답할 순 없겠으나 '거의 그렇다.'라고는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다.
결혼 적령기라는 용어가  결혼의 목적이 생산에 있음을 웅변해 준다.

결혼제도가 사라지기 전 단계로 먼저 이 결혼 적령기가 없어진다.

그 후에는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예견하였던 아기공장이 생겨 날 수 도 있다.   
  
일전에 C.B.S에서 생명 창조사회에 대해 강의한 후  청취자 중에  여자 한 분이 내게 두 가지 질문을 해 왔다.

처음 질문은 '그런 세상이 쉽사리 오겠느냐. 아마 백년 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였고 두 번째는 '만일 그런 세상이 온다며 얼마나 비 인간적이 겠느냐' 였다.
  
처음의 질문에 대해 다음처럼 대답했다. 인간은 그렇게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참을성이 많은 존재가 아니다. 이미 기술적으로 가능한 인간복제는 우리의 생애 안에 아마도 훨씬 더 빨리 자연스런 현상이 될 것다. 
  
그리고 두번째 질문에 답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생물학적 결합을 통해 인간이 탄생하지 않는 그런 사회가 비 정상으로 받아들수도 있겠으나, 생명 창조가 활발한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연구실에서의 인간 탄생이 매우 상식적이며 윤리적 일 것다.      

오히려 결혼 제도에 집착하는 사람이 비 이성적이고 이상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으로 비쳐 질 것이다.
 
그럼 결혼을 해야 되나요, 말아야 되나요? 라고 재차 물어 왔다.

결혼 여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자신이 선택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만 참고의 말은 해 줄 수 있다.

단지 아이를 낳아야 되기 때문이라면 결혼을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러나 사랑하고 같이 있고 싶다면 단 그 이유 하나만이면 결혼해도 좋다.
  
결혼은 결혼 그 자체가 목적이고 종착점인 시대는 끝나 가고 있다.

이혼과 독신을 부추기는 게 아니다. 그동안 결혼 제도가 신화가 되면서 그 신화에 끌려 다니며 개인의 행복이 너무 많이 유린당한 경우들이 있어 왔다. 

자 이제  결혼은 필수 사항이 아니라 선택사항이다.

결혼이라는 과목이 재미있고 즐겁다면 들어야 하나 일방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풀기 어려운 숙제를 계속 내 준다면 수강할 필요가 없다.
결혼은 대학에 뒤 이어 역사의 박물관으로 숨어 들어가는 또 하나의 제도가 될 것이다.

* 필자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인천 한누리 공동체를 이끌며 생명창조의 시대로 접어든 인류 사회의 정신적 좌표와 인류의 상생을 위한 미래신화를 연구하며 방송 강의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강화도 : 미래신화의 원형] 등의 저서를 집필하는 등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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