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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평가절상 압력, 적극 대응어려워"
이성태 한국은행 부총재 서울대 강연서 견해밝혀
 
홍성관   기사입력  2003/09/23 [03:13]

이성태 한국은행 부총재는 "한국은행이 외환시장에 국제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개입을 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한국은행의 저금리 정책을 실패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보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판단해줄 것을 당부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에 개설된 <세계경제와 한국경제(교수 김세원)>에 "통화정책 운영체계와 향후 정책방향"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선 이 부총재는 한국은행의 주업무인 통화정책의 방향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에 덧붙여 최근의 논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전했다.

물가안정이 최우선 수단이자 목표

▲서울대에서 강연중인 한국은행 이성태 부총재     ©대자보
이성태 부총재는 먼저 "한국은행은 경제성장, 물가, 경제수지 균형 등을 정책상 최종목표로 정하고, 이에 따른 운영수단으로 공개 시장 조작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통상 중앙은행의 통화 관리 방식은 '직접 규제방식'과 '간접 규제방식'으로 나뉘며, 그중 '간접 규제방식'에는 지급준비율 제도나 재할인 정책(대출정책) 그리고 공개 시장 조작이 있다. 이중에서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은은 경제자유화 및 금융자율화의 진전 가운데, 무한대 발권력을 가지는 관리 통화 체제의 이점을 살려 시중통화량을 조절하는 공개시장조작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총재는 또 "우리의 통화정책 운영 체계는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라면서, 이는 70년대 초 닉슨쇼크 이후 세계 경제의 흐름에 큰 변동이 일어나고, 통화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해지면서(M1, M2, M3 등 통화를 정의하는 개념은 여러 가지로 분화되었다.) 90년 전후로는 물가가 안정돼야 중장기적인 경제 발전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뉴질랜드가 물가안정 목표제를 실시하고 영국, 캐나다, 스웨덴이 뒤이었고, 한국도 90년대 중반 물가안정 목표제에 대한 논문들이 소개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행법 조항이 바뀌면서 물가안정 목표제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날 강연의 자료에 따르면 물가안정 목표제는 명시적인 중간목표(통화량, 환율 등) 없이 운용목표(콜금리)의 조정을 통하여 사전에 설정된 물가목표를 직접 달성하고자 하는 통화정책 운영체계이다.

한국은행법을 통해 물가안정목표제의 특징을 살펴보면, 우선 물가안정(price stability)이 통화정책의 최우선 목표임을 명시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 목표 수치를 사전에 공표하도록 하고 있다. 또 중앙은행의 신뢰성 확보를 중시하며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통화정책의 독립성과 투명성 및 책임성을 강화하고 있다.

이 부총재는 물가안정목표제의 구체적 절차로 우선 물가목표를 정해야 한다며, "이는 현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몇 %되도록 통화정책 쓰겠다는 방식으로 구체적인 숫자를 든다"고 설명했다. 이 물가는 아무래도 국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물가 개념이어야 할텐데, 이를 위해 현재 한은에서는 조정(근원) 소비자 물가(underlying or core inflation)를 쓰고 있다고 한다. 즉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날씨, 국제유가 변동 등에 따라 일시적으로 급등락할 가능성이 큰 곡물 이외의 농산물 및 석유류 품목을 제외하여 산출한 물가지수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때 근원 소비자 물가지수는 추상적인 개념인데, 이는 정책수단을 변경해서 최종목표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차가 큰 반면, 실 소비자 물가는 상당히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세적이고 근본적인 물가를 포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2003년 물가목표는 3±1%, 중기목표는 2.5∼3.5% 라고 한다.

자료에 따르면 물가목표가 정해지는 것과 맞물려 콜금리의 목표도 결정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금융기관끼리 남거나 모자라는 자금을 서로 주고받을 때 적용되는 금리인 콜금리는 매달 한번씩 열리는 통화정책 회의에서 그 수준이 결정된다. 금융기관 사이의 거래는 본원통화가 있어야 결제가 가능해지므로 한은의 통제를 받게 되며, 한은은 미리 정한 목표 콜금리에 맞게 콜시장을 조절한다. 이런 한은의 콜금리 조정은 금리경로, 자산경로, 환율경로, 신용경로, 기대경로 등을 통해 금융 및 실물부문에 파급된다.

경제전망 예측의 어려움  

이 부총재는 최근 한국은행의 경제전망이 실제와 상당히 벗어난 사실을 비판하는 언론의 보도와 관련해, "관측기간에 경기순환의 최저점이나 최고점이 끼어 있으면 이렇게 망신을 당한다"면서, "우리는 계량 모델을 추세연장방식(과거지표기준)을 쓰고 있는데, 우리 경제가 외부충격에의 노출이 심해 전환점 포착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실례로 올 경제성장에 대한 전망은 11월 말에 만들었는데, 이를 위해 10월까지 데이터가 준비되어야 했고, 통계를 내는데 서비스업의 경우 한달 반씩 걸리는 등 통계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전환점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부총재는 작년 8,9월에 내수 소비가 증가에서 감소하는 전환점이었음을 금년 1,2월에서야 포착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6개월에서 멀게는 2년 후의 물가 예측에 의해 통화정책을 써야 하지만, 미래의 경제예측에 근거해 현재의 정책을 수립하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뒤따른다"면서,  "통화정책이 워낙 복잡해 실물통계는 한달 뒤에 나오고, 경제지표는 불규칙 요인이 커서 석 달 정도는 동일방향으로 지표가 나와야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에 정책당국자가 확신하기까지 4개월 가량 소요된다"고 밝혔다. 

또 어느 나라 경제학이냐,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도출될 것이고, 이에 대해 어느 이론이 현실에 가까운지를 판단하는 것은 실무자의 몫인데, 운영성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실무자로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외환시장개입 "No", 정책평가는 큰 맥락에서

▲강연중인 한국은행 이성태 부총재     ©대자보
미국 등 서방이 동아시아 국가들을 '환율 조작국'으로 규정한 뒤 나온 평가절상 압력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는 "환율 제도상 최종결정권이 재경부에 있고, 권한만 있지 수단이 없는 재경부가 결국 한국은행을 움직여 개입해야 되는데, 당국의 개입은 어디까지나 시장실패가 명확할 때 시장기능이 작동하도록 하는 제한적인 경우에 국한된다"면서도 확실한 답변은 유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금리 정책으로 인한 부동산 거품의 책임을 묻는 항간의 논란에 대해서는 "부동산과 금리 통화정책의 관계를 부정하지는 않겠으나, 금리를 내리고 재정을 풀었던 것은 당시 나라 경제의 선택의 문제였다"며, "정책의 정당성은 보다 큰 맥락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본 당사자들에게 이말이 얼마나 통할지는 미지수다.

한국은행의 독립

한국은행법 개정의 진행 경과에 대해서는 "중앙은행이 (정치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은 통화정책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하면서, "은행에 대한 검사문제가 관철되지 않았고, 급여예산은 여전히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앞으로 지급결제시스템의 감시에 대한 한은의 역할이 강화되고, 매년 재경부와 교섭해야 했던 물가안정목표치도 중기적으로 전환되는 등의 성과를 남겼다고 언급했다.

이 부총재는 "다만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통화정책의 대상인 금융기관들에게 영향 주는 무기를 이제는 중앙은행만이 가지지 않고, 금감위, 금감원과 같은 별개의 감독기관도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금융기관에게 양 방향에서의 신호를 주어 혼란을 야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풀어 가야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이 부총재는 강연의 자료를 통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물가안정기조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기회복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운영될 것"이라며, "금융 안정화와 금융 선진화를 도모하기 위해 애쓸 것"임을 피력했다.

최근 여러가지로 뭇매를 맞고 있는 한국은행. 선진국의 평가절상 압력과 저금리 정책에 대한 일각의 비판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 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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