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혀간 미네르바 단호한 의지 네티즌 논객 미네르바라는 사람이 잡혀갔다. 진짜 미네르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짜이건 아니건 간에 이건 무서운 일이다. 말을 한 죄로 잡혀갔다. 말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다. 까불지 말라는.
나는 개인적으로 미네르바의 논조와 ‘미네르바 현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미네르바를 걸고 글을 쓸 때도 난 쓰지 않았다. 하지만 잡혀간 사태는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공포다. 말 잘못하면 잡혀가는 세상이라는 것이 실감난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올해엔 ‘어떤 일이 있어도’ 주요 정책기조들을 실행하겠다고 했다. 교과부 장관도 올해는 정책을 실행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비상경제대책회의 같은 것을 하면서 일사불란한 집행체계를 갖춰나가고도 있다.
촛불집회 때 물러난 정권 초기 인사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명박 정부 이데올로그 중 하나인 이주호 씨도 교과부로 진출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눈에 가시 같던 네티즌 논객을 잡아갔다.
어떤 의지가 느껴진다. 단호한 결의랄까? 여론에 밀리지 않고 밀어붙이겠다는 결의 말이다.
하지만 여론은 현 정부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이다. 그래서 언론과 인터넷 공론장 두 방면을 향해 공세를 퍼붓고 있다. 방송을 건드리고 이번엔 인터넷 공론장의 논객을 잡아간 것이다.
이러면 무서워진다. 내 주위에서도 무서워서 글 마음대로 못 쓰겠다는 사람을 몇 번 봤다. 그런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이다.
나중에 잡혀갈까 무서워 PD가 프로그램 만드는 데 몸 사리고, 네티즌이 글 쓰는 데 몸 사리게 되면 한국은 ‘YES맨’ 천지가 된다. 이건 정부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반드시 과열로 이어진다. 정부를 위해서도 자유로운 비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국회의원에게 면책특권을 주는 것은 죄를 지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위축되지 않고 자신감 있게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미네르바라는 사람이 잡혀간 것은 거꾸로 마음껏 비판할 수 있는 자신감을 없애는 조건을 형성하게 된다.
물론 아무렇게나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것이 비판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예컨대, 대통령의 사생활이 이상하다는 말을 진짜인 것처럼 퍼뜨린다면 그런 건 범죄다.
미네르바가 그동안 써온 글들은 정책적 판단영역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 부문은 논쟁의 영역이지 사법적 단죄의 영역이 아니다. 미네르바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여긴다면 정부는 사실을 밝히면 된다.
참여정부 당시 정부가 운영하는 국정브리핑과 주요 언론들은 툭하면 논쟁을 벌였다. 그때 국정브리핑에 단골로 등장했던 주장이 ‘그것은 사실과 다릅니다’였다. ‘사실은 이렇습니다’라는 형식의 정부반론도 많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사실과 다른 보도를 했다면서 누굴 잡아갔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이번에 빌미가 된 ‘달러 매수 금지 공문‘ 건은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이것도 아예 터무니없는 사실날조라고 보기만은 힘들다. 당시 정부가 연말을 맞아 환율시장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었다. 또 금융 관계자들에게 환율 안정을 위한 협조를 구한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이것을 좀 과장되게 표현했다고 해서 정책적 영역의 주장을 한 시민을 잡아가는 것은 공포정치 아닐까?
뉴딜 계획처럼 요즘 정신없이 발표되는 것들을 보면 세계경제위기를 정부가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한 ‘외부발 쇼크’로 이용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이 자꾸 위기상황임을 강조하는 것도 심상치 않다. 게다가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지하벙커에서 열었다. 지하벙커는 전쟁을 연상케 하는 단어다.
전쟁시기에는 국론분열이 용납되지 않는다. 일사불란한 집행만 있을 뿐이다. 내부 비판이 반국가행위로 찍힐 수도 있는 때가 전시다. 왜 국민에게 그런 시기를 연상케 하나. 그리고 네티즌 논객이 잡혀갔다.
국민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것일까? 2009년의 저항 없는 쾌속질주를 위하여, 봄에 다시 타오를 것으로 예측되는 촛불을 사전에 꺼버리기 위하여. 우리에겐 이렇게 단호한 의지가 있으니 알아서 기라는 경고. 미네르바를 잡아간 것은 그런 경고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