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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죄는 '괘씸죄'? 미네르바 Gee
[논단] 일그러진 2MB 정권이 만든 사이버 테러리스트, 그에게 기회줘야
 
공희준   기사입력  2009/01/09 [02:41]
'30살, 무직' 요 두 낱말이 내 가슴에 콱 박혀버렸다. 내가 서른 살의 백수였을 때의 일이 너무나 선연하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검찰에 의해 긴급 체포되었다. 허위사실 유포 혐의였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죄목이 더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동기야 뭐였건 분명 내 쪽에서 실정법에 심각하게 저촉되는 잘못들을 저질렀으므로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통신인들의 도움 덕분에 서초경찰서 유치장으로부터 다행히 하루 만에 풀려날 수 있었다.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거였다. 영장심사를 담당한 판사님의 말씀이 걸작이었다. “죄질은 무거우나 풀어준다.” 대한민국 최대, 최강 신문사가 30세 무직자를 물고 늘어진 모양새가 터무니없다고 보아서일까. 골리앗이 다윗에게 돌팔매질을 한 형국이었으니 엄청 우스웠으리라.

1998년 늦가을에 일어난 사건이었는데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나는 웬만하면 그때 일을 잘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 난리를 치르고서도 정신 못 차리고 오락가락하며 살았던 자격지심 탓이다. 허나 얼굴도 모르는 나를 가족처럼 도와줬던 여러 통신인들을 향한 감사의 마음만큼은 평생 잊지 않고 살려고 한다. 당시는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직전, 즉 PC통신의 마지막 절정기였다. 네티즌이라는 소리가 아직은 익숙하게 들리지 않던 시절이었다. ‘통신인’이라는, 이제는 사어가 된 단어를 참으로 오랜만에 써본다.

난 애초부터 미네르바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아온 터였다. 그가 한국경제에 대해 지나친 비관론을 퍼뜨리고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경제는 심리다. 어렵다고 말하면 말할수록 더 어려워진다. 경제위기의 영향을 가장 처음 받는 사람들은 빈곤층과 서민대중이다.

그럼에도 미네르바가 검찰에 잡혀갔다는 소식을 접하니 양심상 모른 체하기가 힘들다. 내가 과거에 벌어진 유사한 사건에서 주변으로부터 커다란 도움을 받았고, 그러한 도움에 힘입어 호적에 빨간 줄이 쳐질 수도 있었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운 좋게 벗어났기 때문이다. 일반화의 오류를 무릅쓴다면 미네르바가 필명을 날리다가, 불의의 일격을 맞고 쓰러하는 모습이 나의 경우와 매우 닮았기에, 매를 먼저 맞아본 입장에서 뭔가 도움이 될 얘기를 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내가 잡혀간 다음 검찰에서 제일 먼저 캐물은 게 공범의 존재 여부였다. 그건 나를 고소한 측에서도 마찬가지로 궁금해 했다. 검찰과 나를 고소한 측에게는 실망스럽게도 나는 나였고, 당연히 내가 쓴 글 또한 전부 내 거였다. 서른 살 백수의 단독 범행이었다. 나는 미네르바도 비슷할 거라고 믿는다. 아니 비슷해야 한다. 그래야 그에게 닥칠 시련과 부담이 조금이나마 짧고 가벼워진다.

검찰이 밝힌 미네르바의 혐의 내용이 모두 옳다고 치자. 한데 검찰은 미네르바의 죄 중에서 단연 무거운 중죄는 언급하지 않았다. 국가기밀 누설죄. 미네르바는 미국 유수의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경제와 관련된 학위를 취득했거나, 신자유주의와 더불어 상종가를 쳤던 MBA 자격증을 기본으로 장착한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관료들과 학자들과. 경영자들과 펀드 매니저들이 30세 백수만도 못한 형편없는 내공과 박약한 전문성의 소유자임을 만천하에 폭로하고 말았다. 성공한 건설회사 사장 출신임을 시도 때도 없이 자랑하는 현직 대통령부터, 세계 초일류 기업을 지향한다는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 총수들까지, 30세 백수조차 예견한 ‘미국제’ 경제공황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하빠리 공고를 나오고, 듣보잡 전문대를 졸업한 30세 실직자만도 못한 무능력자로 판명된 공무원들과 CEO들은 그들의 체면치레를 위해서라도 미네르바를 오랏줄로 옭아맬 수밖에 없다. 미네르바에게 덤으로 적용될 또 다른 죄명은 다름 아닌 ‘괘씸죄’라 하겠다.

미네르바는 내가 당했던 것과는 차원을 달리할 혹심한 고초를 겪을 전망이다. 사회적 파장도 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뿐더러 결정적으로 정권이 수구기득권 세력에게 넘어간 상황에서 화를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자신의 경력을 심하게 뻥튀기했다. 나는 PC통신 자체가 실명제였으므로 경력을 부풀릴 구석이 없었다. 나는 그냥 나였을 뿐이다. 미네르바는 신상명세를 속였다는 비난으로 말미암아 여론전에서도 상당한 불리함을 감수해야 한다.

철창 안에 갇힌 지금, 미네르바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무엇보다 그는 직업적 사회운동가가 아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나타나기 전에는 무명의 30세 백수일 따름이었다. 정확히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미네르바 스스로도 최악의 사태를 피하고자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였을 걸로 짐작된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 과정이 무척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럽다. 막상 들어가면 의외로 맘이 편안해지긴 하지만.

내가 미네르바의 변호사라면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조언할 게다. 무조건 백기 들라고. 그거 하나도 창피한 거 아니라고. 미네르바가 항복했다고 욕하는 인간들이 실은 더 비겁한 작자들이라고.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는 거야말로 진짜 비겁한 짓이라고. 미네르바에게 용기를 잃지 말고 이명박 정권과 끝가지 투쟁하라는 투의 글을 쓰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싶다. 본디 싸움은 철창 안이 아니라 철창 밖의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내가 날개가 부려져 바닥으로 추락했을 때 진정으로 나에게 도움을 줬던 이들은 나를 싸우라고 채근하지 않았다. 싸우는 건 자신들이 할 테니까 나한테는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궁지에서 탈출할 궁리부터 하라고 일렀다. 정말로 그들은 나를, 보잘것없는 30세 무직의 나를 사랑했나 보다. 그들 중 한 사람의 이름만 간절히 불러본다. 유니텔의 (민)경석이형!

미네르바를 돕겠다는 사람들이 필시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으로 등장할 것이다. 진실로 그를 도우려면 도움의 손길들이 조직화되고 통일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민변 소속 변호사가 미네르바를 위한 모든 물적 지원과 인적 조력을 총괄하고 조율하는 게 효과적이면서도 바람직하다. 자기가 미네르바를 돕는 운동의 대표자가 반드시 돼야만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인물은 십중팔구 사기꾼이다.

나는 미네르바가 왜 경제를 독학으로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확실한 사실은 이놈의 빌어먹을 '스펙' 지상주의 사회에서는 그의 능력은 빛을 발할 기회가 없었다는 데 있다. 스펙과 능력이 반비례하는 일그러진 사회풍토가 유능한 젊은이 한 명을 졸지에 사이버 테러리스트로 만든 셈이다.

이명박 정권은 4년이면 끝난다. 미네르바의 재능은 본인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40년 동안 한국사회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 힘들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계속 실력을 갈고 닦기 바란다. 아울러 자신감도 좀 가져라. 미네르바 정도의 실력이면 굳이 인생사를 날조할 필요가 없다. 길게 보면 현재의 고난이 그에게는 잠재력을 활짝 꽃피울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익명의 인터넷 논객을 잃은 대신에 삼성경제연구소를 통째로 준다고 해도 결코 바꾸지 않을 탁월한 경제전문가 하나를 얻었다. 미네르바 Gee, 곧 후덜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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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1/09 [02:41]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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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희준씨가 2009/01/10 [03:34] 수정 | 삭제
  • 겨누는 칼날이 좀 무디긴 해도 상상력만큼은 진솔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