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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 없는 애국 단체들, 자가당착에 빠져
[정문순 칼럼] 한글학회·광복회, 존재 버린채 수구화…이익 극대화만 추구
 
정문순   기사입력  2008/11/11 [17:06]
<광복회>와 <한글학회>. 연혁이 오래된 이 두 단체는 그 구성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게는 기력 잃고 힘 없는 노인의 이미지로 떠오른다. 항일 운동에 참여한 분들과 그들의 2세들이 주축인 광복회야 말할 것도 없고 한글학회도 구성원들은 대부분 연로하다. 한글학회 인사들은 행사 때 모이는 회원들 중 60대 이하를 찾아볼 수 없다고 한탄한다. 노인이 아닌 회원을 구경하기 힘들다는 것은 그 단체의 활동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예로부터 언어는 권력의 통치 수단으로 중요하게 쓰였다. 한글 창제는 전제 군주 세종의 ‘어린’(어리석은) 백성 ‘어엿비’(불쌍하게) 여긴 마음이 아니라 조선 초기 유교적 통치 체제의 확립과 연관하여 이해되어야 한다. 세종이 어엿비 여긴 건 백성이라기보다 글을 모르는 백성을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한편 해방 후의 역대 권력 중 언어를 통제하는 데 가장 병적으로 집착한 건 박정희 정권이다. 박정희 정권은 난데없이 국어 순화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이면서 만만한 대중문화부터 때려잡기 시작했다. 영어를 쓰는 연예인들의 이름이 한글로 바뀌지 않으면 무대에 설 수 없었던 희극이 그때 일어났다. 

▲     ©한글학회
현실에서 가능할 것 같지 않는 한글전용을 주장하는 한글학회는 이를 쌍수 들고 환영했다. 이름부터 파시즘의 냄새가 물씬한 ‘국어 순화’는 대중을 동원 대상으로 삼을 뿐 권력은 어디까지나 예외인 통치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은 그들 관심 밖이었다. 한글 사랑은 권력자 자신부터 귀찮아서라도 못 지킬 것이었다. 

지금은 국회에 입성한 이계진 의원이 방송인이었던 시절 펴낸 책에는 권력만큼은 예외였던 국어 순화 운동의 실례가 나온다. 당시 외래어를 죄다 토박이말로 바꾸는 바람에 ‘터널’은 ‘땅굴’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가 개통식에 직접 참석한 어떤 ‘땅굴’의 이름은 남산‘터널’이었다. 그래도 방송에서 순우리말을 앞장서서 쓰라는 닦달을 받고 있던 한 우직한 아나운서는 행사를 중계하면서 충실히 배운 대로 따르려고 했으나, 대통령이 ‘땅굴’을 지나간다고 말할 용기는 차마 나지 않았다. 

 언어를 통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한 두 권력자 세종 임금과 박정희가 한글학회 노인들에게 지극한 존경을 받고 있다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 박정희를 제외하고는 한글을 사랑한 대통령이 없었다고 말하는 한글학회는, 몇 년 전 박정희가 한글로 쓴 광화문 현판을 떼려는 움직임이 일자 독재자의 한글 유산을 지키기 위해 극렬히 반대하고 나서기도 했다. 

긴 연혁과 열렬한 한글 사랑과는 어울리지 않게 게다가 전문가들만 회원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엄격한 한글학회가 정작 현실에서 이룩해낸 업적은 별로 없다. 언어에서 한 세대는 30년 가량을 주기로 삼는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시간이면 말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 한글맞춤법을 손 봐야 하는 때라는 이야기다. 물론 10대의 말을 20대가 알아듣지 못하는 지금의 경우 이 주기는 더욱 좁혀지고 있다. 

1960년대 영화에서 배우들이 쓰는 표준어는 지금과 억양이 크게 달라 거의 북한말에 가깝게 느껴진다. <조선어학회>에서 처음 한글맞춤법을 제정한 때가 1933년이었으니, 조선어학회를 계승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한글학회라면 벌써 60년대에 개정안이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개정안이 세상의 빛을 본 건 강산이 몇 번 더 바뀐 1980년에 이르러서였다. 늑장 작업에는 정부와 대중의 관심이 부족한 탓도 크지만 외부 지원만 바랄 뿐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은 한글학회의 게으름과 무능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한글학회는 한동안 좀 바빠졌다. 모국어 사랑을 신념으로 삼는 단체로선 한글도 아닌 영어에 몰입하는 교육이란 도무지 납득할 길이 없다. 매국노라는 이름을 들어야 할 자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영어에 미쳐서 모국어를 제 나라의 언어로 제대로 대접할 줄 모르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는 이들에게는 나라 팔아먹는 행동과 다를 바 없다. 

 한글학회가 무기력을 걷고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출발점은 여러 해 전 영어공용어 논쟁 때부터였다. 영어공용어 논쟁이 복거일 같은 수구 논객이나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한동안 불 붙었을 때 그들은 영어공용어 논자들에게 미쳤다며 격분을 숨기지 않았다. 물론 미치기로 말하면 대놓고 언어 교육에다 ‘몰입’이라는 말을 쓰는 현 정부가 더할 것이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스스로 미쳤다고 자처한 꼴이니 말이다. 

한글학회 인사들이 조선일보가 힘을 실어준 영어 공용어 논자들이나 이명박 정부의 영어교육 정책에 격렬히 반기를 드는 데서 참다운 보수의 면모가 보인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어순화든 영어공용화나 영어몰입 교육이든 대중이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일을 정치권력이 억지로 이끄는 강제적인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는 뿌리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한글 순화 운동으로 상징되는 박정희의 국가 동원 체제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전교조 등 진보적인 단체와 함께 이명박 정부의 영어 교육 정책에 저항하는 건 스스로를 부정하는 자가당착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 최근 광복회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일본군위안부 박물관' 건립 계획에 대한 즉각 철회를 주장하고 나서, 논란을 일으켰다.     © 연합뉴스 동영상 캡쳐
무기력과 노쇠함을 따지면 광복회도 한글학회에 뒤지지 않는다. 항일운동 관련 단체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 이런 면모는 어쩌면 구성원들의 특수한 처지를 감안하고 나서 언급해야 할 것이다. 광복회 회원의 대다수는 생계 걱정이 떠나지 않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광복절 행사 때는 주최측에서 받은 음식물을 남겨서 포장해가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물론 자신들과 선친들이 밑거름을 놓은 독립국가로부터 대우를 받기는커녕 철저히 외면당하여 생계지원 대상자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형편을 생각하면 가혹한 말일 수는 있지만, 그동안 광복회가 노정해온 태도는 독립투사의 강고한 이미지와는 딴판으로 체제에 순응적이고 타협적이었다.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의 조직이라면, 광복의 의미를 왜곡하고 친일 유산을 극복하지 않았던 역대 독재 정권과는 독립투쟁에 버금가게 싸워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독재 정권이 주는 독립유공자 훈장과 표창을 거부한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조상의 항일 경력을 입증하기 위해 평생을 땀 흘린 후손들의 사연을 언론에서 접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지만, 친일파 후예들이 득세하는 나라에서 주는 훈장에 집착하지 않는 독립투사 가족은 만나기 쉽지 않다. 

또 광복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8.15 해방을 굳이 ‘광복’이라는 긍정적 수사로 표현하는 데서도 해방이 가진 이중적인 성격, 일제로부터의 해방임과 동시에 남북 분단의 기점이 된 사실을 굳이 감안하지 않는 태도가 읽힌다. 해방의 밝은 면모만 보는 것은 분단과 북한 정권의 존재를 외면하는 태도일 수 있으며 이는 광복절을 해괴한 ‘건국절’로 둔갑시키려는 현 정권이나 뉴라이트 집단의 태도와도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것이다. 

광복회가 사회주의 계열 항일 운동가들이 공식적인 독립운동사에서 외면당한 것에 관심이 없는 것도 우익인 그들의 처지로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출신 여성들의 고통과 투쟁에 이들이 철저한 무시로 일관해온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식민지 여성의 고통에 이념적 잣대를 들이댈 일은 없다.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자신들처럼 항일 투사와 그 가족이 아니라서 무시하고 싶은 것일까. 외적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한 자국 여성에 대해 남성들이 흔히 가지기 쉬운 감정인 자괴감과 수치심 때문에 할머니들의 존재가 불편하다면 가만히 못 본 척 있으면 될 것이다. 평소의 무기력한 그들답지 않게 최근 피해 여성들을 위한 기념관 건립에 결사반대하고 나서는 딱한 모습은 광복회가 보수가 아닌 수구 세력의 정신 상태임에 있음을 여실히 입증한다. 

그들은 수난과 피해의 역사를 부각하는 건 수치스럽다고 했다. 일본에 사과를 요구한 할머니들의 주장에 대한 조선일보의 반응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말이다. 광복회가 수난과 아픔의 역사엔 눈을 감고 영광의 역사만 강조하는 집단인 줄은 미처 몰랐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일제의 강제 징병, 징용, 항일운동가 학살 등도 드러내면 안되는 일일 것이다. 권력을 잡은 뉴라이트 집단에 비위를 맞추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제의 만행을 증언하는 역사를 감추고 부인함으로써 일제와 그들의 유산을 이은 통치 집단에 정당성을 매기는 데 거들고도 항일 운동 단체를 자처하고 싶다면 광복회는 자신의 정체성부터 검증받아야 할 것이다. 

한글 사랑과 나라 사랑이라는 애국을 표방한 사람들은 보수적 가치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애국이란 간판을 걸어놓고 권력의 부침에 줏대 없이 영합하거나 사적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수구집단의 이해에 보조를 맞추는 것은 보수 집단의 몫이 아니다. 

별 연관도 없는 두 단체를 함께 떠올린 건 이 땅에 제대로 된 보수가 없다는 안타까움이 일기 때문이다. 우리말을 농락하고,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외면하고, 제 자식은 군대에도 보내지 않는 비애국 집단의 구미에 맞추며 스스로 수구화된 것이 나라 사랑을 내세운 두 집단의 위상이다. 이들이 보수의 가치에 충실히 응했다면 운동권의 전유물이었던 권력과 가장 불화한 투사는 자신들의 차지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좌충우돌 싸움꾼이어야 할 집단의 이미지가 무기력하고 딱한 노인으로 전락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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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11/11 [17:0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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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2008/11/14 [11:21] 수정 | 삭제
  • 광복회와 한글학회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 어른 2008/11/13 [11:28] 수정 | 삭제
  • 요즘 배웠다는 젊은이들 가운데, 진보세력이라고 기성세대나 기존세력을 무조건 짓밟는 걸 보면서 한편으로 답답하다. 왜 격렬한 보수세력이 존재할 수 있을까. 바로 얼빠진 진보 세력이 있어서라고 본다. 진보정치세력을 기다리는 사람이고 마음이 통한다고 보면서도 그들이 현실과 상식을 벗어난 주장과 행동을 하는 걸 본다. 그리고 자체 안에서도 갈려서 피터지게 싸우는 것도 본다. 물론 사람의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이기주의와 편협주의, 세상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 잘못을 저지른다고 본다. 무얼 알고 어른을 비판하자. 그리고 내 상각만 옳고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고 남의 헐뜯자. 남을 짓밟으면 자신은 올라갈 줄 아는데 큰 착각이다.
  • 김영조 2008/11/12 [16:18] 수정 | 삭제
  • 정문순 편집위원님의 지적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리고 옳은 지적이구요.
    하지만 지적을 하는데 세종임금을 끌어들인 건 분명히 실수입니다.
    일부 학자가 훈민정음 창제는 백성을 어엿비 여긴 것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다스르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제가 보기엔 그것은 세종을 제대로 보지 못한 잘못이라 여깁니다.
    세종은 다른 임금들보다 백성 사랑이 훨씬 지극했던 분입니다.
    그 분의 행적이 모두 백성 사랑과 연결되었음을 안다면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종을 제대로 연구하지도 않았으면서도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현시대 한국이 세계에 당당할 수 있도록 만드신 그 분을
    그렇게 폄하하는 것은 큰 잘못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세종실록을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 독자 2008/11/12 [09:54] 수정 | 삭제
  • 필자의 의도가 지금의 무기력한 광복회나 한글학회등을 비판하기 위해서라는 것은 알겠지만 그 논거의 한 방편으로 세종을 끌어들인 것은 대단한 실수입니다. 본문중에서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것은 백성을 어엿비 여긴 것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다스르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그같은 해석은 참으로 편협하고 아전인수식 해석입니다.
    대개 통치자는 백성들을 우매한 상태로 두어야 통치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당시 집현전학사인 최만리같은 경우가 극렬하게
    한글창제를 반대하였던 것입니다. 유교적기득권의 기반인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이죠. 그러나 세종은 그런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창제하고 반포합니다. 통치의 효율성은 커녕 이로 말미암아 자신의 통치기반도 상실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요.
    필자가 이처럼 편협한 역사관으로 한글창제를 비하하는 주장은
    필자의 어떤 주장도 전혀 설득력을 갖게하지 못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진보운동의 일종인 페니미즘운동의
    억지 엉터리 편협성을 더 부각시켜
    종내는 대중들로 하여금 그런 운동에 전혀 공감치 못하게하는
    뻑사리라 할 수 있습니다.
  • 나그네 2008/11/11 [21:30] 수정 | 삭제
  • 남들이 하는 일에 비평이나 해 대서 먹고 살자니 비평을 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애국이라는 얘기는 아니겠지요
    그나마 그들이 힘겹게 지키고 있으니 고마울 뿐인데
    그들을 수구니 뭐니 하면서 비방해 대면서 먹고 살아온 당신은
    이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했소이까?
    당신의 자녀들은 영어를 잘 할거요 따라서 한글의 귀중함은 안 가르쳤을 테고!.
    무엇이 애국이고 매국노인지 스스로 판단해 보시구려!
    남을 비평해서 먹고 살기전에 자신을 먼저 비평해 보아야 하는데
    그러한 상식조차 없으니 먹고 살기 위한 비평도 분별 할줄 모르지.
    말이나 글이 없는 민족은 살아도 죽은 것인데 국민의 혼 마져 없애고자 하는
    당신은 매국노 외 무엇과 다르리요



  • 한글지킴이 2008/11/11 [21:29] 수정 | 삭제
  • 두 단체는 나도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실을 잘 모르면서, 또 저 만의 잣대로 제멋대로 재고 함부로 비판하는 하고 있는 걸 보고 나 스스로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다른 문학작품도 이런 식으로 평가하면 어쩌나 걱정스럽습니다.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아본 것은 맞는 말인데 사실과 논리에 어긋나는 게 많기 때문이며 제 멋대로 오락가락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