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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세계 언어학 큰별 최석규 선생 서거
[추모] 유럽에서 한국어 음운론 체계세워, 파리에서 28일 장례식 거행
 
김영조   기사입력  2008/10/24 [17:55]
언어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를 모르는 이가 없다. 또 그의 “언어는 랑그(langue)와 빠롤(parole)이라는 두 가지 기본적 차원을 지닌다.”라는 말을 웬만하면 다 들어보았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 소쉬르의 제자 마르띠네를 이어 한국이 낳은 세계적 언어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최석규 선생이다.
 

그 최석규 선생이 지난 10월 23일 파리에서 세상을 떴다. 최석규 선생은 연세대 철학과와 대학원 영문과를 나왔지만 외솔 최현배 선생께 배우고, 눈뫼 허웅 선생과 늘 깊이 논의하며 언어학을 공부했다.   

         

          ▲ 세계 언어학 큰별 고 최석규 @김정수

선생은 50년대 파리 소르본느대학에 유학하여, 기능구조주의 언어학자 마르띠네 아래에서 언어학 연구를 한 뒤 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다. 선생은 마르띠네 중심의 기능구조주의학회의 일원이면서도 지도 교수인 마르띠네의 이론을 디딤돌로 삼되 이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구조 이론을 캐낸 대단한 학자로 인정받았다.  

선생은 1966년부터 27년 동안 프랑스 국립 과학 연구원(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 연구원을 지냈고, 1977년부터 1986년까지 프랑스 고등 연구원 (École Pratique des Hautes Études IVe Section, Sorbonne) 부교수를 역임했다. 또 1981년에는 한국 정신문화연구원 초빙 연구원, 1987년부터 2년간 연세대 대학원 초빙 교수를 지냈고, 1987년부터 1995까지는 파리 5 (르네 데까르뜨-소르본) 대학 일반 언어학과 박사 학위 논문 지도 위원을 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말의 중화와 닿소리 체계(1967). “허 웅, 국어음운학(1969, Paris, pp. 333-339), “일본 표준말의 변별 단위와 시니피앙의 구조 (Structures des unites distinctives et des signifiants du japonais commun)” (1976. 파리 5 (르네 데까르뜨-소르본) 대학 문학-인문과학 국가 박사 학위 논문. 참고: 프랑스 국립 박사 논문 복사소 (Atelier National de Reproduction des Thèses)가 있다. 

외솔회 명예회장이며, 전 연세대학교 부총장을 지낸 김석득 선생은 “우리나라에 유럽 이론을 되새김질하여 쓸모 있는 것만 받아들이려는 신중성과 새로움의 힘은 그의 독특한 통시음운론의 이론과 견주는 음운론(한국어와 일본어)으로 나타났다.”라고 말한다.  

또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의 음운론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 김진우 교수는 “최석규는 마르띠네의 제자이면서도 그 선생을 뛰어넘어 새로운 이론을 정립한 대단한 학자다.”라고 평가했다.  

선생은 지난 10월 23일, 새벽 3시에 별세했으며. 빈소는 브루쎄 병원(Hopital BROUSSAIS), 장례식은 10월 28일 화요일 오전 10시 45분, 파리, 페르 라 쉐즈(PERE LA CHAISE) 묘지이다. 부인 윤을병(73세) 여사가 계시며. 상주는 최 윤우, 크리스토프이며, 연락처는 33-1-45-42-85-59라 한다. 

우리는 10여 년 전 독일에서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 선생을 잃었다. 그리고 이번엔 파리에서 세계적 언어학자인 최석규 선생을 잃었다. 그때 윤이상 선생을 애석해 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다시 한번 최석규 선생의 죽음에 안타가워 한다. 우리 겨레 모두 최석규 선생의 명복을 빌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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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연세대 부총장 김석득 선생 추도사)
세계적인 언어학자 최석규 선생을 생각함 

오래 동안 소식이 어두웠는데 돌아가셨다는 슬픈 소식으로 돌아온 것은 오늘 (23일)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외쳤습니다. “한국이 나은 세계 언어학계에 한 별이 졌구나!”  

최석규 선생은 연세대 철학과와 대학원 영문과를 나셨고, 모교에서 강의를 하시면서 언어학의 이론을 갈닦았습니다. 님의 언어 이론의 바탕은 이미 철학으로 바탕을 이루고 있음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말 학문으로는 외솔 최현배 선생을 무던히도 따르고, 미국의 구조주의가 들어올 무렵 유럽학파 이론의 되새김 받음의 문제는 눈뫼 허웅 선생과 늘 깊이 논의한 끈끈한 사이였습니다.  

선생은 50년대 유럽 학문에 끌려 파리 소르본느대학에 유학하여, 기능구조주의 언어학자 마르띠네의 아래서 언어학의 연구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나라로 돌아와 잠시 연세대학교에서 언어학을 강의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소르본느로 마르띠네를 찾아 그의 지도 아래 국가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뒤 국립과학연구소(씨엔에르에스)의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고등학술학교(에꼴 프라틱)에서 언어학 특강을 하시고, 잠시 연세대학교 초빙교수로도 와 언어학을 강의하셨습니다.  

마르띠네 중심의 기능구조주의학회의 일원이면서도 지도 교수인 마르띠네의 이론을 디딤돌로 삼되 이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구조 이론을 캐내어 세운 님의 창의의 학구열은 놀랐습니다. 우리나라에 유럽 이론을 되새김질하여 쓸모 있는 것만 받아들이려는 신중성과 새로움의 힘은 그의 독특한 통시음운론의 이론과 견주는 음운론(한국아와 일본어)으로 나타났습니다.  

공부밖에 모르는 이로 착각을 하기 쉬우나 선생은 정겨운 데가 많음을 아는 이는 다 압니다. 글쓴이는 한 2년 남짓하게 선생과 함께 파리에서 지낸 일이 있습니다. 때와 곳의 가림이 없이 늘 깨침을 주시는 님은 댁으로 불러 담소하곤 하고, 밤이 깊어감에도 매이지 않고 찻집에서의 이야기는 끊일 줄 몰랐습니다. 사모님(연세대 음대교수를 지냄)의 독창회에 함께 가서는 어린이처럼 기뻐하시며 손뼉을 크게 치기도 하셨습니다.  

학문과 삶의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이 어제 같은데 이제는 가셨습니다. 님은 가셨어도 나라 안팎으로 뿌린 씨앗은 트고 자라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살아계실 것입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최 석규 선생님, 이제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옵소서.


김 석득 삼가 올림(연세대 명예교수/전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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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8/10/24 [17:5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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