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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붙을 이념논쟁
생명 창조시대의 자기경영13
 
이동연   기사입력  2003/09/15 [10:20]

 20세기의 문화는 '응집의 문화'였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며 동문끼리 뭉쳤고 고향으로 뭉쳤고. 여타의 이유를 대며 자꾸 뭉쳤다.

그 시대는 봉건 문화의 잔재가 짙게 남아 있었고 산업 구조의 특성도 응집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당시 산업형태는 수직적 통합(Vertical Integration)이었다. 한 사업자는 공급자로 부터터 수요자에 이르는 체계를 일관적으로 통합하였다. 

그러나 21세기의 문화는 분산의 문화이다. 분산의 시대는 수평적 통합(Horizontal Integration)의 시대를 잠시 거쳐 바로 가상통합(Virtual Integration)의 시대로 들어 간다 .

수평적 통합은 동종의 사업자나 유사한 업종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협조하며 통합하는 모양을 일컫는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이런 가상통합을  개별 기업들은 마진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앞장서서 시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벌써 개인들 중심으로 부분이기는 하지만 가상 통합을 이루어 내고 있다. 이 가상 통합의 속도는 더 빨라 질 것이다.

디지털의 쌍 방향성은 수평적 통합을 더욱 촉진되었고, 가상 통합성은 다중화자(多衆話者)를 가능하게 해 준다.    

가상 통합은 디지탈 비지니스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으로, 공급자들은 각자 개별적으로 실재하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 공급자들이 마치 하나로 통합되어 있는 것처럼 인터페이스를 통하여 비교와 판단과 구매가 가능함을 말한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이념으로 뭉쳐 대치하던 시대가 지나갔듯이 네트워트가 인종간 나라가 그물을 치면서 응집의 시대도 역사의 뒤안 길로 물러가게 하고 가상통합의 시대를 불러왔다.

필자가 정치적으로 이념의 시대가 끝났다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 약간의 해명이 필요하다. 이는 이념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세계를 제패할 정도의 파워를 지닌 정치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국가와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이념이 중요하지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헤게모니를 쥔 사람이 이미 80:20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수익을 가져가는 20%보다도 더 상위의 소득자가 되어 상대적 부요의 '달디 단 맛'을 만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치적 장(field)에서 사라진 이념은 영원히 세계의 조류에서 사라졌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이전에는 주로 정치적 장에서 논의되고 식자들 중심으로 전파되던 이념이 대중 속으로 들어 가 사회와 일반인들 사이에서 하나의 통념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패거리식의 이념 패권쟁투의 시대는 끝났으나  생활로서의 이념 재 정립의 시기는 만개해 가고 있다.

이는  교통과 통신, 정보의 소통이 열어 준 세계화의 무대를 자본이 개개인의 탐욕이 마음대로 활개치며 얼굴을 들고 떳떳히 춤추는 면죄부를 주었듯이, 역으로 교통과 통신 정보의 소통이 대다수 80%의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포악한 면을 대체할 이념을 모색할 기회를 준다.

자유민주주의가 일부 특권층을 위한 체제로 작동하려면 포퓰리즘에 기반한 중우(衆愚)정치가 가능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금은 기계가 똑똑해지면서 그 기계를 일상에서 다루어야하는 대중들의 인식 수준이 높아져 중우정치가 쉽지 않다.       

지구촌 반대편의 사소한 사건도 기계를 통해 금새 지구촌 전체로 퍼지는 시대에서 작금의 빈부격차는 또 다시 이념 논쟁을 야기시킨다.

▲자본주의가 그토록 혐오했던 마르크스를, 배금주의(拜金主義)가 다시 불러 오고 있다.     ©인터넷이미지
자본주의가 그토록 혐오했던 마르크스를, 배금주의(拜金主義)가 다시 불러 오고 있다.
   
만일 적어도 이념 논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다음의 두가지 기본 조건은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는 아무 것도 물려 받지 못하고 태어난 사람이라도 성실하게 일하면 그 사회의 중산층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두번째로 보통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보통 사람식으로만 살아도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얼마든지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두 가지가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이미 월급으로 부자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물론 사채놀이를 한다거나 개발 정보에 편승해 위험을 무릎 쓴 투자를 하는 편법을 쓰지않고 개미처럼 저축하여 부자되기는 어렵다.   

지금 한국사회는 자산을 잘 굴려서 부를 키워가고 월급은 일종의 용돈정도로 써야 되는시대가 되어 버렸다.

한 달에 1억씩 올라 가는 아파트. 평당 2천만원 넘어 가는 아파트가 속출하면서 별 다른  자산을 가지지 못한 채 단지 땀 흘린 댓가만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는 사람은 절망할 수 밖에 없다
 
또한 미국식 경영원리가 세계로 퍼지면서 보통의 능력을 가진 사람 역시 빈민층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어느 분야에서 독보적 능력을 나타 내는 사람이나 기업가는 수 십억의 연봉과 각종 혜택을 독식하는데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비싼 아파트의 한 평 값도 안 되는 연봉을 받는다.

그 독보적 능력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수 많은 사람들의 땀을 모양새 좋게 활용한 측면이 크다.  

이런 미친 천민 자본주의의 광기가 다시금 이념논쟁을 유발시키며 죽은 마르크스를 다시 부활시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나라 당이나 민주당의 신 주류, 구 주류 할 것 없이 대다수 정치인들은 마르크스를 다시 살려 낸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사농 공상(士農工商) 사회의 꼭지점 위에 서서 권력과 부와 명예를 한껏 누렸던 인문학의 지식인들이 상공농사(商工農士)로 거꾸로 변해 버린 수익 구조에 대해 못 견뎌 한다.

인문학이란 의사소통의 담론을 제공한다. 따라서 인문학적 소양을 지닌 사람들이 어떤 아젠다를 설정하며 그  논의의 과정을 어디를 목표로 이끌고 가느냐가 대중의 여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

인문학이 돈과 권력을 주던 시대에는 일부 인문학자를 빼고는 다수의 인문학자들이 체제의 옹호 논리를 폈으나 인문학이 큰 돈이 안 되는 시대에는 그 다수의 인문학자들도 새로운 체제와 이념을 갈구하게 된다.
  
그 이념은 분명히 교조 사회주의나 천민자본주의 양자를 모두 배격하고 인간의 얼굴을 한 수정 자본주의 내지는 개인의 성취 동기를 고려해 주는 사회주의 형태가 될 것이다.

자본이 정보화 사회를 흡수했다면 다시 정보화가 다시 자본의 무한질주에 제동을 걸고 있는 셈이다. 

* 필자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인천 한누리 공동체를 이끌며 생명창조의 시대로 접어든 인류 사회의 정신적 좌표와 인류의 상생을 위한 미래신화를 연구하며 방송 강의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강화도 : 미래신화의 원형] 등의 저서를 집필하는 등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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