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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열병을 앓는 대한민국, 누가 치료할 것인가!
[논단] 한글문화단체들, '부산·인천 영어도시 만들기' 반대 성명 발표
 
이대로   기사입력  2007/07/28 [11:25]
지난 7월 16일 부산시와 부산시 교육청은 2020년까지 2700억 원을 들여서 ‘영어 도시 만들겠다."라는 발표를 한데 이어서, 7월 23일에는 인천시와 인천시 교육청이 ‘영어가 자유로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 오는 2014년까지 2336억 원을 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한글학회 등 한글문화단체는 7월 27일에 반대 성명서를 냈다.
 
엄연히 우리말이 있고 우리 글자가 있는 대한민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영어 마을’을 만들고, ‘영어 거리’를 만들더니 이제 수천억 원을 들여서 ‘영어 도시’를 만든다고 한다. 멀지 않아서 ‘영어 나라’를 만들겠다고 할 거 같다. 나는 이 꼴을 보면서 대한민국이 영어 열병을 않고 있다고 했는데 이제는 ‘영어에 미친 나라’가 아닌가 의심이 간다. 그리고 울화가 치밀어 가슴이 터질 거 같은 답답함을 느낀다.
 
15년 전쯤 김영삼 정부가 영어 조기교육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는 발벗고 힘차게 반대 운동을 했고, 얼빠진 자들의 헛소리로 들렸는데 지금은 영어와 그 숭배자들이 두렵고 맥이 빠져 그럴 용기도 힘도 나지 않는다.
 
그때 그 문제를 가지고 서울방송(,현 오세훈 시장 진행)에서 공개토론을 했는데, 찬성자로 영어학원 원장과 소설가협회장이 나왔고 나는 서울대 이현복 교수와 함께 그 반대자로 나간 일이 있다. 영어학원 원장이 돈을 잘 벌려고 찬성하는 거 같고, 영어로 소설을 쓰면 책이 잘 팔릴 것으로 생각해 소설가가 찬성하는 꼴을 보고 찬성자들을 우습게 보고 큰소리를 치며 반대했는데 이제 큰 소리가 안 나오고 한숨만 나온다.
 
그때 내가 내다보고 걱정했던 일들이 모두 현실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영어 조기 교육에 그치지 않고 영어 조기유학에 영어 조기교육 이민이 사회문제가 되더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영어 마을을 만들고, 영어 거리, 영어 학교를 만들다가 배가 차지 않아서 영어 도시를 만들고 있다. 다음에는 영어 나라를 만들겠다고 나설 것이다.
 
이제 거리에 영어 간판이 늘어나는 게 큰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들의 입에서 한국말이 나오지 않고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입으로만 미국말로 말하는 게 아니다. 마음도 영어와 미국에 사로잡혀 있다. 요즘 내 이웃집 아줌마가 “차라리 미국에 편입하는 게 좋지 않으냐?”라면서 내가 영어에 너무 지나치게 거부감을 느끼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거리에서 영어로 대화하는 한국인을 보면서, 또 미국에 편입하는 게 좋지 않으냐는 말을 들으면서 깜짝 놀라고 두려움을 느낀다. 나라가 망할 징조로 보아서다. 100년 전 일제에 먹힐 때도 일본말로 지껄이는 조선인이 늘어나고, 나라를 일본에 편입하는 게 차라리 좋지 않으냐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말이 생각이 나서다. 그렇게 될까 봐서 국어독립운동을 친일파청산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강대국과 영어에 신경이 많이 쓰이고 불안한데 다른 한국인들은 그렇게 걱정을 하지 않는다. 국어정책을 맡고 있는 문화관광부와 국립국어원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국어학자나 국어단체도 눈길도 주지 않는다. 나와 함께 이 일을 열심히 하던 한글학회나 세종대왕기념사업회도 지쳤는지 거들떠보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지난 17년 전 노태우 정권이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빼면서 한글날과 한글이 더 천대를 받고 우리말이 어려워지는 것을 보고 한글날을 국경일로 만들어 우리말과 한글을 우습게 여기는 풍토를 바꾸고 우리말을 살려서 겨레와 나라가 일어날 밑바탕으로 삼아보려 했다. 그런데 한글날이 국경일이 되었지만 정부는 한글날 경축을 위한 예산을 전보다도 줄였다. 지난 연말에 내가 나서서 국회의원을 만나 기본 경축행사라도 하게 해달라고 부탁해서 그러기로 했는데 문광부 장관은 그것도 받아내지 않았다.
 
나라밖에서는 우리말과 한글을 배우려 하고 대단하게 보는 데 그 주인인 한국 정부와 국민은 외면하고 미국말만 섬긴다. 도대체 어찌되는 일이고 어찌하자는 일인지 알 수 없다. 이렇게 마음이 약해질 때는 백범과 만해를 생각하면서 힘을 내고 글을 썼는데 이제 지쳤다.
 
나는 지난해 중국과 일본에서 한국어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고 한국말이 대접을 받고 있는지 취재해 인터넷 신문 ‘참말로’에 보도한 일이 있다. 그런데 나라밖에 가보니 내가 상상하던 거보다 더 한국말이 인기가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뿌듯했었다. 지난 5000년 동안 중국과 일본말에 눌려서 살던 우리말이 그들에게 큰 대접을 받고 있었다. 중국 절강성 소흥에 있는 월수외국어대학은 5년 전에 한국어과 학생이 5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700명에 이를 정도로 한국어과가 인기가 있었다.
 
그때 중국 그 대학 학장이 내게 “ 우리 대학에 태권도장을 열어주고 여기 와서 학생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며 한국문화 보급에 힘써 줄 수 없느냐?”라고 부탁해 놀랍고 반갑고 고마워서 그 자리에서 “좋다.”라고 대답해서 올 9월부터 그곳에 태권도장을 열고 한국말을 우리 문화를 보급하러 가기로 했다. 나라 안에서 할 일이 많지만 내 희생이 따르더라도 우리에게 좋은 기회라고 보아 외면해선 안 된다는 사명감에서다.
 
 이번에 ‘영어 도시 반대 성명서’ 발표를 준비하면서 한글문화단체가 아닌 다른 쪽 분들에게도 참여를 부탁해보았다. 그런데 “이미 정부가 하기로 한 거 반대해서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 그보다 한국어 지키기와 해외 보급에 힘쓰는 게 좋지 않으냐고 했다.” 그분 말씀이 옳다. 그래서 나는 우리말을 지키기 운동을 하고 중국에 가려 한다. 그런데 그분은 한글문화단체나 내가 반대를 위한 반대나 하고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말로 돈도 벌고 출세한 사람들이 가만히 있으면서 말이다.
 
내가 지금 힘이 없어 우리말이 미국말에 밀려 죽어가고 영어에 미친 대한민국을 치료하지 못하고 말로만 나서지만 언젠가 힘 있고 똑똑한 국민이 나와서 내 뜻을 알아주고 함께 우리말을 지키고 빛내어 영어에 미친 대한민국을 고쳐 줄 것으로 굳게 믿으면서 한글단체의 뜻을 밝히는 글을 내놓는다.
 
[성명] 부산시와 인천시는 영어 도시 만들기를 당장 그만두라.
 
지난 7월 16일 부산시와 부산시 교육청은 2020년까지 2700억 원을 들여서 "국제 도시 부산에 걸맞게 학생들이 해외 연수를 가지 않고도 영어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영어 도시 환경을 만들겠다."라고 발표한 데 이어서, 7월 23일에는 인천시와 인천시 교육청이 ‘영어가 자유로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 오는 2014년까지 2336억원을 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교육인적자원부와 함께 지방자치단체까지 지나친 영어 섬기기 계획을 세우는 것은 엄청난 교육 낭비며, 우리말과 얼을 짓밟는 결과를 낳게 할 어리석은 정책임을 밝힌다.
 
1. 지난 6월 28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말하기를, 경기 영어마을의 재정자립도는 2006년 25%에서 올해 1~5월 동안 77%가 되었다고 하였다. 이처럼 영어에 엄청난 예산을 들인 것에 견주어 효과가 적고, 적자 운영함으로써 이미 실패한 사업임이 밝혀졌다. 그래서 영어 마을 사업을 그만둬야 할 판에 거기다가 더해 수천억 원을 들여서 영어 도시까지 만든다는 것은 또 하나의 예산낭비고 우스꽝스런 헛꿈일 뿐이다. 결국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영어 사업이다.
 
2.이미 영어로 된 책을 얼마든지 살 수 있는데 영어 전용 도서관을 세우는 것도 쓸 데가 없는 일이다. 시민들에게'영어 100문장 외우기'를 강요하는 것은 왕조 시대나 군국주의 체제의 동원령 아래서나 나올 법한 망발이다.행정가가 스승 노릇까지 하려 해서는 안 된다.
 
3. “영어의 두려움을 없애려면 재미있게 영어를 쓸 곳이 많아야 한다.”라는 주장은 일반 국민에게 영어가 현실에서 거의 필요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꼭 영어가 필요하지도 않은 시민 모두에게 영어를 강요하기보다 영어 번역과 통역 전문가를 양성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집중 교육 지원을 하는 게 더 효과가 크고 얻는 게 많다.
 
4. 우리나라를 찾는 관광객이 영어를 모두 아는 것도 아니다.일반 시민이 영어를 못해서 외국 관광객이 덜 찾고 국제도시가 안 된다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관광공사의 2006년 한국 방문객 통계에 따르면 비영어권 국가인 일본 중국 동남아 방문객이 68.3%에 이른다. 이른바 길거리 영어 회화 능력은 관광객 증가나 선진국 되기와 아무 관계도 없다. 영어만 알면 모든 나라에서 모든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가. 말이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이해해 가는 과정에서 통하게 되는 것이다.
 
5. 현재 교육부가 초·중등학교 여섯 곳에서 실험 중인 영어 몰입 교육은 사실상 모국어 잊어버리기 운동이고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영어 도시 만들기는 우리말을 짓밟고 우리 문화 정체성을 위협할 위험한 정책으로서 영어 식민지, 문화 식민지로 만들 것이다. 지나친 영어 사업 투자는 국민 경제와 국어 교육을 어렵게 만들고 영어 습득에도 피해를 줄 것이다.
 
6. 그렇지 않아도 지나친 영어 교육열에 우리 말글살이가 병들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영어에 투자하는 절반이라도 우리말을 바르게 쓰고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들여라. 모든 외국어와 학문을 잘 배우고 가르치는 데 모국어는 상위 언어이며 우리 문화와 하나를 이루며 우리 얼을 담는 그릇이다.
 
우리는 교육인적자원부와 지방자치단체까지 지나치게 영어 교육에만 많은 예산을 들이는 것은 국민 경제와 국어생활을 힘들게 만드는 잘못된 정책이다. 영어 도시 만들기 계획을 당장 철회하기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단기 4340년(서기 2007년) 7월27일         
 
국어문화운동본부, 국어단체연합, (사)국어순화추진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세종대왕생가터복원준비위원회, 외솔회 움직이는말글문화,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전국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짚신문학회,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한국어정보학회, 한글문화원, 한글이름표기모임, 한글세계화추진운동본부, 한글사랑운동본부, (재)한국겨레문화연구원, 한글문화연대. (사)한글문화연구회. 한글문화조직위원회. 한글학회, 한말글문화협회.


<대자보> 고문
대학생때부터 농촌운동과 국어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지금은 우리말글 살리기 운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한글이름짓기연구소 소장
세종대왕나신곳찾기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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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7/28 [11:2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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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르 2007/09/16 [12:05] 수정 | 삭제
  • 매번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영어가 한자를 대체하는 현상을 지켜보면서 저도 답답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한자는 드디어 버려질 때가 되었고, 사람들도 점점 한자에 대한 집착을 버려가고 있습니다. 한자를 쓴 글은 읽을 때는 명확하게 뜻이 전달 되지만, 소리로 전달 받았을 때는 알아 듣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소리를 내는 한자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죠. 널리 쓰이는 한자단어의 경우는 소리만 들어도 그 뜻이 정확히 전달되지만, 듣는 사람이 알지 못하는 한자단어의 경우 그 뜻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한자어로 말하고 들을 때의 문제점입니다. 일본은 한자를 뜻으로 읽고 말함으로써 그 불편을 해소하고 있습니다. 일본어의 훈독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순일본말을 살리는 효과가 있다고 봅니다. 표음문자를 바탕으로 한 영어 한글과의 궁합면에서 한자보다 낫습니다. 영어의 단어들은 소리만 듣고도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순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낼때 영어로 하는 것이 쉽다고 느끼는 것이겠죠. 저도모르게 입에서 영어가 절로 튀어나올 때, 그리고 그 영어단어를 대신할 순우리말이나 한자어조차 생각나지 않을 때,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우리말보다 영어가 더 쉽게 느껴지는 것을 뒤집지 못하면, 10년 뒤 한국은 단어의 70%가 영어인 나라가 되지 않을까 걱정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