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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가루 뒤집어쓴 손학규, 쑈라도 좋다
[시론] 정작 탄광에 들어가야 할 사람은 '땅부자' 이명박, '쇼'라도 하라
 
이동연   기사입력  2007/07/06 [12:09]
손학규가 2차 민심 대장정 길을 강행하고 있다. 그는 도무지 자신의 진심을 알아 주지못한다는 답답함에서였을까? 아님 한나라당에 몸담았던 지난 세월에 대한 속죄의 성격일까? 

전남 화순군 동면 화순광업소의 지하 500M갱에서 채탄작업을 마치고 새카먼 탄가루를 뒤집어 쓴 채 컵라면을 먹으면서 ‘꿀맛’이라고 하는 그의 말에 어떤 느낌을 가져야할지 혼동스럽다. 쉽게 정치인들의 진성성을 믿지 못하는 까닭이리라.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양잿물이라도 마시는 시늉을 하는것이 정치인들의 속셈임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손학규의 민심대장정 그 자체로는 바람직하다. 어쩌면 손학규로서는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기댈 곳이라고는 밑바닥 민심밖에 없다.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바람을 기대하는 손학규의 대장정에는 절막함이 묻어난다.

그가 진작 그렇게 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양김이나 지역정서에 기댄 정당이 아니라 20:80의 사회에서 80에 속하는 바닥민심에 호소하고 바닥과 함께 기어서 청와대에 입성하려 했었다면 좋았었을 것을.
 
어쨌거나 그의 민심대장정은 어쩌면 앞으로 다음 대선부터는 대선 주자들이 벤치마킹해야 할지도 모른다. 만일 민심 대장정으로 손학규의 지지가 반등하기만 한다면.

벌써 손학규에게 마의 10%대라던 지지도가 넘어 서면서 손학규의 지지도가 오를 기미가 보이고 있다.  역대 대통령 후보들중 누구도 시도하지 못했던 민중과 함께 어울리는 생활체험의 선거 전략을 손학규가 펼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한나라당의 막강 빅2인 이명박과 박근혜도 진작 민초와 뒹구는 선거 전략을 택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세상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 한나라당  빅2는 너무나 고답적인 그래서 나무나 식상한 선거 전략을 펴고 있다. 쿠션 푹신한 차량에 몸을 싣고 선발대가 설치해 놓은 강단에 올라 ‘경제가 어쩌고 저쩌고..’ 라고 소리 지르고 다녀서 약발 먹히던 시대는 지났다.
  
굳이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대중은 이제 언어는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쯤은 상식으로 안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언어규칙이 다르듯, 정치인과 서민은 언어의 사용규칙은 완전히 다르다. 정치인과 서민은 서로 삶의 형태가 다른데  언어규칙이 같을 수가 없다.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는 두 집단이 벌이는 언어게임(Sprachspiel)에는 늘 혼선이 생긴다.

정치인이 ‘경제를 살린다’는 말을 할 때는 심하게 말해 검은돈의 거래를 더 활성화 하게 하자는 뜻일 수도 있다. 정치인들은 로비스트도 아예 합법화하자고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서민은 경제살린다는 말을 들으며 위에서만 도는 돈을 아래까지 흐르도록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이렇듯 정치가가 말하는 화려한 언술의 의미는 서민의 기대와는 전혀 정반대의 것이 많다. 정치가는 국민이 원하는 단어만을 골라서 쏟아낸다. 그러나 단어만 같을 뿐 그 의미는 다르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 지도층의 말빨이 지금은 먹히지 않는다.

정치인들과 기득권에서 말하는 형이상학적 이상이란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말 장난에 불과하다. 국민과 생활형태가 다른 정치인이 국민에게 감동을 주려면 국민의 일상생활 형태로 진입해 들어가야 한다.  저 높은 강단에서 또는 기자회견장에서 앞에 줄줄이 놓여진 책상위에 명패를 올려놓고 훈시하듯 몇마디 선심성 발언하는 것으로는 언어의 상이한 규칙을 알아버린 국민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식으로 발언자의 말을 대상자가 수용하지 않을 때 ‘언어의 휴가’가 시작된다. 언어가 휴가간 자리에 모든 철학적 문 제가 발행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안이 화자가 청자와 비슷한 삶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학규의 민심대장정은 쑈라고 하더라도 대단히 비트겐슈타인적인 발상이며 철학적이다.  그러나 이명박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그에 관해 자꾸 터져나오는 재산 축재과정에 대한 의혹을 또 하나의 언어게임인 고소고발로만 막으려 하고 있다. 그러니 이명박에게 철학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명박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언어게임이 아니다. 서민과 함께 간다는 구체적 액션이다. 지금이라도 농촌에 가서 밭일도 하고, 어촌에 가 그물도 던져 보라. 단 사진 한컷 찍으려고 포즈만취해서는 안 된다. 서민과 같이 먹고 자면서. 몇일 씩 서민의 생활을 몸으로 살아보라.

북한산의 바위에 올라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 했던데, 근본을 세우는 것은 높은데 서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땅 부자로 소문난 이명박 장로님, 쑈라도 좋다  손학규처럼 얼른 농촌 초가집으로 광산의 탄광속으로, 농부들과 뜨거운 뙈약볕에서 농사짓는 일을 하러 가시라.

이명박씨가 장로로 있는 강남의 초대형 소망교회에서도 아마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셨을 것이다. 저 낮은 곳으로 내려가 서민과 함께 울고 웃어라. 예수도 하늘 자리를 내려와 ‘육체를 입었다(Incarnation)’고 한다.

정치인의 진정성은 화려한 말을 통해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서민과 같이 살려고 하는 그 몸부림 속에서 비로소 구체화된다.

* 필자는 생명창조의 시대로 접어든 인류 사회의 정신적 좌표와 인류의 상생을 위한 미래신화를 연구하며 방송 강의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찾아가는 마음의 법칙] <삼별초>등의 저서를 집필하는 등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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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7/06 [12:0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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