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가수나 사법연수원생 등의 병역특례 비리 혐의가 불거지면서 병역 문제가 한창 사람들의 입을 달구고 있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터지는 병역비리를 틈타 이것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도 함께 도마 위에 올려졌다.
방송 뉴스에서 모 해설위원이 병역특례제도가 악용되는 소식을 전하는 자리에서, 제대군인의 공무원 시험 가산점 인정을 담은 병역법 개정안을 함께 언급한바 있다.
여성도 병역미필자라는 요상한 논리 그러면서 일부 여성단체의 반발이 있기는 하지만, 병역법 개정안은 '병역미필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한다. 병역비리자와 여성을 아울러 병역미필자로 치부하는 것, 재미있는 논리다.
고의적인 병역미필과 병역면제를 혼동하여 뒤섞어버리는 건 그 해설위원만의 사고방식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한국 사회는 군에 안 간 것과 못 간 것, 병역 기피와 양심적 병역거부 등의 차이를 가려낼 만한 양식이 없다.
군복무를 통해 여성에 대한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이들은, 푸른 제복을 걸쳐본 적이 없는 이들을 그저 똑같이 보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어쨌든 군에 몸을 안 담은 건 마찬가지니 제대군인에 비해 차별과 불이익은 감수하라는 말인가.
인터넷을 뒤적여보니 병역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여성들을 성토하는 이들은, 병역에 대한 혜택을 주장하는 근거로 군에서 자신들이 죽을 고생을 했음을 든다. 그러나 이들이 느낀 고통은 군대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대부분 군대의 불합리한 문화와 관련된 것이다.
가령 앉아서 신발 끈을 맸다고, 젓가락으로 밥을 먹는다고 무참히 상사에게 구타를 당한 억울함이, 여성들이 군대 못 간 죄로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낳을 수 있을까.
이유 없이 사람 잡는 군대에는 도무지 항변하지 못하면서 엉뚱한 화살을 만만한 이들에게 날리는 격이다.
억울하면 여자들도 군에 가라는 것이 남자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어렵사리 군복을 입어본 여성들이 전하는 군대의 공기는 성차별이 구조화된 이 사회의 축소판 그대로다.
남자들은 자신들만의 영역으로 믿고 있는 군대에 여성들이 들어오는 것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다.
여군 헬기조종사 출신 피우진 전 중령은, 자서전에서 군대 장성부터 일반 사병에 이르기까지 여성을 동료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들'만의 분위기가 가장 큰 고통이었다고 말한다.
여성으로서 우대를 바라지 말고 남자 군인과 똑같이 근무하라고 요구하면서도, 정작 사관학교 여자 후보생들에게 치마 복장과 화장을 강요하는 등 군인의 자질보다 여성의 모습을 바란다는 것이다.
성희롱과 술자리 접대 요구도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남성이 여성에게 자신의 입맛에 따라 여성이거나 여성 아닌 존재가 되기를 강요함에 따라 여성이 자기분열의 고통을 받는 건 군대라고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제대군인들에 대한 '혜택'에만 능했지 '보상'에는 인색했다. 사기업은 입사, 취업, 승진, 호봉 등 모든 면에서 제대군인을 우대하는 것이 관행이다.
누구든 피해보지 않는 '보상' 필요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조직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도 불합리한 명령 수행에 익숙해진 몸으로 제대한 남자들이다.
애초에 가산점 제도에 대한 위헌결정은 제대군인에게 공무원 취업의 혜택이라는 아주 부분적인 우대 조처만 없앴을 뿐이다.
이제 병역 논의는 혜택이 아니라 군대 물을 먹지 않은 사람들에게 차별과 불이익을 주지 않는 정당한 보상으로 옮겨가야 할 때이다.
군에 못 갔다는 이유로 시험에 떨어지는 방식 말고, 누군가의 피해를 담보로 하지 않는 보상이라면 환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제대군인들이 군대 문화의 개선이나 금전적 보상, 대체복무제 도입, 더 나아가 모병제 전환 등 합리적인 대안은 주장하지 않으면서 여성들에게만 일방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라는 것은, 혼자 다 해먹겠다는 이기심이라는 비판밖에 해줄 말이 없다.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
http://www.dominilbo.co.kr) 6월 26일자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