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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가산점에 목매는 자들은 누구인가
[정문순 칼럼] 청춘을 박탈하는 군대, 합리적 보상 찾아야
 
정문순   기사입력  2014/07/09 [16:06]
세월호가 침몰한 지 여러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프다. 눈물이 마르지 않게 하는 건 단원고 학생들이 세상에 남긴 영상이다. 희생된 학생의 휴대전화기에 담겨 있는, 수학여행 때 공연할 춤을 연습하던 학생들 중 아무도 살아 돌아온 이가 없다는 사실이 생각나거나, 또는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이 구조를 기다리며 태연하게 장난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떠오를 때면, 생때같은 아이들의 비극은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눈부시게 피어나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어이없이 목숨을 빼앗겨야 하는 현실에서 저 아이들의 죽음을 딛고 살아야 하는 남은 우리들의 삶은 또 얼마나 기막힌가.

어린 자식들을 집어 삼킨 기이한 참변은 4월에만 일어나지는 않았다. 전방 부대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군인들도 세월호 못지않게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남겼다. 그 군인들은 기껏해야 세월호의 아이들보다 서너 살 밖에 더 먹지 않았다. 목숨을 잃은 군인들은 물론이고 극형 선고가 불가피할 가해자 임 병장도 우리 귀한 새끼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군복을 입으면 국군 장병이지만, 실상은 여드름이 가시지 않은 얼굴에 솜털도 빠지지 않고 철없어 보이는 아이들이 그들이다.

물론 죽은 군인들이나 죽인 군인이나 똑같이 취급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는 줄로 안다. 임 병장을 구제불능의 살인마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제대를 몇 개월 앞둔 그는 2년 가까이 병역을 수행한 몸이었다. 고생이 끝나가야 할 막바지 군대 생활이지만, 그동안 속에 맺히고 쌓인 것이 더는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인 때였을 수도 있다. 그런 에너지는 결국 자신을 해치든지, 밖으로 터져 나와 남을 해하든지 둘 중의 하나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어쨌든 그가 살인 충동을 억누를 줄 몰랐던 정신이상자로 입대한 것이 아닌 이상, 용서할 길 없는 그의 행위는 ‘신성한’ 병역 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신성하다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실은 폐쇄와 권위, 불합리와 몰상식에서 견줌이 불가능한 집단인 군대 생활을 통해 발생한 참변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살인마가 돼 버린 그는 최소한 병역을 기피하지는 않았다. 힘 있는 집안의 자식들처럼 징집을 용케 피했다면 정신을 놓아버린 일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국회 청문회에 서는 장관 후보자나 그 자식들처럼 병역 수행 과정에서 의심이 가는 일도 만들지 않았다. 청춘의 황금기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꽉 막힌 집단에 헌납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래서 박탈감도, 상실감도, 억울함도 없는 이라면 임 병장을 손가락질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군대 면제자인 나의 경우, 죽은 이든 죽인 이든 돌이킬 수 없는 청춘이 아깝고 절통하며, 새끼 잃고 창자가 도막 난 잔나비 마음이 될 수밖에 없다.

군대에 안 갔든 못 갔든 군대 밥을 먹어보지 않은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운신의 폭이 매우 좁은 나라이며, 어느 정도는 그걸 수용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북한이 주적이라고 말하던 어떤 병역면제자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이 다시는 보기 싫어진 것은 자기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솔함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혼잣말로 “군대도 안 간 놈이 감히…….”라고 욕했다. 군대도 안 간 내가 나와 마찬가지인 사람을 비난한 건 병역 수행자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병역의 어려움을 몸소 겪어보지 않은 이라면 자기 대신 총을 든 이들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무력 충돌이나 전쟁 위기를 부채질하는 발언만큼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제대군인이 아닌 이들은 그들에게 빚진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한국의 군대문화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야 군대에 가지 않은 이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임 병장이나 그에게 목숨을 잃은 군인들의 희생을 통해 병역 체계가 존속하는 이 기이한 구조에서, 군대를 가지 않거나 못 간 이들의 일정한 배려와 양보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든다. 헌데 이상한 군대문화의 가해자격인 군 당국은 제대군인이 아닌 이들에게 배려와 양보를 넘어 희생과 박탈을 요구함으로써 꼬인 매듭을 풀기는커녕 엉뚱한 일을 보태려고 한다. 제대군인이 아닌 이들에게 불이익을 통해 징벌을 가하는 일로는 결코 문제를 풀 수 없다.

군 당국이 믿고 있는 것은 합법적인 병역면제자들에게마저 심한 박탈감을 느끼는 제대군인들의 정서다. 이명박 정부 이후, 진작 위헌 판결이 난 제대군인 가산점 제도를 끊임없이 무덤에서 끄집어내려는 당국의 태도는, 자신들이 저지른 폐해나 모순을 아무런 책임 없는 면제자에게 전가하고 군인과 비군인, 남성과 여성을 대립하게 만듦으로써 어린 자식들이 무참히 죽어나가는 이 구조를 영구히 다지겠다는 것과 같다.

임 병장 사건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군 가산점이 또 들먹여질지 모른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제대군인에 대한 합리적 보상과 군대 개혁 방안을 모색할 만한 적기이다. 

* <경남도민일보> 7월 9일 게재한 글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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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7/09 [16:0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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