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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하지 않고 살아갈 방법이 있을까
[비나리의 초록공명] 나이 마흔 직전에 만나게 되는 삶의 패러독스들
 
우석훈   기사입력  2007/05/10 [14:05]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야 손금이 다른 것만큼이나 각양각색이겠지만, 그래도 숨을 붙이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제각각의 이유를 가지고 있게 된다. 죽지못해 사는 것이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유를 찾게 되고, 정 이유가 찾아지지 않으면 그냥 일요일날 사람들 손 붙잡고 교회에 나가도 살아가야 할 이유 한 가지는 찾아내게 된다.
 
수많은 각각의 이유들을 분류하는 방식이 몇 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제일 손쉽게 이러한 이유들을 구분하는 방식 중의 하나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과 증오로 살아가는 것,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인가를 너무 증오하는 것은 짧지만 강렬하게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이겠다. 그것도 훌륭한 방법이기는 하다.
 
무언가를 사랑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법, 그렇다면 그 사랑하는 대상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뭔가를 사랑해서 세상을 산다고 해도 크게 천사표 삶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아주 자주 인용되는 성 아우구스니투스의 세 가지 사랑, 즉 명예에 대한 사랑, 돈에 대한 사랑, 그리고 살에 대한 사랑, 뭐 그런게 중세 때부터 대체적으로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서양에서 크게 정의하는 방법이다.
 
15세기 이후에 대체적으로 명예에 대한 사랑 위에 세우려고 했던 서양 사회가 점차적으로 돈에 대한 사랑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 프린스턴 사회과학원의 원장을 지냈던 알베르토 허슈만(A. Hirschman)이라는 사람이 "열정과 이익"이라는 책에서 자본주의로 바뀌면서 생기는 변화를 분석하면서 가졌던 결론이다.
 
돈에 대한 사랑은 거짓은 없다.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뭔가 어려운 걸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간단하게 돈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편이 정신건강에는 나을 것 같다.
 
돈에 대한 사랑이 불편한 것은 대체적으로 딱 두 가지의 경우인 것 같다. 나는 돈을 사랑하는데, 돈이 나를 사랑하지 않나봐... 매일 아침 로또를 사는 군상들은 이 서글픈 짝사랑 속에서 오늘도 돈이 자신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 숫자들을 찾는다. 가끔 보면 특별히 돈이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돈은 나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주 어렸을 때 알았고, 그래서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 가장 간단한 생각으로 이팔청춘이 지나기 전에 돈과의 인연을 끊었던 편이다.
 
돈에 대한 사랑이 사람을 또 한 번 불편하게 하는 경우는 아마도 숨이 넘어가는 순간일 것 같다. 아무도 이 순간의 느낌에 대해서 정확하게 기술하지 않기 때문에 - 죽는 순간에 느끼게 된 감정은 다시 사람들에게 말을 해주기가 어려울 것 같다 - 어떤 느낌인지 잘 알기는 어렵다. 주로 글을 쓰거나 말을 남기는 사람들은 학자나 작가들인데, 대개 이런 사람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돈에 대한 사랑이 마지막 순간에 어떤 느낌을 주는지 알기가 어렵고, 정말로 돈이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또 말을 안해준다.
 
그러나 어렴풋이 상상해보면, 아마 죽음 직전의 순간에 매우 허무하고 외롭지 않을까 한다. 그깟 돈을 벌기 위해서 한 번밖에 없다는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허비했다고 생각하면 어쩌면 억울하지도 않을까? 물론 나는 그렇게 돈을 사랑해보지도 않고, 그렇게 돈을 위해서 움직여본 적도 거의 없기 때문에 상상하기 어려운 감정이기는 하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래도 돈은 사람보다 속이는 경우가 적다는 점이기는 하다. 대중을 사랑해서? 이런 건 진짜 이상한 일이다. 자기가 무슨 시저인가?
 
돈과 사람이라는 목적을 제하고 나면 사실 가장 강렬하게 존재의 이유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역시 증오이다. 증오만큼 순간적으로 강렬하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길도 별로 없고, 증오만큼 피곤도 잊게 하고,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순간을 짧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젊은 시절의 많은 예술들과 창작들, 그런 것들은 대개 증오 위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모차르트처럼 천재라면 증오를 조롱으로 예술적으로 전환시키겠지만, 그보다 능력이 부족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증오를 날 것으로 보일 것인가 아니면 한 번 혹은 두 번 순화시켜 아름다움으로 전환시킬 것인가, 뭐 그 정도의 차이점 밖에 없지 않을까...
 
시대정신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얘기하는 시대정신 역시 많은 경우 증오 위에 서 있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건 정치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레토릭이지만, 그냥 숨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이러한 증오로 자신의 삶을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 증오와 사랑, 그것은 어쩌면 같은 일이다. 일본을 아주 증오하는 것은 한국을 더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행위이다. 가장 쉽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살아가는 이유를 찾아가는 일은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전체가 가지고 있는 피부를 빌리는 일이다. 
 
나이를 먹어도 증오가 잘 사라지지 않는, 그래서 철이 덜 든 사람들이 종종 있다. 대개 정치낭인 시절을 거치다가 결국 국회의원을 하게 된다.
증오로 공부를 시작했던 사람들의 일부는 더 이상 증오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되자, 폭탄주를 아주 잘 만들기 시작했고, 소주가 왜 몸에 나쁘고 왜 위스키를 마셔야 하는지, 좀 예전에 하던 공부와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도 한다.
 
나이를 먹고도 뭔가를 계속 하기 위해서는 젊었을 때보다 더 끊임없이 이유를 찾아야 한다. 증오 하나만으로도 살아가고 움직일 이유가 있던 20대에 비하면, 확실히 나이를 먹을수록 간단한 행위 하나를 하더라도 그 이유를 더 많이 제공해야 몸이나 머리가 움직이려고 한다. 예전에 나이 마흔이면 이제는 현업에서 물러나서 손주를 안고 있을 나이이다. 몸이 잘 안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더 많은 사랑을 찾던지 아니면 더 많은 증오라도 찾던지...
 
사랑은 귀찮고, 증오는 피곤한 나이가 되면 - 대체적으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 아닐까? - 사람들은 살아가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하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
 
요즘 삼성과 같은 큰 회사에서는 이 나이가 되면 슬슬 짐 싸고 집에 가야할 나이가 된다. 당연히 증오심이 많아지게 되고, 마흔살 근처에 증오로 다시 한 번 무장을 하고 50살을 맞게 되는 것이 2007년의 삶의 패턴인 셈이다.
 
그 때에 다시 증오를 붙잡고 세상을 살면 50살에 어떤 얼굴과 어떤 삶을 맞이하게 될까? 악마가 되어있을 확률이 90% 이상일 것 같다.
 
증오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은 사실 인류가 동굴에서 처음 출발한 이후로 아직까지 답을 찾지 못한 어려운 질문 중의 하나인지 모른다.
 
나는 한 가지 답을 안다. 잠을 아주 많이 자는 일이다. 자고 또 자고, 그래도 또 자면 증오가 마음 속에서 자라나기 전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자체가 몽롱해진다. 그렇게 한 백일쯤 자고 나서, 그러고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일이 하늘이 나에게 맡긴 일이겠거니 생각하고 살아가면 증오하지 않을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아무 것도 없다면... 하늘이 맡긴 일이 없거나 아직은 때가 아니니까 잠을 깰 때가 아닌데 미리 깬 셈이다.
 
태어나기 전에 사람들은 엄마 뱃 속에서 길게 잠을 자고 비로서 태양을 맞을 준비를 한다. 젊음과 격정의 순간이 한 번 지나가고 마흔이 되었을 때, 그렇게 긴 잠을 한 번씩 자는게 좋을 것 같다. 자기 주위에 있는 것들, 사랑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증오가 겹겹이 만들어낸 치장 장치에 다름아닐 가능성이 높다.

정말로 아주 작은 것이라도 사랑하기 위해서는 한 점의 증오도 없는 순간을 맞이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아주 조금이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하려고 발버둥을 치면서 증오가 쌓이는 것, 그런 삶이 바로 마흔 직전에 만나게 되는 삶의 패러독스일 것이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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