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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스위스를 보고 대권을 논하시오
[비나리의 초록공명] 박근혜 의원과 보좌관은 스위스 농업전략을 보시라
 
우석훈   기사입력  2007/04/26 [15:40]
이번 <한겨레> [야!한국사회] 기고 글은 아주 고심을 많이 한 글이었다. 이 전 글이 경인운하에 관한 글이라서 경인운하의 식수원 오염 문제를 가지고 한 번 더 다룰까, 아니면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얘기한 규제제로에 대해서 다룰까 꽤 고민을 했다.
 
내가 이 칸에 쓸 수 있는 글이 두 번 잘 하면 세 번 남았다 (나는 고정적 칼럼을 가진 고정 칼럼니스트가 아니라 6개월 하고 교체되는 사람이다.)
 
남은 칸에 이명박을 두 번 쓰는 것은 내가 가진 기회를 낭비하는 것 같아서, 결국 규제제로에 대해서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나니까 톤이 문제가 되었다. 뭐라고 얘기하든 박근혜가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은 명확하다. 쎄게 욕을 해야 하나? 얼마나 더 쎄게 욕을 해야 하나? 겁을 줘야 하나? 그런데 내가 겁줄 수 있는 수단이 뭐가 있지?
 
사실 별 거 없다. 배설 한 번 하는 것 외에는 원고지 여덟장에 할 수 있는 얘기라는 것은...
 
편지 형식으로 쓰기로 한 것은 김목경의 얘기가 결정적이었다. 기타를 연주한다는 것은 대화와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누가 처음부터 격렬하게 다짜고짜 몰아부치냐, 그래서 기타도 들을 사람의 준비를 같이 하면서 점차적으로 호흡을 맞춰서 연주해야 한다... 블루스 기타연주에 대한 김목경의 평소 지론이다.
 
여기에 약간의 우연이 또 있기는 하다. 형식으로는 박근혜 의원에게 보내는 형식을 빌었지만, 결국 이혜훈 의원에게 보내는 편지인 셈이다. 이혜훈 의원은 박근혜의 복심이라고 불리는데, 잘 아는 선배의 친구 부인이기도 하고, 한 때 같은 공간에서 같이 연구하던 처지였던 선배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으로 들어가면서 별로 좋지 않은 얘기를 듣기도 하고, 공간 문제와 관련해서는 지나치게 보유세를 공격하면서 약간 논리적 모순을 보이기는 했지만, 대체적으로 이론을 가지고 얘기하면 대화가 될만한 사람이다.
 
이혜훈 의원에게 경제학에서 새로운 지평이 있음을 이 편지 형식을 통해서 알려주고 싶었다. 어차피 박근혜의 경제정책을 정리해서 최종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이혜훈 박사의 몫이다. 이런 책사들의 눈으로만 본다면, 이명박 진영은 도저히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을 책사로 앉혀놓고 있는데, 사실은 지금까지 이명박은 책사들의 머리를 빌리는 방식으로 일을 하지 않아서 그렇다. 이명박의 책사들이 서울 시장 시절에 대개는 총알받이고, 돌격대장들이었다... (결국 양윤재 부시장은 감옥에 갔다... 양윤재도 대화하기 참 어려운 종류의 사람이다.)
 
만약 내가 어떤 식으로든 신문에 칼럼을 계속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도 GMO 모라토리엄과 몇 가지 안 꺼내놓고 있는 카드들을 더 끄집어낼 생각이기는 하지만, 이게 실제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자신이 없다.
 
여담이지만, 강봉균... 이 사람도 참 대화하기 어려운 종류의 사람이다. 
 

박근혜 의원님께
 
봄입니다. 부드러운 바람이 자연을 일깨우며 꽃들을 피워내는 봄입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님의 대결을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데, 저는 경제학이 전공이라서 제 주변의 사람들보다는 훨씬 진지하게 한나라당 대통령 예비후보들이 내놓는 언어를 정책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는 편입니다. 솔직히 제 속내를 고백하자면, 현실적으로는 두 분 중에 한 사람이 대한민국 국민경제의 방향타를 잡는 선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아무래도 한반도 대운하 같은 황당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보다는 박근혜 의원님이 선장이 되는 편이 그래도 조금 온화한 한국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얼마 전에 ‘규제 제로’라는 방향을 내놓으신 걸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은 위헌이지요.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규제는 그린벨트를 포함해서 아버님이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졌거나 틀을 잡은 것들입니다. 전 아직도 그린벨트를 지지합니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이중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아버님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그렇게 무서워하거나 혐오하면서도 어머님인 육영수 여사에 대해서는 아직도 신비함과 온화함으로 찬미의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규제 제로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어느 쪽의 피가 박근혜 의원님께 더 강하게 흐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스위스와 우리나라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국토의 70%가 산인 것도 같고, 자원이 없는 자원 빈국인 점도 같고, 독일, 프랑스와 같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자원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는 점도 같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너무 가난해서 스위스는 남자들이 용병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렸던 적도 있는 비운의 나라입니다. 지금은 스웨덴과 함께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제일 먼저 넘어선 나라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저는 취리히에 한번 가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산지가 우리나라만큼 많은 이 나라에서 평지를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한번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에 헌법을 바꾸어서 평지는 물론 비탈지에서의 농업에도 국토보존을 위한 지원금을 줄 수 있게 하였고, 최근에는 국민투표로 ‘지엠오(GMO) 모라토리엄’ 즉 유전자조작식품의 유통금지를 결의하였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농지를 개발해서 스위스 국민소득이 4만달러를 넘어선 것이 아니라는 건 너무 자명한 일입니다. 스위스의 농업 관련 노동이 전체 고용의 12%라는 점을 환기해보시기 바랍니다.
 
3만달러도 좋고 4만달러도 좋지만 가장 높은 국민소득을 올리는 나라들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국민들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나가는지 한번 직접 보시면 정말로 우리가 갈 길이 조금 명확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취리히는 소득도 높지만 삶의 질도 몇 년째 세계 1위인 도시입니다. 그 비밀이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일지도 모릅니다.
 
대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취리히도 가보시고, 로잔도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유가 되시면 코펜하겐도 가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새로운 지평과 세계가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왕이면 육영수 여사의 딸이었다고 역사가 박근혜 의원님을 기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고단했던 한국 민중의 삶이 어떻게 스위스 국민들처럼 행복해질 수 있는지 이 봄에 진지하게 고민해보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강한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것이 결국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건국 이후 가장 부드러웠던 인물은 육 여사라고 사람들이 평가하더군요. 그리고 지금 스위스의 대통령은 마침 여성입니다. 두 번째 여성 대통령이지요. 두 분이 한번 만나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본문은 <한겨레> [야!한국사회] 4월 26일자 기고문을 보완한 것입니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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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4/26 [15:4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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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독자 2007/04/27 [02:21] 수정 | 삭제
  • 깊은생각 님 글 기다리다 목이 늘어났습니다.
    부동산 하락, 증시 활황... 한국 경제 어떻게 되갑니까?
    그로인해 어느 쪽이 경제 어젠다를잡게 됩니까?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깊은생각님... 보따리를 좀 푸세요..

    기대하겠습니다.

    애독자 올림
  • 깊은생각 2007/04/26 [22:33] 수정 | 삭제
  • '한미 에프티에이 폭주 기관차' 이것 말고, '생태경제학' 이것 말입니다. 스위스가 어떻게 국민소득 4만달러인지, 사람의 '노동'에 어떻게 값을 매겨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지, '4만달러'라는 수치가 '미국식' 수치인지 아닌지 이런 것 말입니다. 좀 작업을 빨리하셔서 궁금한 사람들에게 '앞길'을 열어주셨으면 합니다. 온통 스스로 눈가리고 귀막으면서 눈앞에 뻔히 보이는 문제들을 회피하려는 이 나라에서 말이죠. 지혜가 절실한 때인데 윗 글은 정말 '지혜'를 담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