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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사나이를 위한 작은 연가
[비나리의 초록공명] 넋이라도 고이 가시길... 말 한 마디가 너무 무겁다
 
우석훈   기사입력  2007/04/16 [12:59]
예전에 한열이가 쓰러지던 순간이 기억 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는다. 그 때 같은 깃발로 섰던 사람들 중에는 이제는 많이 유명해진 소설가 김영하가 있고, 일본 문무성 장학금 받고 일본으로 유학간 친구, 오랫동안 감옥살이 하다 현대해상 건물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한 때는 학생운동의 전설로 불렸던... 대장금의 작가인 영현이 누나가 그날 그 자리에도 같이 있었나?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여기에 기억 한 가지가 더해진다. 몇 명이 아직 한열이의 숨이 남아있었을 때 한열이 가족들과 한 명씩 붙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을 했었는데, 나는 한열이 아버님과 같이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
 
세란이라고 불렀던 세브란스 근처의 벤치에 오래 있었고, 신록예찬으로 예전에는 유명했었던 청송대 - 이곳에서 집회를 너무 많이 한다고 결국에는 전두환이 나무를 다 잘라내고, 그 자리에 벤치를 깔았다 - 에도 갔었던 기억이다.
 
아버님이 선생님이었던 기억인데, 우리 부모님도 선생님이라서 그런 교직과 가르침에 관한 얘기들을 주로 많이 들었다.
 
나중에 나도 유학을 끝내고 한 번 찾아뵐려고 했었는데, 이미 돌아가셨다. 예전에 기자였다는 외할아버지가 납북된 큰 삼촌의 기억을 잊지 못해 몇 년 후에 바로 돌아가셨던 기억과 겹쳐지며... 성함도 잘 모르는 한열이 아버지가 그렇게 아들이 사라진 기억을 잊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신 일은, 잘 잊혀지지 않는 기억 속의 한 상흔이다. 성함이, 아무리 생각해내려고 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열이 어머님의 삶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깊이 남아있지만, 아버님의 기억은... 흔적도 남지 않았다.
 
광주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선생님이 아니었거나, 아니면 나처럼 선생님이라도 서울에서 교편생활을 할 수만 있었으면 아들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씀을 여러 번에 걸쳐서 하신 기억이다.
 
한열이 장례가 끝나면 나중에 우리 아버지를 꼭 한 번 뵙고 싶다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 이후에도 나의 방황이 잘 정리되지 않아서 그런 자리가 마련되지는 않았다. 살면서 몹쓸 짓한 것들에 대해서 가끔 생각하는데, 그래도 좀 신경을 쓰지 못한 것들이 가끔 기억에 남는다.
 
얼굴도 기억날 것 같다... 한열이 아버님...
 
그렇게 해서 10년이 지나기 전에 부자가 다 떠나고, 이제 어머님 혼자 남으셨다.
 
한열이 10주년 기념행사는 현대에 다니던 시절에 맞았다. 오전에 마라톤이 있었고, 저녁 때 기념행사가 있었다.
 
가수 김장훈이 나와서 신나는 노래 부를 때부터 부아가 잔뜩 뒤틀리기 시작했다가, 이소라라는 가수였나?
 
"여러분 행복하세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노천강당을 도망가듯이 내려왔고, 잘 모르는 이소라라는 가수와의 인연은 물론, 시대와의 인연도 끊었다.
 
97년도에 연세대학교에서 학생회에 몸을 담았던 사람들과는 평생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그 길을 내려오면서 나의 대인기피증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그 때가 내가 만 스물아홉,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세상을 다시 만났을 그 때 그렇게 가수 이소라의 한 마디에 충격을 받고 내려오면서 나는 시대에 등을 돌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더 이상 사람이 죽거나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했는데, 그 후에도 사람들은 계속 죽었고, 아마 통계를 내보더라도 이 숫자가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
 
노무현 정권 이후에는 오히려 죽음의 숫자들이 늘어났고, 분신까지 나온 상황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 다산인권센터
 
한열이에 비하면 허세욱 씨의 죽음은 훨씬 비참하고, 초라하다.
 
뭐가 달라졌을까와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라는 두 가지 생각을 해봤다.
 
불행히도,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부모는 다르다는 것을 생각했다.
 
넋이라도 귀신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부모라서 그랬던 것일까? 전태일이든, 한열이든...
 
사랑한다고 말해도, 부모가 말하는 것과 다른 것들에는 차이가 있는 것일까?
 
지금 할 수 있는 말과 혹은 할 수 있는 것에 무엇이 있을까?
 
넋이라도 고이 가시기 바란다... 이 말 한 마디가 너무 무겁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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