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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과학, 사라지는 신화들
이동연목사의 생명창조 시대의 자기경영시리즈 3
 
이동연   기사입력  2003/07/05 [11:32]

처음 미래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하였을 때 굉장한 심적 충격을 받았으며, 정체감까지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였다.  하버드 대학의 철학교수이면서 목사였던 폴 틸리히가 '흔들리는 터전(The Shaking foundation)'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는데 마치 나를 두고 한 말처럼 느꼈었다. 
  
특히 인류에게 있어서 초유의 화두인 '생명창조'라는 단어는 내게 생소함을 넘어서서 내 존재의  근거인 학습받은 가치, 경험으로 얻은 삶의 지혜, 종교적 신뢰들이 심하게 흔들이면서 마치 허공에 매달인 거미 같다는 느낌을 가졌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 사색하면 할수록 미래에 대한 섣부른 낙관이나 비관은 그다지 필요한게 아니고 단지 준비를 통해 미래의 폐해를 줄이고 희망을 키워 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회의 여신은 단지 준비하는 자에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 천지창조/ 미켈란젤로 작   ©대자보
'진화냐 창조냐'라는 다툼은 인류에게 늘 있어 왔다. 생명의 시작과 진보가 우주 밖의 신적 존재에의 한 것이냐 아니면 자연의 선택에 의한 것이냐는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중간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진화론자나 창조론자나 분명히 일치하는 지점이 있었다. 즉 생명이란 인간의 손을 떠나, 인간의 외부에 있는 어떤 작용에 의해 시작되고 유지되고 소멸된다. 외부의 어떤 작용이란 구체적으로 신, 또는 자연이다.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은 자연의 선택에 의한 것이든지 아니면 신의 선택과 섭리에 의한 것이다.
 
이 두 부분에 대해서 지난 4만년 동안 인류는 철저하게 동의했고 한 번도 이 카테고리에 대해서는 크게 고민하거나 논란을 벌인 적이 없다. 그 카테고리 안에서 신화가 발생했다. 종교의 분화와 발전도, 철학의 온갖 논의도, 그 카테고리를 크게 벗어 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역시 가족과 국가, 너와 나의 관계, 집단간의 도리를 규정하는 규범, 도덕, 윤리 역시 그 범주 안에서 다 만들어 진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그 카테고리가 힘없이 무너지고 있다. 이유는 생명 창조 때문이다. 단순히 유전자 복제정도가 아니다. 단순히 우수한 인종, 탁월한 유정 정보만을 짜집기 해서 잠재적 가능성을 매우 많이 가진 후손을 만드는 정도가 아니다. 수 백년 후일런지 단지 수 십년 이내 일런지는 그 시기가 문제일 뿐 서로 다른 종(種)들의 결합이 시도될 것이며 종국에는 동물과 식물, 인간과 동식물의 경계마저 희미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생명창조의 시대는 정보화 사회와 절대로 단순 비교할 수 없다. 정보화 사회는 어떻게 보면 단지 과학 기술의 발전 정도에 멈출 수도 있다. 그러나 생명창조사회는 기술의 발전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고 그보다 더 큰 함의를 가지고 있다. 철학과 제도, 윤리와 품성, 신화와 종교, 자연과 생명, 국민과 세계 등 다양한 형이상학적 주제들이 일대 폭풍적 변혁을 가져온다. 한 마디로 인간이 달라진다. 인간의 생각과 가치기준, 선택양식 등 인간내면의 지도가 달라진다.

'생명은 자연이나 신의 것'이라고 선을 쭈욱 긋고나서 그 안에 다양한 구획을 만들고 살아온 인류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미래를 예측하고 그 예측에 도취되어 오늘 내 삶을 소홀하게 사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한 손엔 미래를 한 손엔 현재를 쥐고 있어야 한다. 저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어디가지나 오늘 내 삶이 행복하고 내일을 잘 대비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자!  그럼 지금 부터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사라져 가는 세 종류의 신화들에 대해 알아보면서 어떻게 자기를 경영해야 되는지를 알아보자.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신화'는 진실이냐 아니냐가 그 기준이 아니다. 신화란 초 합리적인 것이지만 이성적 판단보다도 훨씬 인간을 강제하는 경우를 말한다. 
    
우선 종교의 신화가 힘을 잃을 것이며 어쩔 수 없이 많은 변화를 가져 올 것이다. 모든 종교는 철저히 인간의 이해 너머에 위치하고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고대로 거꾸로 올라가면 갈수록 종교적인 사회였다.

원시사회는 아예 제정일치 사회가 아니었던가? 즉 제사장이 왕이고, 왕이 제사장이었다.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해답을 주면서 종교는 인류에게 권력을 행사해 왔다.
     
중세기만 해도 교황이 황제 임면권을 행사하였으며, 중국에서도 황제가 친히 도교의 도사가 되기도 하며, 고려나 조선에서까지 종교적 영향력은 왕실의 운명을 좌우했다. 그런 전 방위의 종교에서 제일 먼저 정치권력이 떨어져 나갔으며 다음엔 철학, 그 다음은 과학, 심리학 등의 순서로 분리 독립해 나갔다.
    
저처럼 많은 영역을 다 떠나 보낸 종교에게 마지막 남은 거대한 영역은 피안의 세계이다. 에덴 동산에서 금단의 생명과 나무를 따먹고 쫒겨나면서 까지 확보하려 했던 영생의 욕망, 그 욕망을 만일 과학이 성취해 준 다면 그때에는 종교의 역할이 어떻게 될까?
  
▲ 삶과 죽음    
여하튼 인간에게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종교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예전처럼 현실 기복적이며 보상 체계형태의 신화는 약화될 것이다. 종교를 안 가져도 얼마든지 권력과 지식과 재산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절대 초월자를 섬기면 그 반대 급부로 개인이 무얼 챙기는 '주고 받기식' 형태의 신화는 많이 약화되고 대신 변동하는 사회에서 자기를 관리하고 인간적 안식을 주는 휴머니스틱한 면이 강화될 것이다.

일종의 사회학과 심리학을 종교가 흡수해 간다고나 할까? 
 
다음 가족 신화가 사라진다.  가족은 어떻게 신화가 되었나? 가족은 어떻게 지고선(至高善)이 되었는가? 왜 가족안에서는 많은 합리적 논의들이 다 중단되고 감정에 치우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많은 기대와 환상을 불러 일으키는가?

만 오천년전 인간이 최초로 농사를 시작하면서 가족 제도가 출발하였고 그후 4000년 전에 도시 국가들이 형성되면서 더욱 근육과 힘을 기반으로 하자 가족제도가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근육의 문화에서 강자인 남자는 약자인 여자를 예속해 갔다. 거기에 근육질의 남자들은 이미 얻은 부와 권력을 자기를 닮은 후손에게 넘겨주어 지배력 지속까지 시도하게 된다. 당연히 최고의 미덕은 정절이며 은장도를 배꼽 주변에 품고 다녀야 했다. 종교도 덩달아 근육 문화의 산물인 순결을 신의 명령으로 도치시켰다.  

동양 종교의 한 발상지인 중국에서는 신혼 첫날 밤을 치른 신랑이 신부의 처녀막이 파열되면서 나온 피가 묻은 침대보를 좋아라 흔들고 다니면서 동네 사람들에 보여 주었다. 스페인에서도 신랑이 피묻은 신부의  피묻은 속옷을 창가에 걸고 '내 신부는 처녀다'라고 외쳤다.

루소는 그런 가족의 역사를 보고서는 '가족의 목적은 아버지의 재산을 자녀에게 남겨 주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단정해 버렸다. 아리스토텔레스마저도 '이성의 계층론'에서 말했다.

'남자의 기능은 이성적이어서 자녀의 형상을 제공한다. 여자의 기능은 이성적인 남자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서 자녀의 자료를 제공하여 남아의 출산과 가사 노동이다.'  
 
이처럼 나를 닮은 자녀에게 지배력을 물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형성된 가족신화가 생명창조 사회에서는 맥없이 주저 앉고 있다. 생물학적 결합을 통해서만 후손을 얻었던 시대가 지나가기 때문이다.

오히려  복제를 통해 더 나아가 내 개체를 유전자 조작을 통해 그야말로 훨씬 나를 더 닮으면서도 업그레이드된 자녀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서인지 근래에 선진국일수록 아이를 안 낳으려 한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나 개인주의 영향도 있겠지만 다 그 드러난 이유의 배후에는 거대한 문명의 흐름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반응이 있다.
  
신화는 신화가 생기게 된 요인이 사라지면 현저히 그 힘을 잃는다. 강자의 소수 정예주의(elitisim)를 세대를 뛰어 넘어 지속시키려는 사회적 기술로써 시작된 가족신화는 지금 서서히 그러나 매우 치밀하게 무너지고 있다. 그 전조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 출현으로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가족이라는 인위적 장막이 걷어 지고 있다. 어떻게 대비하겠는가. 다음 주에  생명 창조사회에 들어서서 사라지는 3번째 신화인 맘모니즘의 퇴조와 함께 생명창조 시대의 자기경영에 대해 더 살펴 보겠다.

* 필자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현재 인천 한누리 공동체를 이끌며 생명창조의 시대로 접어든 인류 사회의 정신적 좌표와 인류의 상생을 위한 미래신화를 연구하며 방송 강의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강화도 : 미래신화의 원형] 등의 저서를 집필하는 등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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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7/05 [11:3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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