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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강준만, 김지하의 중도는 '기회주의'
[신정모라 여성주의] 정치하려면 한미FTA 찬성 또는 반대 명확히 해야
 
신정모라   기사입력  2007/02/08 [17:12]
안과 밖을 향한 운동의 전략을 모두 까발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큰 선은 보수나 진보로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 세력을 줄이고 통합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중도라는 깃발을 들어보는 것이다. 마치 독일 녹색당의 깃발처럼, 그것은 진보의 적색도 보수의 청색도 아닌 그 둘이 혼합된 보라색이다. 중도는 그러므로 기회주의가 아니다.

현재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이라는 공의 핵심을 뚫는 것이 중도다. 그 프레임 안에 누가 들어오든 살아서 온다면 그에게 깃발을 쥐어 주리라. 그리하여 지금의 카오스를 통합하고 북과의 소통을 살려내는 그 누군가가 있다면 점쟁이가 아니더라도 그에게 최고의 책임이 주어질 거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 황석영이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  중에서

황석영은 또 문제의 글에서 진보가 굳어진 원칙에 집착한다고 했는데, 독자들은 황석영의 이런 발언에서 그의 지성이 의심스러워졌을 것이다. 그가 의미하는 굳어진 원칙은 뭐고, 집착은 또 뭐란 말인지 설명이 없다. 황석영의 명성을 생각하면 놀라운 발언이다. 
 
우리나라에서 진보 정치는 사대주의 독재 세력의 탄압 아래 제대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서민들조차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 정당이 진보 정당이라고 믿고 있지 못하는 형편이니 진보 정치권의 초라함이란 말해 무엇하랴. 서민들이 재벌과 소수 기득권을 대변해 주고 있는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현실을 황석영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나는 황석영의 중도라는 개념이 '노동자, 농민, 서민을 애써 외면'함으로써 탄생한 기회주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황석영의 문제의 기고문을 사심 없이 읽은 독자라면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강준만과 김지하의 '중도' 발언도 황석영의 뉘앙스와 비슷했었다.  

과거 진보의 이미지를 달고 있었던 지식인들의 기회주의 정신은 지성의 추락이다. 최근 지식인들의 '중도 통합 정치' 운운은 도스토예프스키의 타락을 연상시킨다.       
 
톨스토이는 인간의 다면성을 그의 대작 '부활'에서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널리 퍼져 있는 미신의 하나는 인간은 저마다 일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을 언제나 저 사람은 선한 자, 악한 자, 영리한 자, 혹은 악한 자, 어리석은 자 라는 식으로 구분해서는 안된다. 반면에 어떤 한 사람에 대해서 나쁜 점 보다는 좋은 점이 많다는 식으로 이야기 할 수는 있다는 것이다.    

황석영, 강준만, 김지하 이들은 정치권에서 '중도'를 강조함으로써 스스로를 '기회주의자'로 낙인찍었다고 해석해야 맞을 것이다. 민중의 생존이 걸려 있는 한미FTA를 국민 반 이상이 반대한다. 그런 국민의 입장을 대변해 줄 정당은 민주노동당, 사회당 등 진보정당이다. 한나라당에서는 FTA를 반대하는 사람이 전혀 없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에서 찬성이 대세다. 국민 생존이 걸려 있는 심각한 문제에 대해 진보와 보수는 이렇게 서로 다른 입장에서 선택해야만 한다.  

어디 그 뿐이랴! 개발이냐 환경보존이냐, 성장이냐 분배냐를 두고 진보와 보수는 치열한 입장 차이를 보인다. 인간 세상도 대자연 법칙 속에서 지배와 피지배간의 권력다툼을 반복하고 있다.   
 
인간 세상의 중대사들이 쉽게 간단히 이분법으로 진보와 보수로 갈리는 듯하지만 세밀히 관찰하다보면 다층적이고도 아날로그적으로 입장 차이가 갈린다. 정치를 하기 위해 편의상 거시적으로 이분법으로 권력을 분배하는 형식을 띤다. 민주주의가 발전된 국가에서 양당제가 정착된 예가 그런 원리이다. 양당제로 나뉘지 않고 하나로 통합되면 독재가 되므로 권력이 부패하고 민생이 파탄난다. 너무 많이 나눠지면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결정해야 하는 인생사에서 혼란이 가중되므로 어차피 중대사를 결정할 때는 찬반으로 양분되는 단순화작업이 수행된다.       
 
선진국들은 이런 시행착오 과정을 모두 겪었다. 우리는 아직 시행착오 와중에 있지만 진보와 보수라는 선진국의 양대 정체성은 우리 사회에도 점차 뿌리를 내리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 정치에서 중도라는 것은 없다. 선택을 하지 않고 정치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진보와 보수의 입장 차이가 있으며 권력 가진 쪽이 결정을 짓게 된다. 그래서 저마다 권력을 가지려고  혈안이다.        

중도라는 말은 정치적 입장에 선 일반 국민들이 어느 쪽도 다 맘에 안 들어 선택하기 어려울 때 사용한다. 정치적인 싸움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치에 참여하거나 정치를 분석하거나 올바른 정치(중도 정치)를 추구하는 지식인과 집단들은 진보든 보수든 자기 철학에 맞는 쪽을 택해 국민에게 방향을 제시해야 하므로 '중도 정치' 혹은 '통합 정치'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 즉 중도 정치를 표방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현실에서 진보든 보수든 자기 철학에 맞는 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기로에 선다. 선택하지 않고 무슨 정치를 한다는 것인가? 정치를 하려면 한미FTA를 찬성하든가 반대하든가 해야지  결정하지 않고 그냥 둔다는 것이 중도 정치란 말인가? 

황석영, 강준만, 김지하 등등이 말하는 중도 정치는 명백하게 '기회주의'임이 입증되었다. 심지어 여기서 더 나아가 한 편의 코미디도 있었다. 모처럼 대한민국이 한꺼번에 웃음보를 터뜨렸다. 수구 독재 정치인 박정희를 존경한다는 박근혜는 자기가 '중도'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웃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박근혜의 이번 코미디는 좀 심했다.

대한민국이 경제 성장을 한 것은 한국인이 피땀 흘려 일한 결과이지 가난한 여자들 성노예로 만들어 경주에다 집창촌을 건설하고 일본인들에게 팔아 포주처럼 돈 번 박정희 덕분인가? 박정희가 피땀 흘려 일했나? 박정희는 왕처럼 색 밝히고 요정에서 술타령하는 동안 노동자들은  3교대로 밤에도 일해서 경제 발전 이룩했다.    
 
박근혜는 3교대로 일해 봤나? 한국인이 부지런해서 이룩한 경제 발전이 술타령 색 타령했던 박정희 덕분인가? 국가 발전은 국민들 힘이지 권력자 한 사람 덕분이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박근혜의 사고방식은 조선 왕조 시대에 머물러 있으므로 박근혜는 중도가 아니라 수구이다. 그것도 조선왕정시대 수구 정신.  

황석영, 강준만, 김지하 뿐만 아니다.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으로 '중도'라는 단어를 들고 나오는 정치적 인물은 그 순간 가짜로 낙인찍힌다. 중도 정치를 기치로 내건 인물은 '노무현'처럼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자로 인식될 것이다. 중도의 깃발을 든 자는 기회주의자로 인식되어 반드시 대권에서 쓴 물을 마실 것이다. 우리 국민은 노무현을 통해 학습 효과를 터득했다. 사기꾼과 진짜 정치 지도자를 구분해 내는 방법은 '중도', '통합', '개혁' 이런 단어를 쓰나 안 쓰나로 보면 된다.       
 
진짜 민생을 걱정하는 정치 지도자는 기회주의 '중도'에 염증을 느끼므로 '진보' 혹은 보수라는 단어를 쓴다. 우리 국민은 그동안 기회주의 정치인들에게 너무 많이 속아왔던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중도'가 기회주의가 아니면 정치권에 기회주의는 아예 없다는 뜻이 되고 만다. 세 살짜리도 정치권에 기회주의가 팽배해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이런 일도 가끔은 발생해야 한다. 박근혜와 황석영의 웃기는 '말-말-말-쇼'로 국민들이 한바탕 쓴웃음을 흘렸다. 중도-통합 쇼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이러다가는 '중도'라는 단어가 '정치사기쇼' 필수품목으로 등록될지도 모른다.     
 
참여정부가 잡탕 정당을 만들어 기만 정치를 개혁정치라고 표방하는 바람에 '개념'과 언어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그 중 현재 가장 대표적인 구세주격인 '중도'라는 개념은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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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2/08 [17:1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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