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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진정성'이 없다
내가 수구보수 세력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
 
권태윤   기사입력  2003/06/25 [09:40]

▲ 23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하기 위해 들어오는 노대통령, 이날 회의에서는 특검연장문제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청와대 홈페이지

대북송금 위법사실 조사를 둘러싼 특별검사의 조사시한 연장요청이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거절됐다. 한나라 당이나 수구보수 세력들의 거센 반응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수용불가 결정은 궁극적으로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그간 우리 검찰이 보여주었던 과거의 행태로 볼 때 수사의 능력이나 의지에 적지 않은 의구심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사안을 분리해 조사하면 된다.”는 주장에 불신을 가질 수도 있다는 점도 십분 이해는 된다. 하지만, 사건의 큰 줄기인 실체적 진실이 대부분 드러난 만큼 구태여 시한을 연장해 정쟁(政爭)의 도구로 삼는 것은 ‘국익을 위해서’라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물론 “기왕 시작한 마당에 아예 뿌리를 뽑고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정치적 부담을 더는 방법”이라는 주장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사실 노무현정부가 굳이 그런 정치적 부담을 떠안아 가면서 거부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조사기한 연장을 주장하는 세력들의 진정성(眞情性)이 너무도 의심스럽기 때문에, 특검의 조사기한 연장이 바람직한 수사가 아니라, 더러운 정쟁의 도구로만 악용될 뿐이라는 회의감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진정(眞情)’이란 말은 단어 그대로 “거짓이 없는 참된 정이나 애틋한 마음”을 말한다. 한마디로 한나라 당이나 수구보수 세력들이 진정으로 ‘국민의 부담 증가’를 염려하고, 남북교류협력사업의 투명성을 제고시켜 보다 발전적인 남북관계를 만들어 가겠다는 의미에서 특검의 조사시한 연장을 주장하고 있다는 신뢰를 가질 수가 없다는 말이다. 적당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마치 아내를 비방하고 욕보일 목적으로 “공정한 살림살이를 하는지 알 권리가 있다”며 가계부 검사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느낌이 든다. 수사기한 연장 주장이 그처럼 치졸하고 얄팍해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바람직한 여야관계나, 정부와 언론간 관계는 상호 견제와 감시를 통해 국민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 당연히 야당이나 언론의 역할은 날카롭고도 진지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실상은 어떠한가? 정부와 여당을 흠집낼만한 ‘꺼리’가 안 된다면, 야당은 별 관심이 없다. 민생은 팽개치고 정쟁에만 몰두하는 것이 그 좋은 예다. 게다가 입만 열면 ‘국민의 부담’이니 ‘국익을 위해서’라느니 라고 말하지만,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는 일에 대해서는 언제 우리가 싸우기나 했느냐는 듯 서로 짝짜꿍을 맞춰 한통속이 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과거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야당이 ‘국민부담 증가의 원인을 속속들이 밝혀내 국민의 의문을 해소해주는 것이 옳다“고 주장해도 그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는 것이다.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수구보수 언론들의 경우 날만 새면 정부를 물어뜯고 대통령을 씹느라 열을 올리면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내놓는 글을 읽어보면 그것이 ‘국익’이나 ‘국민의 이득’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국익을 가장한 ‘미운 놈 씹기식 분풀이’에 불과하다는 점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게다가 이들은 없는 일을 마치 사실인양 꾸며가면서까지 끊임없이 갈등과 대결을 부추긴다. 남북관계에서도 그렇고, 국내문제나 외교문제에 있어서도 그렇다. 계층간 이견을 조정하고 통합시키려는 노력 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좋은 소재를 부풀려 갈등과 대결로 몰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듯한 모습만 보여준다. 이러니 수구보수언론들이 아무리 ‘나라의 운명’이니 ‘국민의 알권리’니 해도 그것은 단지 자신들의 사적 분풀이를 위한 얄팍한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의심을 안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한나라 당이나 수구보수언론들은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뤄진 1997년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아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국민을 위한 정책제시 보다는 오로지 김대중 물어뜯기의 반사이익에만 매 달려 온 대가는 2002년 대선의 ‘믿을 수 없는 패배’였다. 건강한 야당, 바람직한 언론의 역할을 포기하고 증오에 가득 찬 비방만을 일삼아 온 세력에게 이 땅의 국민들은 희망과 기대를 포기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어떤 화려한 말로 포장하고, 교묘한 글로 진실을 숨기려 해도 사람들의 마음까지 속일 수는 없는 법이다.

가정에서도 부모의 훈육이 제대로 먹혀 들어가려면, 부모의 ‘진정성’을 아이가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부모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따르게 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스승의 가르침에 진심으로 따르는 것이나, 군대에서 하급병사가 상급 병이나 장교의 지휘에 충심으로 복종하는 일이나, 노동자가 경영자의 경영방침에 자발적으로 따르는 일 모두 ‘윗물’이 ‘진정성’을 가지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입반 열면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해서”라고 말하면서도, 행동에서는 전혀 그런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면 제대로 먹힐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절대 이길 것 같지 않았던 지난 대선에서 기적적으로 승리한 배경에는 ‘바보 노무현’의 진정성을 많은 국민들이 느꼈기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자신의 불리함을 날면서도 옳지 않은 문제들과 정면으로 맞서는 용기 있는  그의 행동을 통해, 사람들은 노무현에게서 진정성을 가진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계보나 패거리도 없었던 ‘독립군’ 노무현이 숱한 세력들의 악의적 반대와 비방을 극복하고 대선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던 힘이라고 보는 것이다. 대통령직 취임 이후 여러 가지 점에서 지지자들을 실망시키는 부분도 있지만, 나는 지금도 ‘인간 노무현’의 ‘진정성’을 믿고 있다.

나는 한나라 당이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 승리하고, 수구언론이나 보수 세력들 자신이 원하는 후보가 집권하는 세상을 희망한다면, ‘진정성’을 회복해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압도적 다수의석을 가진 제 1야당인 한나라당 사람들이 가슴 뜨거운 민족사랑, 국민사랑의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무엇이 모자라 더 많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못 받을 것이며, 이른바 수구보수언론들이 김대중 前대통령이나 노무현대통령, 그리고 진보세력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에서 벗어나, ‘진정성’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비판하고 견제한다면, 보수는 물론이요 진보세력들로부터도 지탄받고 외면당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진정성’이 결핍된 주장과 말은, 제 아무리 화려하고 교묘하게 포장을 해도 이내 그 속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저들이 그래도 이 나라와 이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저러려니”하는 생각만 들게 행동하고 실천한다면, ‘과격한’ 진보세력이라 해서 한나라 당이 수구보수언론을 비난하고 배척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우리 당이 주장하고 내세우는 목소리가 과연 이 나라와 백성을 가슴 뜨겁게 사랑하기 때문에 행하는 진실한 것인가? 우리 신문의 글과 기사는 사적인 증오와 분풀이를 위해 신문이라는 공적 도구를 악용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나라 당이나 수구보수 세력은 가슴에 손을 얹고 단 한번 만이라도 생각해볼 일이다. 여당인 민주당도 오십보백보이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 필자는 '좋은 글을 통해 우리를 생각하는 PEN21사이트( http://www.pen21.com/ )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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