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쿼 바디스, 한국 기독교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논단] 과거청산 없이 권력에 순종한 개신교, 스스로의 수구성에 갖혀
 
송준모   기사입력  2006/11/21 [10:59]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은 대답하신다.
'한국으로 가서 십자가에 못박히련다.'

현재 한국의 개신교 주류세력을 보고 있자면 복음서에 나오는 산헤드린1) 이 연상될때가 자주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이 통일교 교주 문선명을 보며 자신의 옷을 찢지는 않으니2)  그 과격성은 덜한것 같지만 신자들과 사회에 대한 태도를 보자면 그 아집과 무지, 부패는 산헤드린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바리새인들은 박식하기라도 했다. 그동안 한국 개신교의 주류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평신도들에게 왜곡된 반쪽짜리 신앙을 가르쳐왔고 이 왜곡된 신앙의 표출과 개신교 기득권층의 비리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에 대해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도대체 평신도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왔고 자신들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심심치않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길거리에서 정신이 나간듯한 표정과 기계적인 말투로 '예수천국 불신지옥' 을 외치는 광신도들이 바로 그들인데 독실한 개신교 신자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복음이 기뻐서 저렇게까지 전도를 하겠냐고 그들을 변호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개신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전도활동 자체를 그리 탐탁하게 보지 않는다.

유독 한국에 광신도가 많고 공격적 포교활동이 왕성한 것은 과연 한국인들이 축복받아 성령이 충만해서일까. 부분적으로는 인정할 수 있지만(성령이 존재한다면) 성령도 과유불급의 법칙에서 예외가 아니다. 이 충만하다 못해 철철 넘치는 성령의 유래를 추적해보자. 물론 이 현상에는 국민정서나 전통문화 등의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신앙의 문제이므로 추적의 범위를 신앙으로 한정하겠다.

다들 알다시피 천주교가 처음으로 한반도에 들어온 당시에는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그리고 후에 들어온 개신교는 역사의 교훈을 거름삼아 박해를 피하기 위하여 사회 참여적 성격보다는 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성격을 띄게 되었다. 개신교 학교들이 많이 세워지긴 했지만 이것은 사회참여적 신앙활동이라기 보다는 안전한 신앙활동을 위한 담보물적 행위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마테오 리치 등의 천주교 신부들도 중국에서 천문기구 등의 선진 과학 문명을 전수해주면서 포교의 안전을 보장받았으니.

어쨌거나 이렇게 내면으로 침잠하는 경향은 일제시대를 거치며 더욱 심화되었다. 일제와 타협한 개신교 지도자들이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배라는 당면한 사회적 과제를 외면하고 개인의 영적 구원에만 초점을 맞춤으로 인해 개신교는 점점 사회에 대해 방관자적 자세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 일제와의 영합에 대한 자기반성이나 청산없이 독재세력과 영합함으로써('기독교 국가' 미국도 한 몫 하였다) 평신도들의 사회적 관심을 거세하는데 한층 더 열을 올리게 되었고 이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3)

어떤 종교든 개인의 내면으로만 침잠하면 신비주의로 빠지기 마련이다. 개신교 역시 그랬고 현실의 모순에서 눈을 뗀 신비주의적 신앙 자세가 제대로 믿는 것으로 여겨지며 미덕이 되었다. 이런 경향은 자연스레 신자들이 '성령의 불' 에 매달리게 하였고 이성을 철저히 억누르고 감성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신실한 믿음으로 보게 하였다. 물론 신앙 자체가 감성적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최소한의 합리성도 버리고 모든 건 하나님의 뜻이라며 수수방관하는 태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자유의지와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죄이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달란트의 비유는 하나님이 쓰라고 주신 능력을 쓰지 않고 묻어두는 것에 대해 '게으르고 악한' 행위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4)

그리고 신비주의적 신앙 외에도 한국교회에서 유독 강조하는 요소가 있는데 바로 순종이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길게 언급할 필요도 없으리라 본다. 청와대에서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과 조찬기도회를 하던 바로 그 목사들이 권위에 대한 순종을 설교하였으니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왜 한국 교회가 순종을 강조하는지 알 것이다. 모든 게 노무현 탓인 이유는 아마 노무현 대통령이 교회를 나가지 않고 조찬기도회에도 참석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5)

세속 권력의 시녀가 되어 우민화를 위해 신비주의와 순종을 강조한 한국교회는 이성에 의한 비판정신을 부정적 생각으로 간주하는 것과 함께 이성에 의한 최소한의 판단도 없는 맹신과 '긍정적인 생각' 을 강요했으며 이런 가르침에 의한 이성의 마비는 개신교 지도자들의 비리 등에 대한 무비판적인 묵인과 광신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들은 목사의 비리에 관해 인간은 하나님의 종을 판단할 수 없다고 방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목사를 비난하였다고 나병에 걸린 경우는 미리암을 제외하고는 보지 못하였다. 6)

그렇다면 개신교측에서 이런 왜곡된 신앙을 전파하는 동안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았을까? 그들에게는 이단 선고라는 전가의 보도가 있었기에 개혁세력들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었다. 뭐든지 정통을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단 선고란 중세 가톨릭에서의 파문과 동급의 의미를 지닌다. 개신교 주류 교단에서는 이 이단선고의 칼날을 언제나 시퍼렇게 선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설교시간에도 핏대올려 이단을 사탄의 자식들이라고 공격하며 그쪽에 속해있는 인간 자체를 증오하게 만든다. 하지만 굳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나서라도 이들의 이단 선고가 잘못된 신앙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것일까. 그리고 이단 선고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일까.

잠깐 초기 기독교의 역사를 보자. 바울이 기독교의 기본적 교리를 정리하고 각지에 전파함으로 기독교가 세계종교로 뻗어나갈 발판을 마련하고 난 뒤 소아시아 전역에는 우후죽순처럼 여러 교파가 생겼다. 이들은 서로 별 교류가 없이 발전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교리상에서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간혹 그노시스 파7) 와 같은 근본적 맥을 달리하는 극단적 이단 교파가 나오고 지탄받기는 했지만 왠만한 교리상의 차이는 서로 인정하며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군인황제 시대에 종점을 찍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통일 로마를 위한 정신적 구심점의 수단으로 기독교를 선택한 순간 평화로운 공존의 시대는 끝났다.

기독교 교리의 통일을 위한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아리우스 파8) 는 이단으로 간주되었고 아나타시우스 파9) 가 정통교리로 인정받게 되며 기독교는 통일 국가의 종교가 되기 위한 체제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정통으로 인정받은 이들은 중앙집권화에 반발하는 지방의 교단들을 이단으로 몰아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했다는 교회에서의 일반적 가르침은 허구이다. 가족을 몰살한 그의 생활을 보나 태양신을 계속 섬긴 걸로 보나 그는 기독교를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했을 뿐이며 따라서 이단이라는 개념은 지극히 정치적인 의미였다. 그래도 콘스탄티누스 대제 당시에는 '이단사냥'이 그렇게 활성화되지 않았고 아리우스파의 세력이 워낙 강성했기 때문에 기독교의 주류 세력이 된 아나타시우스파도 함부로 건들지 못하였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죽기 직전에 아리우스 파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점이다.10)

기독교의 중앙집권화를 시작한 콘스탄티누스 대제 사후 기독교의 중앙집권화는 더욱 가속도를 붙였고 주류 교파의 주교들이 아예 '이단사냥반'을 만들어 중앙집권화에 반발하는 지방 군소 교단들을 이단으로 몰아 학살하고 다녔다. 이 과정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저명한 신플라톤주의 여류철학자 히타피아가 광신도들에게 능지처참 당해 살해당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 당시 학살을 진두지휘했던 주교들은 현재 성인으로 불리우고 있고. 결국 아리우스 파의 일파인 네스토리우스 파는 학살을 피하여 로마를 탈출하였고 동쪽으로 진출하여 중국에서 경교(景敎)라 불리며 융성하였고 후에 한반도에까지 전해졌다는 설도 있다.11) 중세유럽에 유행하였던 '프레스터 존의 왕국' 전설은 결국 '이단' 과 손을 잡으려 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처음부터 정치적 수단으로 출발한 이단 선고가 과연 얼마나 ‘공정하게’ 심사를 거쳐 선고되는 것일까 참 궁금하다. 절대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고 말이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교회에서 듣고있는 이단에 대한 악소문들도 날조일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항문성교를 하며 어린아이를 빻아 꿀에 찍어 먹는다'. 중세시대 교부들이 보고밀 파나 카타리 파12) 를 이단으로 간주하여 정죄할때 쓰던 표현이다. 이런 상투적인 악마적 표현들이 수세기동안 이단 정죄의 빌미로 쓰인 것13) 으로 미루어보아 지금 우리가 듣는 이단들의 악행도 과장되거나 날조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사실 성경 자체도 평신도에게 제공되는 텍스트는 일부인 만큼 성경 내용을 약간 다르게 해석한다고 무작정 이단으로 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일부 내용으로 성경을 공부하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모순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평신도들이 보는 성경은 성서의 전체 텍스트중에서 고위 성직자의 회의를 거쳐 선별된 것이다. 우리가 보는 성경은 '정경(Cannon)', 우리가 보는 시판 성경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성서 텍스트를 '외경(Apocrypha)' 이라고 하는데 이 정경과 외경의 구분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에녹서, 토비트서, 도마복음, 베드로 행전, 빌라도 행전 등이 대표적 외경이다.

신학자들도 인정하듯이 외경이 없이는 정경의 해석에 모순점이 발생할 수 밖에 없고 정경의 빈틈을 메꿔주는 것이 외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외경 자체가 지나치게 신비주의적이거나 그노시스 적이라는 이유로 배제된 텍스트이기 때문에 자연히 해석에서 견해차가 발생할 수 밖에 없고 이 차이를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건 기득권의 횡포에 다름 아니다. 쉽게 말하자면 수학문제 답의 차이가 아닌 이상의 시에 대한 해석으로 이단 여부를 가르는 것은 특정 해석을 선점한 자의 횡포라는 것이다. 그 정통해석도 가능성중의 하나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개신교의 모순점을 하나 들자면 바로 절대적인 성경무오설이다. 외국의 경우는 절대적 성경무오설은 근본주의자들이나 신봉하는 학설로 간주되고 있는데 반하여 왜 유독 한국에서만 전 교단이 절대적 성경무오설을 고집하며 성경의 오류를 조금이라도 지적하면 이단으로 공격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교황청의 추기경도 이미 절대적 성경무오설은 신봉하지 않는데14)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절대적 성경무오설을 신봉하는 것인가. 성경을 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구약성서의 하나님과 신약성서의 하나님 사이에는 상당한 인격적 괴리가 있으며 구약성서 내에서의 하나님도 시대에 따라 변화를 보인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악마관(觀)이 생겨났고 바빌론 유수로 인해 메시아 사상이 강조되며 개인주의적 신앙으로 변모되는 등의 신앙의 역사적 요인15)을 무시하고 믿음의 고고한 흐름으로 성서와 기독교를 파악하는 것은 근본주의적 관념론과 교조주의가 혼합된 무비판적인 맹신일 뿐이다.

또한 성경도 인간이 기록한 것인 만큼 자신의 주관이나 가치관이 개입되기 마련인데 그것을 과연 완전무결한 신의 말씀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나님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한다는 말을 감안하더라도 대필작가(Ghost writer)가 아닌 이상 자신의 색채가 반영되기 마련이고 실제로 성경 텍스트 자체도 서로 내용은 일관성이 있지만 작가에 따라 문체와 기저에 깔린 사상 등이 상이하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그 당시 시대의 조류에 따라 성서 텍스트의 성향이 변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성경에 서술자의 아무런 의지가 작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생각을 문자 그대로 옮겨 적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아무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 개신교가 사욕 추구의 의도보다는 미국 근본주의 세력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의 수구성에 갇혀 절대적인 성경 무오설을 고집하고 있는 듯 하다.

사실 난 기독교 신자이다. 그리고 위의 내용들로 인하여 비난도 많이 당하였다. 하지만 나는 비판적 믿음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지 결코 기독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맹신만이 올바른 신앙이라면 이단으로 규정된다 하더라도 나는 나의 신념을 가지고 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사실들을 열거해 놓았으니 판단은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맡기겠다. 하고 싶은 말들은 더 많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이지 교회인이 아니다. 

[각주]

1) 유대교의 최고 의결기관인 평의회.
2) 마태복음 26:65 참조.
3)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0.
4) 마태복음 25:14-29 참조.
5) 교회연합신문 사설, 2004-05-28.
6) 민수기 12:10 참조.
7) 영지주의(靈知主義). 물질계를 부정한 것으로 보며 영적인 것에 절대적 가치를 두는 초기 기독교의 분파.
8)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 초기 기독교의 다수파.
9) 삼위일체설을 주장한 초기 기독교의 소수파.
10) 조셉 폰타나 [거울에 비친 유럽], 새물결, 2000.
11) 한겨레신문 문화문명기행, 2004.12.27.
12) 12∼13세기에 위세를 떨친 이단분파로써 극단적 금욕주의를 강조.
13)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열린책들, 2002.
14) 움베르토 에코,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무엇을 믿을 것인가], 열린책들, 2003.
15) 김영진 [역사와 신앙], 한들출판사, 2005.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11/21 [10:59]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

  • 송준모 2006/12/11 [11:20] 수정 | 삭제
  • 죄송하지만 머릿속에 있는 내용 절반도 풀어놓지 않은 것입니다.
    비교종교학이나 신화학의 연구결과들 인용하면 아예 기독교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되어버리니 저 정도에서 그친 것인데 저 정도에도 그런식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시면 당혹스럽네요.

    어설픈 불가지론부터 시작해서 이제 아예 지식 자체를 취급하지 않는군요.
    말도 안되는 반박이 들어올까봐 일부러 주석까지 달아서 자료 출처를 표기했습니다만 아예 학문적 성과 자체를 무시하시는군요. '사료' 의 해석이 아닌 사료 자체를 중심으로 한 내용이기 때문에 별로 흔들릴 까닭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으라고 하셨는데 성경이야 많이 봤습니다. 오히려 성경을 읽을수록 믿음에 회의가 생긴다고 해야겠군요. 조금만 생각을 가지고 구약을 보면 그것을 문자 그대로 믿는다는게 얼마나 황당하고 위험한 행위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시나이 반도 광야에서 헤메던 유대민족의 수는 '물리학적으로' 산출 불가능한 수입니다. 시나이 반도에 블랙홀이 없는 이상 성서에 기록된 인원은 수용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하여 신 중심의 신학을 주장한 칼 바르트도 자유주의 신학의 비판적, 역사적 연구방법은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였죠. 생각이 없고 비판이 없는 믿음이야 말로 맹신이며 광신입니다.
  • 다물 2006/11/28 [15:24] 수정 | 삭제
  • 개독들의 광신 맹신이 바로 이 댓글 학생같은 자를 만들어 놓고 있다
    이 글을 쓴 기자는 그래도 조금 열린듯 하다

    그러나 학생/은 완전히 미쳐버린 개독이다
    기독에 대하여 털끝 이라도 건들면 사생 결단이다
    자기의 목사, 자기의 종파 -자기의 생각 뭐든지 건들면 그저 죽이려 든다
    그러한 성격은 야훼의 유전자를 고스란이 이어 받아서 그러 하다

    야훼는 같은 절대신인 알라 라는 신보다 더 잔인한 성격의 신이다
    이단에 대하여는 추호의 용서,관용이 없는 신이다

    예수는 저의 아버지인 야훼의 포악성을 조금 물타기 한 신이기는 하지만...
    기독교들의 근본 심성은 야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교도(이단)와의 공존 절대 불용 이라는 기독교의 배타성을 벗지 못 한다는 말이다

    기독교는 구약을 그 성립 토태로 하고 있기에 이를 탈피한 신약으로만은 기독교 자체가 붕괴되고 만다
    그러나
    예수는 그런데로 성인의 한 사람임을 부인하지 아니 한다

    성서 무오류설-
    이거 증말 개가 하품하는 소리다
    기독교가 인류에게 가장 해로운 독소로 작용하는 건
    그 구원 사상이다
    종말론이다
    자기만 구원받겠다면 누가 뭐라 하냐?
    지상에 복음이 충만할때 지상에 천국이 도래 한다는 그 종말론이다

    즉 복음이 충만 할 때란
    지상에 이교도가 한 마리도 없을 때를 이르고 있다
    이를 위한 그 전도 행위가
    불신지옥 예수천당이다
    이걸로는 성에 차지 아니해서 사찰방화 단군상 파괴이고 장승 톱질 하기다
  • 학생 2006/11/24 [12:34] 수정 | 삭제

  • 나름 열심히 쓰신거 같은데... 이 정도 글은.. 교회안다니는 내 친구도 쓸수 있는 글인데..

    이글에서 제시하는 한국교회의 문제점들 일부 공론합니다..
    하지만 당신 자신을 바라보세요..

    당신의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신다구요?
    그게 성경에서 가르치는 당신의 믿음입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당신이 크리스쳔이라고 할수있나요?
    성경무오설을 주장하시기 이전에 성경을 먼저 읽으세요!!

    당신은 믿음의 기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요 바라는 것들의 증거니.'

    당신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은 모두 하나의 오차없이 정확한가요?
    확신할 수 있습니까?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당신은 그것을 당신의 글로 완벽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순간 당신 역시도 위에서 당신이 비난했던 사람들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당신의 생각대로 해석하며 다른 사람들을 혼란시키고 있습니다.

    우린 이처럼 불완전한 세계에 살고 있고 불완전한 존재들입니다..

    성경에 대해서 기독교 역사를 당신이 아무리 파헤치고 분석하고 한들..

    이 모든 것을 다 주관하시고 그 모든 것을 능히 이기시는 하나님 앞에선 당신의 얄팍한 지식은 먼지만도 못한 것입니다.
    (물론 당신이 자신을 '신자'라고 했으니 적어도 하나님은 믿으시겠죠?)

    세상의 문제의 본질도 이해하지 못해서.. 눈먼 장님이면서.. 당신
    앞이 보이지도 않으면서 다른사람들한테 왼쪽으로 가라 오른쪽으로 가라
    하지 마시고..
    당신 먼저 눈을 뜨십시요..

    그리고 나서 기독교를 비난하는 글을 쓰신다면.. 그때는 조금 더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겠지만 이런글들은 정말 따분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