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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 욕망과 정의로 미국을 조롱한 영화
[비나리의 초록공명] 톰 행크스와 스필버그가 빚어낸 숨은그림찾기 영화
 
우석훈   기사입력  2006/07/15 [11:45]
톰 행크스가 나오는 영화는 지나치게 어깨에 각을 잡는 휴머니즘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돈 되는 영화'의 냄새가 너무 많이 난다. 두 사람을 한 마디로 합치면, 미원되겠다. 보고 있으면 잠깐 재미있는 건 같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고, 영 헐리우드가 날 가지고 노는 것처럼 기분이 좋지가 않다.

그래도 별로 볼 게 없으면 그냥 한 번은 보게 된다. 휴머니즘에 감동받기에는 난 이제 너무 나이를 먹은 것 같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보면 대개는 영화 스크린을 북북 찢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는데, 어차피 그런 영화는 안 보니까 별로 상관없다. 한국 영화 중에서 최근에 보고 나서도 찝찝한 느낌이 들지 않았던 영화는 <짝패>와 <마파도>가 그랬다. 두 영화 모두 연애가 없고, 대체적으로 우중중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영화들이다.

▲ 영화 <터미널> 포스터     © 코리아픽쳐스 제공
영화 <터미널>의 톰 행크스가 분한 주인공 노보스키는 무결점의 사나이이다. 작은 크로코지아라는 러시아 식민지 같은 가상의 동구국가 출신이지만, 과하지 않은 정의감을 가지고 있고 거짓말을 말하는 것을 싫어하며, 약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지나치지 않은 휴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랑도 할 줄 알고, 여인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정성을 다한 선물을 만들 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를 만난 모든 사람들은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고, 길가는 사람들과 상점원들도 그를 알고 나면 하나로 단결하게 만들어주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재즈를 사랑한다. 영화에는 그렇게 설정되어 있다. 게다가 카드놀이도 아주 잘한다.

그래서 노보스키는 '양키'이다. 뉴요커들이 가장 되고 싶은 모습을 딱 가지고 있다. 물론 가상의 이미지이고, 세상에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느끼한 사나이를 담백하고 유쾌하게 만드는 것은 톰 행크스의 연기력이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영화는 사람들의 욕망을 한데 모은 것 같지만, 누구나 가끔 혹은 경우와 조건이 맞으면 그 욕망을 정지시키고 정의로와 질 수 있고, 그래서 단결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한다. 출구와 또 다른 출구가 모두 막혀있는 그렇지만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문제없이 이동할 수 있는 터미널, 그곳이 영화의 장소이다. 뉴욕시에 "almost" 도달한 바로 그 문턱에 "stucked"된 상황이 영화의 구조이다.

이 영화에서 자신의 욕망 즉 '조세핀'이 되고 싶은 꿈을 버리지 않은 39살의 공주병 환자 스튜어디스의 욕망만이 영화 속에서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영화 속에서 "끝까지 재수없는 사람"이 딱 한 명 등장하는데, 만약 이 여인에 대한 재수없는 묘사 특히 마지막 터미날에서 드디어 하루 동안 뉴욕으로 떠나는 사내와 다시 다른 곳으로 떠나기 위해서 공항으로 들어서는 여인의 어색하면서도 우연적인 만남 그리고 그 비굴한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특유의 휴머니즘 영화의 재수 없는 모습을 털지 못한 채 시덥잖은 연애 영화로 끝나버릴 영화에 불과하다. 일 년에 그런 영화들은 수 백 편씩 만들어진다.

그러나 영화 <터미널>은 연애영화가 아니다. 마치 나폴레옹의 연인 죠세핀을 꿈꾸는 뉴욕의 여인들이 "재수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다른 모든 장치들을 끌어들인 것처럼 강렬하게 이 재수없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는 재미있다.

영화 <터미널>은 일종의 메타 텍스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나리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을 풀어가는 텍스트 속의 텍스트 같은 것인데, 이 영화를 읽는 진짜 묘미는 감독과 스튜디오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시나리오 작가가 어떻게 자신의 짓궂은 시각을 모든 사람들을 속이고 결국 영화 스크린 속에 남기는 데에 성공하는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가 영화의 진짜 이야기다.

이 비밀을 푸는 방법은 "스타트렉의 팬"이라는 단서에서 시작된다. 영화 속의 또 다른 연애 이야기는 오랫동안 계속된 짝사랑이 성공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이 장면은 뉴요커들의 느끼하고 판에 박힌 '돈에 관한 거래'처럼 묘사되는 헐리우드의 그런 사랑이 아니라 "스타트렉 팬들끼리 서로 만나서" 그것도 "백인"과 "흑인"이라는 인종을 뛰어넘어 결국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로 연결된다.

이런 몇 개의 장치들을 통해서 결국 작가는 뉴욕 여인들의 조세핀 증후증과 늙고 싶어하지 않는 여인들의 욕망이 결국 왜곡된 욕망에 불과하다는 말을 은밀히 전해준다. 자신이 늙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를 통해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말을 외치고 싶어하는, 이를테면 황신혜류의 "젊음 증후군"이 미친 짓이라는 메시지를 은밀히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물론 이런 메시지가 노골적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뉴요커들의 절대적인 지지하에 지금도 돈을 긁어모으고 있는 스필버그 감독은 물론 메이저 스튜디오의 혹시 이 영화가 불결하고 저속한 메시지를 담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모니터링하는 그 제작자들의 눈을 피할 수 없을테니까...

그렇지만 영화는 스타트렉의 팬이라는 몇 가지 장치를 통해서 신나게 뉴욕의 여인들에 대해서 조롱하고 웃음거리로 만든다. 그런 면에서 연극을 보는 왕이 웃는 바람에 왕과 귀족들을 열심히 풍자하고도 목이 달아나지 않았던 몰리에르의 메타 텍스트 장치를 교묘하게 사용하는 셈이다.

늙어도 괜찮아, 그리고 늙어보여도 괜찮아... 시나리오 작가의 은밀한 메시지들은 이어진다.

영화 속의 재즈는 미국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혁명 중의 아버지가 보았다는 신문 속의 사진이 가지고 있는 상징들은 미국이 아니라 외부세계를 향한 탈출구일 뿐이다. 음악을 들었다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작가는 은밀하게 몇 가지 메시지를 더 남겨놓은 것 같지만, 스필버그의 눈을 피하느라고 그렇게 명백한 단서를 남겨놓지는 않은 것 같다.

작가가 남겨놓은 진짜 메시지를 찾아보려고 하는 퍼즐게임이 숨어있는 영화 터미날이 상쾌하고 개운한 맛을 남기는 것은, 실패한 연애에 관한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직설법 대신 은유를 사랑하는 나에게 그래서 간만에 맛보는 숨은그림찾기 같은 영화이다.

금으로 만든 박스를 결혼선물로 받고 싶어하는 조세핀이 되고 싶어하는 39살의 스튜어디스, 그리고 그가 기다리는 결혼은 워싱턴에 있는 어느 정치 거물이 이혼과 함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그 기다림은 영화 내에서 유일하게 역겨운 기다림이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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