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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만 요란, 선거 외면한 언론보도
[김영호 칼럼] 언론이 정치개혁 견인하기 위해서는 선거보도에 고민해야
 
김영호   기사입력  2006/05/31 [14:52]

아마 5·31 지방선거 같은 선거는 없을 것 같다. 여론조사도 필요 없었다. 누구나 선거결과를 점칠 수 있을 만큼 일방적이어서 산사태를 보는 듯했다. 다만 제주와 대전에서도 한나라당이 이길지 광주에서는 열린우리당 표가 얼마나 나올지가 관심거리라면 관심거리였다. 투표도 하기 전에 싱겁게 끝난 선거라 관전하는 재미도 없었다.

그런데 4년 전에 있었던 일이 되풀이됐다. 그것은 월드컵이었다. 언론이 나서 북 치고 나팔 불며 그 때의 열광을 재연하자 그 열기에 파묻혀 선거보도가 증발해 버렸다. 월드컵에 매몰된 언론이 정치무관심(political apathy)을 더욱 부추겨 선거결과를 왜곡하는 사태를 낳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선거보도는 4년 전 그것의 복제판이었다. 언론보도만 본다면 선거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판이었다. 신문보다는 방송이 더 심했다. 선거보도라곤 중앙당의 당직자 회의 장면이 아니면 잠바를 걸친 당대표나 주요후보들이 장바닥을 누비는 민생탐방 따위가 거의 전부였다. 선거 때마다 하듯이 언론이 그들의 뒤를 쫄쫄 쫓아다니며 하찮은 말과 시시콜콜한 몸짓을 담아내는 게 고작이었다. 거기에서는 지방정부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실천적 구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번 지방선거에는 과거의 어떤 선거와도 다른 모습을 나타냈다. 집권세력을 응징하겠다는 분위기가 너무나 팽배했다. 그것은 이성적 판단이라기보다는 독선·아집·무능·무지를 심판하겠다는 감정적 접근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최악의 선택도 불사하겠다는 기세였다. 집단적 의지가 너무 공고해 언론이 나서 그 벽을 허무는데는 한계가 컸을 것이다. 많은 유권자들이 귀를 막고 어떤 설득도 마다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아무리 공약과 후보를 검증했더라도 별무가관(別無可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먼 투표의 무모성을 부단하게 경고했어야 한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특정정당이 독점하면 견제와 균형이 깨져 독주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웠어야 한다. 그런 투표권의 행사는 지방자치제의 근간을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말이다. 한국정당은 정책정당이 아니다. 급조한 공약을 검증할 가치가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럴수록 그 허구성을 분석·비판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정당보다 인물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노력 또한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럴 진데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얼굴을 칼로 긋는 자상사건이 발생했다. 그 배후에 대한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사실관계는 사직당국의 수사나 언론의 추적보도를 통해 확인될 사안이었다. 그런데 배후가 수상하다는 투의 기사가 잇달았다. 이것은 사실관계에 근거하지 않고 당파성에는 충실한 추측기사이다. 최소한의 기사요건을 갖추지 못한 기사를 써도 질타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동정론이 일어 표가 한나라당으로 이동한다고 한다는 보도가 뒤따랐다. 이 또한 여론조사를 통한 성향분석에 근거했는지도 의문이다. 그런 성향이 있더라도 그것은 비이성적이라는 점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노력이 있어서야 한다. 월드컵 열기를 뚫고 간간이 흘러나온 선거기사라곤 동정론과 함께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반성론이 고작이었다. 유행가 가락을 닮은 정의장의 "미워도 다시 한번"은 고장난 축음기 돌아가듯 되풀이되곤 했다.

선거를 흔히 경주에 비유한다. 그래서 누가 누가 이긴다는 선거보도를 경마식 보도라고 한다. 그런데 5·31 지방선거는 대세론을 넘어 결정론으로 흘렀다. 재미가 없는 탓인지 경마식 보도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결정론은 선거결과를 기정사실화하는 오류를 범했다. 될 사람 밀어주자는 악대차 효과(bandwagon effect)와 함께 안 될 사람 밀지 말자는 패배견 효과(underdog effect)를 극대화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싹쓸이를 부추긴 응징론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계층·이념·지역·세대간의 갈등과 반목이 날로 깊어진다. 그런데 월드컵 열풍이 순간이나마 그 대립감정을 용해해 버려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낸다. 그렇지만 4년만에 치르는 국가적 대사인 지방선거 또한 그 의미가 중대하다. 그런데 언론, 특히 방송은 시각적-청각적 효과를 자랑하며 월드컵에 몰입했다. 세상에는 온통 월드컵만 있다는 듯이 말이다. 지방선거도 없고 한미 FTA도 없는 것 마냥 요란했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자치제가 비리와 부패의 온상 마냥 썩을 대로 썩었는지 악취마저 풍긴다. 토호와 건달들이 지자체를 은신처로 삼아 그런지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4년 전에 언론이 선거보도를 방기해서 그런 모양이다. 인물검증을 소홀히 한 탓이란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위한 정보전달은 언론의 몫이다.    

투표율이 저조한 까닭은 지자체가 복마전을 닮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2년 3월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 개정되어 후보검증을 위한 장치가 추가됐다. 후보등록시 신고사항을 재산규모, 재산세-소득세 납부실적, 병역 이외에도 최근 5년간 종합토지세 납부실적, 전과기록을 더했던 것이다. 그런데 언론은 선거관리위원회가 내놓는 이 기초자료마저 일회용으로 대충 처리했다. 후보검증을 위한 좋은 자료를 뒷전에 뒀으니 제도개선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후보자의 몇%가 전과기록이 있다느니 몇%가 세금을 한푼도 내지 않았다니 하는 산술적 계산에 초점을 맞추었다. 누가 재산이 많고 누가 적다며 흥미 위주로 처리했다. 변변한 직업도 없었는데 재산이 많다면 그 배경을 알아봐야 한다. 공직자 출신이 재산을 과도하게 또는 과소하게 가졌다면 이 또한 검증대상이다. 무납세자 중에는 상당한 재력가도 있다니 이에 대한 검증도 필요하다. 축재과정의 투명성과 함께 은닉재산도 검증해야 한다. 추적보도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그 같은 노력은 중요하다.

병역을 면제받았다면 그 사유가 정당한지 유권자는 궁금하다. 그런데 과거처럼 후보자의 병역면제비율이 몇%라고 집계하는데 그쳤다. 병역도 재산과 마찬가지로 비율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가 부당하게 병역의무를 기피했다는 개별적 사실이 중요하다. 질병을 이유로 면제받았다면 그런 허약체질로 공직생활에 봉직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아니면 과거에 부패했던 병무행정과도 연관지어 볼 필요도 있다.

금고 이상의 형만 신고하는 전과공개제는 그 취지와 달리 많은 허점을 지녔다. 양심범이나 정치범은 전과자로 취급하면서 벌금형 이하를 선고받은 사기, 공갈, 수뢰와 같은 파렴치범에게는 면죄부를 주는 꼴이다. 실제 수 천만 원을 먹어 벌금형을 받은 정치인이 전과가 없는 것처럼 되어버리니 말이다. 제도의 모순을 뛰어넘는 추적보도가 아쉬웠다. 후보검증은 월드컵에 파묻힐 사안이 아니다.

월드컵에 지면도 화면도 뺏겨 선거보도가 줄었을 것이다. 인력이 부족하여 추적보도가 여의치 않는 것도 현실적 문제이다. 하지만 언론이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고 감시활동을 폈더라면 철창신세나 질 사람들이 지방자치를 더럽히지는 못했을 것이다. 언론이 정치개혁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선거보도에 관해 깊게 고민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 본 기사는 <미디어오늘> 기고문입니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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